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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Apr 20. 2020

사춘기 엄마 처방전

2-4 툭하면 다른 아이와 비교하면서 채찍질

 “내 친구 엄마가 해준 김치볶음밥은 매우 맛있는데, 엄마표 김치볶음밥은 왜 이렇게 맛이 없어?”, “나랑 같은 반인 아무개 엄마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착한데, 엄마는 왜 이렇게 못생겼어? 성격도 괴팍하고…….”, “내 후배 부인은 된장찌개를 얼마나 맛있게 잘 끓이는지 밥을 3그릇이나 비웠네.”, “김 작가님, 이 작가님 글은 아주 맛깔스럽고 재밌는데, 김 작가님 글은 너무 평범하고 재미없어요.”  


 만약 내가 이런 식으로 비교를 당한다면 기분이 어떨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한마디로 기분이 더럽다. 사실 내 기억 속엔 내가 남들과 비교를 당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니, 아예 없었던 것 같다. 지금 보니 남과 비교를 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커다란 상처를 주는 것과 똑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상처를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큰아이에게 주었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죄책감이 한없이 밀려온다.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내 주변에는 워낙 학구열이 높은 엄마들이 많아서인지 아이들도 무척 공부를 잘했다. 물론 내 아이도 그랬다. 그러다 보니 엄마들끼리도 서로 내 아이만큼은 더 뛰어났으면 좋겠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롤 모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보이지 않는 경쟁 심리! 어찌 보면 가장 저급한 인간 심리라고 볼 수 있는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는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뒤떨어지는 것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자신이 못 한다고 생각하면 자신감을 잃고, 아예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가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해 주는 게 무엇보다도 필요했다. 사실 난 ‘경쟁’이라는 단어를 무척 싫어한다. 물론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은 거지만 결국 인생의 승리는 남을 이기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게 아니었던가! 여하튼 아이가 어렸을 때는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를 해줬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인 내가 최선을 다해 관리를 해주는 상황에서 아이가 나태해지거나 하기 싫어하면 그 즉시 다른 아이와 비교하면서 채찍질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육아 교육에서 엄마의 이러한 태도가 아이한테 아주 치명적이라고 얘기하는데, 그 상황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냥 툭 튀어나온다. 주변 엄마들 얘기를 들어 보니 대부분의 엄마들도 툭하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혼을 냈단다. 게다가 비교 대상 아이는 엄마들 사이에서 모범적인 롤 모델로 통하는 아이였다. 나도 항상 아이를 혼낼 때마다 그 롤 모델 아이를 들먹이며 비교했다. 그랬더니 언제부턴가 아이가 그 롤 모델 친구를 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매번 그 친구 얘기가 나오면 일부러 나쁘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필레몬의 ‘비교는 친구를 적으로 만든다.’라는 명언처럼.      


 “엄마, 아무개가 오늘 선생님한테 칭찬받으려고 그랬는지 청소를 너무 열심히 하는 거예요.”       

 “청소하는 게 뭐 잘못됐니? 열심히 하면 좋지 뭐.”

 “평소에는 잘 안 하니까 얄밉죠. 아무래도 오늘 선생님이 계시니까 일부러 열심히 한 것 같아요.”

 “별 게 다 얄밉구나. 너도 앞으로 열심히 청소하면 되잖아.”

 “흥! 나는 그렇게 안 할 거예요. 속 보이잖아요.”

 “너는 왜 그렇게 아무개를 미워하니?”

 “그냥 싫어요.”


 문제가 좀 심각하게 되어가는 것 같았다. 아이가 좋은 방향으로 자극을 받았으면 했는데,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미운 감정만 쌓여 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롤 모델 엄마도 내 아이의 질투를 눈치챘는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약간 달라졌다.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어 이후로는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것을 삼갔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남과 비교하는 게 얼마나 미련하고 무모한 행동인지 깨달았기 때문에 오히려 누군가가 상대방과 비교하려고 하면 곧바로 제재를 가한다.


 인터넷에서 이런 사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중국의 어느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중학교 내에서 늘 전체 1, 2등을 다투며 경쟁하는 남학생 두 명이 있었다. 그 둘은 친구이기도 했지만 늘 경쟁하면서 서로를 감시하는 적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시험이 있었고, 이후 시험 결과 등수가 매겨졌다. 불행하게도 이번 시험에서 전체 2등으로 밀려난 남학생이 분에 못 이겨 전체 1등 한 남학생을 칼로 찔러 죽였다. 그 당시 이 사건을 보고 너무 놀랐다. 도대체 시험 등수가 뭐기에 이제 겨우 중학생인 아이를 살인자로까지 내몰았는지 중국의 교육 현실이 너무도 암담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예이다. 결국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는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과정에서 오직 나만 살아남기 위한 구도로 가다 보니 남는 것은 욕심과 이기심, 그리고 파멸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서로 화합하는 사회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가는 과정에서 내가 아닌 ‘우리’라는 구도로 가다 보니 나눔, 배려, 협동이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가 남긴 ‘비교’에 관한 글이다.


 ‘중요한 일은 다만 자기에게 지금 부여된 길을 한결같이 똑바로 나아가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길과 비교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남과 비교한다는 것!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의 평가 기준이 비교였다.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 예쁜 얼굴과 미운 얼굴, 공부 잘하는 아이와 공부 못 하는 아이, 날씬한 사람과 뚱뚱한 사람 등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 지어 평가하는 것, 그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와 갈등 그리고 대립을 불러일으켰는지……. 지금 와서 돌이켜 보건대, “쟤는 잘하는데 너는 왜?”라는 말은 아이의 영혼을 짓밟은 폭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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