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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Apr 21. 2020

사춘기 엄마 처방전

2-5 도대체 100점이 뭐기에! 상장이 뭐기에!

 50여 년을 살아오면서 ‘100’이라는 숫자는 나에게 있어서 ‘100세까지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도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나오면서부터. 그런데 학부모가 되면서부터 내 아이가 시험을 보게 되고, 시험에 대한 점수가 매겨지면서 ‘100’이라는 숫자는 엄마인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버렸다. 아이가 시험을 보면 몇 점을 맞았는지 무척 궁금했다. 마치 내 아이의 능력을 시험이라도 하는 듯 말이다. 그런데 시험만 봤다 하면 거의 100점을 받아 오는 아이로 인해 엄마인 난 항상 행복했고 뿌듯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한테는 부담이 컸을 시험 날이 오히려 나에게는 기대되는 날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시험을 보고 집에 왔는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1개를 틀렸다는 것이다. 늘 100점을 맞았던 아이가 96점을 맞았다고 하니 엄마로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아하! 그러고 보니 예전에 국어 점수가 80점이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 이래 줄곧 100점을 받아왔기에 1개 틀린 것도 좀 그랬던 것 같다. 이처럼 아이를 향한 기대치가 워낙 높다 보니 그 기대치에 못 미쳤을 때는 마음이 왠지 꺼림칙했던 것이다. 게다가 엄마들 사이에서 100점이라는 점수는 보이지 않는 경쟁의 숫자를 의미했다. 글쎄 모르겠다. 누군가가 100점을 맞으면 다들 “와!” 하고 감탄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떤 마음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적어도 나의 솔직한 마음은 내 아이가 100점을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이번 수학 시험은 심화라서 좀 어렵게 나왔다는데 누가 100점이래?”

 “아무개 1과 아무개 2래.”

 “역시 불변의 아이들이야. 누구도 그 둘을 이길 아이가 없다니까,”

 “도대체 걔네들은 어떻게 공부하기에 매번 100점이야?”

 “그걸 알면 우리 아이들도 늘 100점이게?”

 “그건 그러네.”

 “아무튼 100점만 알아주는 이 나라에서 빨리 떠나든가 해야지 부모든 아이들이든 스트레스받아서 어디 살겠어?”

 “내 생각도 그래.”


 솔직히 100점만 알아주는 사회적 풍토가 나 자신을 이렇게 숫자 괴물로 만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대부분 엄마들의 수다에서도 100점 맞은 아이들만 거론될 뿐, 그 아래 점수는 아예 관심조차 없다. 그러니까 어느 그룹이든 최상위 사람들만 기억을 한다. 그러니 엄마들이 자식에게 있어서만큼은 특별한 교육을 시키고 싶고, 교육비가 얼마가 들든 간에 강남 대치동으로 몰리는 게 다 이런 이유에서 일게다. 사실 강남 대치동 학원은 레벨이 아주 세분화되어 있어 내 아이에 맞는 맞춤식 교육이 가능하다고 한다.


 내가 아는 엄마도 강남으로 이사를 갔는데, 아이들 교육시키기에 너무나 좋은 환경이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다만 아이가 공부할 의지가 없어서 안 하면 모를까 아이만 하고자 한다면 성적은 곧바로 쑥쑥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교육 특구가 아닌 지역에서는 학원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학원 선택에 있어서나 정확한 레벨 분석조차도 힘들어 아예 공부할 의욕마저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언니, 이곳 대치동 학원은 각 과목마다 내 아이에 맞는 정확한 클리닉을 해주는 곳이 있어요. 그러니까 내 아이가 어느 쪽으로 강하고, 약한지를 분석해서 부족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거죠.”              


 예전엔 개천에서도 용이 나왔다. 그런데 요즘 교육 시스템으로는 개천에서 도저히 용이 나올 수 없다는 게 일반적, 아니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나아가 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상장 관련 대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대부분의 학원들이 전문적으로 팀을 구성해 대회 관련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혼자서 아무런 정보 없이 막연하게 상을 받고자 하는 것은 큰 모험일 수 있다. 정말이지 우리 옛 속담에 산 너머 산이라는 말이 딱 맞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들이 아이들 상에 집착을 많이 한다. 교내 상으로는 교과 상, 그리기상, 토론대회 상, 글쓰기상, 과학 관련 상, 모범상 등등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사실 돌이켜 보면 내 아이가 상장을 받아 왔을 때처럼 기분 좋은 일도 없었다. 아마 대부분의 엄마들도 각종 대회가 있을 때마다 옆에서 무척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난 글쓰기상에 집착을 많이 했다. 왜냐하면 결혼 전까지 글쓰기 관련 직종에 있었고, 그러다 보니 내 아이한테만큼은 글쓰기를 제대로 가르쳐 보고 싶은 욕망이 컸던 것이다.


 글을 잘 쓰려면 타고난 재능은 물론 다양한 경험 그리고 스킬이 있어야만 빛을 발할 수 있다. 게다가 꾸준한 글쓰기 훈련이 필요한데, 엄마인 내가 아이를 가르치려니 거의 도 닦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일기를 쓸 때 일단 아이한테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해 보라고 한 후 내가 재구성해서 다시 아이한테 얘기해 주는 식이었다. 물론 얘기해 주는 것을 그대로 쓰게 했다. 그랬더니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글쓰기 스킬이 향상되어 가는 게 아닌가! 아무튼 매 해마다 글쓰기상은 놓치지 않고 받았다.


 세상에 딱히 답은 없는 것 같다. 아이를 향한 엄마의 관심이 때론 지나친 집착으로 향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이의 실력 향상으로 오히려 자신감을 키워주기도 하는 걸 보면…….      



 “엄마가 제일 자신 있는 분야를 내 아이에게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일은 훗날 아이에게 커다란 선물을 주는 셈이다. 물론 당시에는 엄마든 아이든 무척 힘든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가 아닌 엄마와 자식의 관계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보다는 집착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야 어찌 됐건 훗날 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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