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생이 사랑한 Y2K 그 자체, 2000년대 MV

by 진정

나와 같은 90년대 초년생이라면, 아니 더 넓게 생각해 MZ 세대라면 2000년대의 음악을 그리워하지 않는 이는 드물 것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흥얼거리던 대중음악이 거리마다 울려 퍼지던 시절. 지금처럼 세련되고 파워풀한 퍼포먼스 중심의 뮤직비디오와는 달리, 당시의 영상들은 그 시절만의 감성과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화려한 CG나 기술보다, 사랑과 이별, 청춘의 떨림 같은 감정들을 음악과 함께 정직하게 보여주던 뮤직비디오들. 지금 보면 조금 촌스럽고 오글거리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따뜻하고 진심이 느껴지는 영상들이 많았다.


어쩌면 그런 영상들에 빠져들었던 경험이, 내가 뮤직비디오 업계에서 조연출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만든 걸지도 모른다.


혹시, 90년대가 보고 경험한 진짜 Y2K 감성이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추천 뮤직비디오 리스트는 꼭 감상해보길 바란다. 그 시절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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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나라 - SWEET DREAM (2002.10.02)

https://www.youtube.com/watch?v=ITJlByULnhY&list=RDITJlByULnhY&start_radio=1


지금의 국민 여동생이 ‘아이유’라면, 2000년대의 국민 여동생은 당연코 ‘장나라’였다. 귀엽고 상큼한 이미지로 언니, 오빠뿐 아니라 나처럼 어린 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장나라는 그 시절 진정한 신드롬의 주인공이었다.


장나라의 명곡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2집 타이틀곡 *SWEET DREAM*이다. 특히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노래의 매력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였다.


사랑을 시작한 여성의 달콤하고 설레는 감정을 담은 이 노래는, 뮤직비디오에서도 장나라 특유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완성되었다. 2000년대 뮤직비디오들이 흔히 그랬듯 *SWEET DREAM*도 하나의 서사를 담고 있다. 드라마타이즈 형식은 아니지만, 데이트를 앞둔 아침부터 준비하고 예쁘게 꾸며 밖으로 나서는 장나라의 하루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방식이다.


내가 이 뮤직비디오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장나라의 매력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에 보기 드문 ‘미래지향적 연출’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침대 아래에서 톱니바퀴가 돌아가며 자동으로 장나라를 깨우고, 로봇이 칫솔질을 도와주거나 토스트를 만들어주는 장면은 어린 나에게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또, 장나라의 패션과 영상 분위기는 지금 다시 봐도 **Y2K 감성** 그 자체다. 화려한 이펙트나 대단한 배경 없이도, 장난기 가득한 그녀의 모습과 귀여운 연출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뮤직비디오였다. 지금 봐도 여전히 사랑스럽고, 누구에게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2000년대의 명작이다.


[2] 동방신기 - HUG (2004.01.14)

https://www.youtube.com/watch?v=xQ635vE2RQI&list=RDxQ635vE2RQI&start_radio=1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했던 아이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동방신기’라고 답할 수 있다. 그들의 등장 자체가 내 또래에겐 일종의 문화적 센세이션이었고, 실제로 그들을 좋아하지 않은 친구를 찾는 게 더 어려웠을 정도였다.


내가 동방신기를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는 지금도 선명하다. 바로 ‘HUG’ 뮤직비디오 속, 장미꽃을 들고 있던 영웅재중때문이다. ‘하루만 니 방의 침대가 되고 싶다’는 대사와 함께 시작되는 이 뮤직비디오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내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하얀 셔츠를 입은 고등학생 영웅재중이 나오는 순간, 솔직히 말해 심장이 터질 뻔했다. 지금 다시 봐도, 하두리 필터 같은 보정 속에서도 그 미모는 여전히 미쳤다. 그리고 동방신기는 노래까지 잘했다. 아카펠라 기반 그룹으로 시작했기에 보컬 실력은 기본으로 갖춘, 정말 완벽했던 아이돌이었다.


풋풋한 데뷔 초의 매력과 설렘을 고스란히 담아낸 동방신기의 첫 뮤직비디오는 내가 마치 고아라가 된 것 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고등학생 오빠들은 다 동방신기 처럼 생겼을까하는 그런 말도 안되는 기대감을 만든 대단한 ‘SM’.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를 초등학생의 마음에, 비주얼로 불을 지핀 동방신기의 HUG는 그렇게 내 인생 최고의 뮤직비디오가 되었다.


[3] 린 - 사랑했잖아 (2004.03.29)

https://www.youtube.com/watch?v=Z9mDJoQxOrg&list=RDZ9mDJoQxOrg&start_radio=1


아마 그 시절 ‘인터넷 소설’의 영향이었을까. 2000년대, 마치 ‘그놈은 멋있었다’처럼, 인터넷 소설 감성이 가득 담긴 뮤직비디오가 탄생했다. 바로 린의 ‘사랑했잖아’다.


이청아와 그룹 태사자의 박준석이 출연한 이 뮤직비디오는 전형적인 드라마타이즈 형식으로, 한 편의 웹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설정만 보면 꽤나 복잡하다. 연애 중인 박준석을 짝사랑하게 된 이청아, 그리고 그녀에게 점점 마음이 흔들리는 박준석. 따지고 보면 순정과는 거리가 먼, 양다리 감성의 이야기다.


노래 가사만 보면 이별 후 지난 사랑을 그리워하는 내용인데, 뮤직비디오 속 스토리는 사실 이뤄지지 못한 짝사랑의 서사다. 얼핏 보면 어긋난 설정처럼 느껴지지만, 박준석의 날티나는 매력과 이청아의 애틋한 시선이 어우러져 당시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 특유의 감성이 느껴진다. 마치 일진과 사랑에 빠진 전교 1등 모범생같은 느낌이랄까.


지금 돌이켜보면 다소 웃긴 플롯인데, 박준석의 외모를 보니 그 시절엔 왜 그렇게 빠져들었는지도 알 것도 같다.


[4] 테이 - 독설 (2009.09.09)

https://www.youtube.com/watch?v=heoqJmXxVTk&list=RDheoqJmXxVTk&start_radio=1


내게 ‘송중기’라는 배우를 처음 각인시켜 준 뮤직비디오. 요즘처럼 화려한 연출이나 복잡한 스토리라인 없이, 흑백 필터와 송중기의 연기만으로 3분을 꽉 채운 영상이다.


마치 송중기가 직접 부른 노래처럼, 립싱크를 하며 이별의 슬픔을 눈빛과 표정으로 고스란히 담아낸 그의 모습은 테이의 애절한 가창력을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해준다. 누가 독설을 했는지도 모를 상황 속에서, 간절하면서도 슬픈 표정으로 애써 감정을 누르는 송중기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깝게 만들고, 동시에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을 이끌어낸다.


특별한 장치 없이 오직 배우 한 명의 감정 연기만으로도 한 곡의 서사를 완성해 낸 테이의 독설. 내가 이 뮤직비디오를 아직까지도 인상 깊게 생각하는 이유다. 그리고 감정만으로도 이렇게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배우를 발견했다는 사실이 나에겐 더 특별한 느낌이다.


[5] 보아 - GAME (2010.08.10)

https://www.youtube.com/watch?v=B0Xsa-2sTLA&list=RDB0Xsa-2sTLA&start_radio=1


MZ에게 보아의 베스트 뮤직비디오를 꼽으라고 한다면, ‘GAME’을 빼놓을 수 있을까? 수많은 명곡과 레전드 무제를 남긴 보아이지만, 그 중 ‘GAME’은 유독 특별하게 기억된다.


5년 만의 국내 컴백, 선공개곡으로 발표 ‘GAME’은 이전까지 보아가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스타일과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감각적인 영상으로 담아내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이 작품은 보아의 친오빠이자 영상감독인 권순욱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도 알려져 화제성에 힘을 보탰다. 이 뮤직비디오는 보아의 카리스마와 영상미가 완벽하게 맞물리며 공개 당시 큰 호평을 받았고, 지금 다시 봐도 시대를 앞서간 아트워크는 계속해서 회자될 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 시절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의 장기자랑에 빠지지 않던 보아. 나에게도 그녀는 단순한 가수를 넘어 ‘우상’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어쩌면 운명이었을까. 나는 이 ‘GAME’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프로덕션에서 조연출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영감을 주었던 뮤직비디오 감독과 함께 일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이 내게는 특별했고 또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 업계를 떠나게 되었고 어느새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니까.


그래도 난 아직 뮤직비디오를 좋아한다. 음악의 감정과 서사를 완성하는, 하나의 독립된 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찾아보고, 그 안에서 여전히 영감을 받는다.


그리고 점점 더 세련되고 독창적으로 진화하는 영상들 속에서, 어느 누군가에게 새로운 꿈이 될 뮤직비디오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