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근몬스터 Aug 10. 2021

1년 365일 다이어트 하는 사람

내 키에 뚱뚱한 건 죄처럼 느껴졌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가장 마지막으로 잰 키는, 정확히 178.3cm이다. 2018년도에 직장인 건강검진에서 쟀던 키인데, 몸무게는 아마 지금보다 7~8kg은 덜 나갔을 때일 것이다. 나는 키가 훌쩍 컸었던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다이어트 해야지'라는 생각을 멈춘 적이 없다. (물론 그 생각대로 내 몸뚱아리가 움직인 적은 별로 없다.) 


언제나 맛있는 걸 먹다가도, 배가 부르면 '또 살찌겠네...'라는 생각이 꼬리표처럼 달라붙었다. 체중계에 뜨는 숫자에 충격먹고 운동도 했다가, 식단 조절 좀 해서 몸무게가 줄면 다시금 마음을 놓고 먹곤 했다. 회사에서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속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점심은 적게 먹었지만 저녁은 집에 돌아가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명목 하에 맛있는 걸 먹었다. 하지만 맛있는 걸 먹어서 기분 좋아지는 것도 잠시. 배가 부르면 다시금 나에 대한 한심함과 경멸감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왜 배달 음식으로 돈은 돈대로 쓰고 살도 찌우고 있지? 왜 살을 돈 주고 항상 사고 있니? 내 자신을 매번 꾸짖었지만 이런 상황은 수도 없이 반복됐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기 일쑤였다. 다이어트를 성공하고 기깔나는 비포 & 애프터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은 나에게 신을 넘어서는 어떤 동경과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운동법과 식단 관리법을 모조리 캡쳐하거나 기록해놓지만, 결국 그 기록들도 뒤로 밀리고 밀려 결국엔 삭제하기 일쑤였다. 이렇게 '다이어트'는 항상 내 머릿속 한가운데 깊게 자리잡은 어떤 강박과도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어떤 자리를 가나 큰 키로 주목받았고, 외모에 대한 지적을 받다보니 내 몸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이전 글에서도 한번 말한 적이 있듯이 괴로웠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며 내 몸에 대한 혐오감은 굉장히 커졌었다. 키도 큰데 뚱뚱하기까지 하다니... 어딜가나 내 커다란 몸뚱아리가 눈에 들어올 것 같았고 누구나 나를 보면 뒤에서 쑥덕일 것 같았다. "왜 저렇게 여자가 덩치가 커?" 내 옆에 우연히 마른 여자가 같이 서기라도 한다면 드는 조바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옆에 날씬한 사람이 서 있으니 비교돼서 더 커보이겠군... 나는 안 그래도 키까지 큰데 말이야... 


가끔은 엄마와 아빠 또한 나에게 살을 빼라며 구박을 하기도 했다. "너는 여자애가 왜 그렇게 허벅지가 두껍냐?" 하루는 아빠가 너무 살로 나에게 구박을 하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는 방에 하루종일 쳐박혀 있던 적도 있었다. 그 당시 썼던 일기 내용이 아직도 생생한데, '살로 자꾸 구박하니까 죽고 싶다. 내가 죽으면 엄마 아빠가 그때는 나한테 미안해할까?' 이런 내용이었다. 지금은 그렇게까진 타박하지는 않지만, 종종 "그래도 니 나이 때 살 빼놔야지. 더 나이 들면 못 뺀다"식의 잔소리는 여전히 끊기지 않고 있다. 



자신의 외모와는 상관없이 당당함을 가지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외적인 요소와 상관 없이 행동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은 사람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도 안다. 영화 <아이 필 프리티>를 보면, 주인공 '르네'도 나처럼 항상 다이어트 강박을 가지던 여성이었지만 일련의 사고로 인해 자신의 외모를 사랑하는 자존감 풀 충전인 상태로 변한다. 그녀의 모습은 이전과 변함 없었지만, 행동의 변화로 인해 주위 사람들은 그녀를 이전과 다른 매력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머릿 속으로 '난 뚱뚱해도 괜찮아, 뭐 어때!'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천지차이다. 당장 옷을 살 때만 해도 더 큰 사이즈를 뒤적이는 나를 보며 자존감이 급 하락한다. 매번 눈에 띄지 않는 무채색의 옷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조금이라도 달라붙거나 노출이 있는 옷은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구매를 포기한다. '내 키에... 내 몸에 무슨 이런 옷이야...'를 되뇌며 말이다. 


대부분 뚱뚱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편견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가 주위에서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뚱뚱한 사람을 비웃거나, 경멸하거나, 무시했다. 뚱뚱한 여자는 더욱 더 싫어한다. 그런데 그 뚱뚱한 여자가 키도 엄청나게 크다면, 나는 어딜가나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뚱뚱한 키 큰 여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항상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의식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키가 크지만 날씬하지 않기 때문에 눈에 띄어서는 안됐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면서 언제든 욕할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보다, 내가 다이어트를 하는 게 빠를 거라고 생각되지만 오늘도 다이어트는 쉽지 않다. 밤 10시 퇴근 예정이라, 또 자리에서 건강하지 않은 무언가로 배를 채워야겠지. 어쩌면 내가 살을 빼기 전에 사람들이 '뚱뚱한 사람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는 것이 빠를 수도 있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도 나 싫어하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