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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근몬스터 Dec 05. 2022

156, 167, 178

세 자매의 키

키가 지나치게 크다 보니 사람들에게 듣는 단골 멘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자주 듣는 말 BEST 3' 중 하나를 꼽아보자면 "가족들도 다 키가 커?"라는 질문이다. 나는 그때마다 답변을 할 생각에 아주 조금은 설레면서 대답한다. "아니, 둘째는 키가 167인데, 막내는 156이야."라고 하면 듣는 사람 10명 중 8명은 "그렇게 키 차이가 많이 나?!"하고 놀라기 때문이다. 막내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왠지 모르게 막내의 키를 이야기할 때마다 놀라는 사람들의 반응이 즐겁다. 막내는 아직도 종종 "큰 언니가 키 큰 유전자를 먼저 다 빨아갔다(?)"며 화를 낸다. 


키는 거진 유전의 영향이라고 한다. 아빠의 키는 183cm, 엄마의 키는 167cm 정도니 확실히 평균보다 키가 큰 유전자를 받기는 한 거 같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적을 회상하며 어린이집 갔다 와서 자고 일어나면 키가 커 있었다고 오버 조금 보태서 이야기하곤 했다. 고모도 키가 170cm가 넘었고, 친가 대대로 여자들이 키가 컸다고 한다. 들은 지 오래되어서 기억은 정확하게 나지 않지만 할머니의 할머니인가, 할머니의 엄마인가... 그 옛날에도 키가 170cm가 넘으셨다고 한다. 특수한 유전자(?)를 이어받은 것은 감사하지만, 때로는 막내 동생의 말처럼 내가 다 유전자를 정말 빨아먹은 건 아닌지, 의심이 되기도 한다. 


몇 없는 157 막내 동생과의 투샷


막내 동생은 평균 키보다 작은 키를 가지고 있다 보니, 나랑 둘이 서 있으면 위 사진처럼 머리 하나만큼 차이가 난다. 종종 동생이 "내 친구들이 언니 저번에 보고 진짜 깜짝 놀라더라."라고 말할 때가 있다. "왜?" "나는 키가 작은데 언니는 진짜 크니까." 동생 친구들의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슬슬 그런 반응을 즐기곤 한다. 동생 친구나 지인들을 마주치고 나면, 으레 동생에게 "언니 키보고 뭐래?"라며 으스대는 투로 물어본다. 그럼 동생은 "지인짜 크대. 깜짝 놀랐대."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래서 난 동생의 친구들을 처음 볼 때면 속으로 괜히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번 친구는 내 키를 보고 얼마나 놀랠지, 가늠하면서 말이다. 


한 가지 웃긴 건 내 동생들은 둘 다 여자이고, 둘 다 현재 남자 친구가 있는데 나를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물론 무조건 봐야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집안 분위기 상 서로 남자 친구가 생기면 한 번씩은 보곤 했는데, 아직 두 여동생들의 현재 남자 친구는 본 적이 없다. 동생들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언니 키 말해주니까 못 만나겠대."라고 했다더라. (물론 진심은 아니고 장난식이 었던 듯) 둘 다 나보다 키가 작은 것이었다. 웃기면서도 뭔가 뿌듯했다. 이긴 것 같다는 이상한 느낌이랄까. 또 내가 힘이 센 건 아니지만, 혹시나 동생들에게 허튼짓(?)을 할 경우 내가 찾아가서 팰 수도 있을 것 같은 자신감조차 생긴다. 보통 여자 친구의 오빠는 무서워해도, 언니는 안 무서워하니까. 내가 덩치라도 크니 초면에 압도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괜한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동생들과 나란히 서 있으면 웃기게도 키 순으로 도-레-미가 된다.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은 적은 없지만 묘하게 안정감이 있는 구도가 된다. 내 키를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동생들보다 키가 큰 것은 좋다. 그렇게 잘난 언니는 아니더라도 나보다 작은 동생들을 그래도 지켜줄 수는 있을 거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은 마음 한 켠에 있는 것 같다. 물론 동생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할지 의문이긴 하다. 아마 아닐 거 같긴 하지만... 


그나저나 조만간 동생들의 남자친구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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