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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놀 Jan 07. 2022

빌 게이츠의 화장실

북 에세이, <빌 게이츠의 화장실>, 이순희, 빈빈 책방

    

화장실은 공포다?

어릴 때 방학을 맞아 외갓집에 가면 밤마다 사촌 언니가 잠자리에서 들려주던 이야기가 있다.

바로 변소 괴담이다. 한밤중에 변소에 가면 달걀귀신을 만나거나 빨간 손이나 파란 손이 나온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괴담을 듣고 잠이 든 날 밤은 어김없이 오줌이 마려웠고, 잠자는 언니를 깨우지만 일어날 리가 없다. 뒷마당에 있는 변소는 멀게만 느껴졌고, 달걀귀신을 피해 변소로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빨간 손과 파란 손'에 대한 공포로 달달 떨면서 소변을 보고 숨을 고르며 다시 방으로 갔더랬다.   

  

그래서 화장실을 실내에 있어야 하건만. 무던히도 아쉬웠던 할머니네 변소는 몇 해가 지난 뒤 집을 세로 지으며 수세식으로 바뀌었다. 그때 얼마나 좋았던지. 그런데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시골집의 넓은 화장실은 화장실로만 쓰인 게 아니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화장실의 한 벽면에  선반을 매달고 할아버지가 담가놓은 뱀술을 올려놨다. 변기에 앉으면 딱 뱀들과 마주해야 하는 구조였다. 빨간 손과 파란 손의 공포에서 벗어나니 이젠 뱀이었다. 그래도 뱀에 대한 공포는 그리 크지 않았다. 내가 자랐던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유리병 속에 들어 있는 뱀이 어쩌겠나 하는 생각에 쳐다보지 말자, 쳐다보지 말자고 다짐하고 들어갔다. 그래도 나올 때는 꼭 한 번씩 쳐다봤다. 진짜 뱀인가?    

 

어린 시절 느꼈던 변소 괴담에 대한 공포가 현재 진행형으로 실제로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니 놀랄 일이다. 분뇨로 오염된 환경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숨을 거둔다는 사실. 2015 세계 보건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5세 이전 어린이의 사망원인 중 두 번째가 설사라고 한다. 해마다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지 못하고 설사 때문에 사망하는 어린이가 무려 52만 명에 이른다니. 우리나라의 2016년 한 해 동안 3세 이전에 감염성 및 기생충성 질환으로 사망한 어린이와 소화계통 질환으로 사망한 어린이가 12명과 5명이라는 점을 비교해보면 심각함이 피부에 와닿는다.   

  

화장실은 인권이다

인도에서는 화장실이 없으면 신부도 없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을 정도로 야외 배변 인구가 69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얼핏 인도에서 야외에서 배변을 본다는 얘기를 들었어도 그것이 목숨과 연관된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집에 화장실이 없는 여성들은 성폭행을 당할 위험이 두 배나 높다고 한다. 새벽이나 늦은 밤에 볼일을 보러 인적이 드문 곳을 가다가 성폭행을 당하거나 목숨까지 잃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깨끗하고 안전한 화장실은 그야말로 인권 보호의 차원에서 봐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들을 위해 화장실 혁명의 선두주자를 공모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빌 게이츠다.

그는 기본적인 화장실조차 쓰지 못하는 사람들, 한나절을 걸어가야 간신히 마실 물을 구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물, 위생, 보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혁신적인 화장실 공모전>에서 내건 최소기준은 배설물의 세균과 미생물을 제거하고 에너지, 깨끗한 물, 영양소 등이 귀중한 자원을 회수하는 화장실, 상하수 배관망이나 전력망이 없어도 작용하는 화장실, 한 사람이 하루 사용할 때 드는 비용이 5센트(50원) 이하인 화장실, 가난한 지역에서 지속가능성이 있고 경제적으로 수익성이 있는 위생서비스 및 사업으로 성공할 수 있는 화장실,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누구나 사용하고 싶어 하는 차세대 화장실이 조건이었다.   

  

지속 가능한 화장실 혁명

그렇게 탄생한 것이 옴니 프로세서다.

작동 단계는 건조기를 이용해 분뇨를 건조해 증기와 고형물로 분리하고 보일러를 이용해 고형물을 높은 온도로 태워 재로 만든다. 그다음 보일러에서 발생한 증기의 힘을 이용해 전기를 만든다. 증기를 여과 응축, 증류시켜 깨끗한 물로 바꾼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술을 제공하는 적정기술에 더해서 전 세계가 다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빌 게이츠의 목표였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피푸 백이란 일회용 변기다. 세계 각지의 가난한 마을에 변변한 화장실을 마련할 여유가 없어 큰 구덩이를 파서 만든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데 공동 화장실을 가려면 한참을 걸어가야 해서 급한 경우에는 사용하기 어렵고 남의 눈을 피해 볼 일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플라잉 토일럿이란 것을 만들었다. 변기 대용의 봉지를 쓰는 것에 착안해서 봉지 안에 요소 분말이 있어 배설물을 넣은 뒤 보름이나 한 달 지나면 모든 병균이 제거된다. 봉지는 생분해성 재질로 되어 있어 땅에 묻으면 배설물과 함께 분해되어 배설물 안의 영양분이 고스란히 땅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피푸백은 케냐 나이로비의 빈민 지역 키베라의 실랑가 마을에서 처음 사용된 후 널리 보급되어 지금은 수만 명이 쓰고 있다고 한다. 가격은 한 개에 3 케냐 실링(약 30원). 볼일을 본 뒤 분뇨가 든 피푸백을 수집소에 가져다주면 1 케냐 실링을 돌려받고 화장실 공간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고 소득원이 된다는 점에서, 지역민들에게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성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공동 화장실도 만들어 현지 주민에게 다양한 소득원을 제공했는데 화장실을 임대해 운영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 화장실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해 돈을 버는 사람, 화장실에 모인 분뇨를 수거하고 요금을 받는 사람, 퇴비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일자리가 생기고 농가들은 품질 좋고 값싼 퇴비를 이용해 소득이 늘어나는 구조로 성공적인 적정기술을 공급했다.     


똥이 꿀로 바뀐다고?

선진국에서도 깨끗하고 안전하며 생태 친화적인 화장실이 필요하지 않을까? 저자는 ‘분뇨와 하수는 무시되어 온 보물창고’라는 표현으로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립마을 홍천의 소매곡리 마을을 소개한다. 그 마을은 냄새나는 똥통마을로 소문났었는데. 분뇨를 자원으로 탈바꿈시키는 가축분뇨 바이오가스화 시설을 설립했다고 한다. 이 시설에서 나오는 바이오가스는 도시가스로 정제되어 각 가구의 난방 연료로 공급되어 가구당 연간 91만 원의 난방비를 절감해 주고 있다고 한다. 또한 울산의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의 사이언스 월든 연구진은 인분을 분해해 연료로 만드는 화장실을 개발했고, 연구진은 똥의 자원 가치를 살리는 이 화장실을 쓸 때 얻어지는 경제적 가치에 꿀이라는 옷을 입히고 이 꿀을 화폐처럼 쓰게 한다고 한다. 사용자가 볼일을 본 대가로 받은 꿀은 카페에서 음료수로 교환해 준다고 하니 이보다 더한 선순환은 없을 듯하다. 이들은 과학이 일상이 되는 집을 만들어 똥을 바이오 에너지로 바꿔 난방과 온수, 식당 연료, 자동차 연료로 사용하는 순환시스템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데 기대된다.     


지속 가능한 화장실은 지속 가능한 발전이다

지속 가능한 화장실이 마련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깨끗한 물이 보호된다. 재생에너지가 생산되고 자연환경이 보호된다. 농업생산이 늘어나고 건강이 향상되며 소득도 높아진다. 학교 출석률 또한 높아진다. 화장실 혁명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지만, 거기엔 경제적 비용이 따른다. 가난해서 기술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기술을 이용해 삶을 개선시키고, 생명권을 지켜주는 것은 우주개발 못지않게 중요하다. 적정기술은 더 많이 개발되고 연구되어야 할 기술이다. 환경문제와 경제적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며 무엇보다 인간의 삶을 보호하고 개선하는 기술이 되도록 실패 없는 기술 발달에 대한 기대를 담아 본다. 우리 집에서 화장실에 대한 적정기술은 사용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변기에 생수병 하나 넣어두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생각난 김에 넣고 왔다. 물이라도 적게 써야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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