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12
느닷없이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어제는 정말 갑자기, 영화를 보다가 옛날 옛적부터의 일이 떠올랐다.
방학이 되면 외할머니댁에 갔더랬다.
비둘기호라는 이름을 가진 한없이 느린 기차를 타고 그 시절의 보드게임이었던 화투로 메모리 게임을 했다. 우리 남매가 만들어낸 게임이었는데 화투를 바닥에 모두 뒤집어 놓고 같은 짝을 찾는 게임이었다. 점수는 화투에서 주는 대로 그대로 했기에 우리는 광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메모리 게임을 몇 번 하고, 변형 게임을 여러 번 해도 대전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지루한 여행을 한 뒤 대전 역에 내리면 까맣게 그을은 얼굴에 주름이 깊은 외할머니가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내 새끼들”하며 맞아 주었다.
할머니 집에 도착하면 대청마루에 앉아 할머니가 준비해둔 간식을 하나 하나 해치웠다. 옥수수, 개떡, 얼음 자작한 미숫가루, 참외…. 먹을 것을 모두 해치운 뒤 하나둘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여름 내내 낮에는 다리 밑에서 놀았고, 저녁이면 원두막을 지키면서 놀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즐거움은 이모와 함께 하는 극장 나들이었다.
그 시절 봤던 영화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가슴 조이며 눈물을 줄줄 흘렸던 엄마 찾아 삼만리, 그 당시에는 다소 일렀던 병태와 영자의 풋풋한 사랑, 눈감고 손가락으로 얼굴 가리고 봤던 지옥문….
오빠들은 누릴 수 없었던 나만의 호사였다. 이모의 손을 잡고 시내로 나간 사람은 늘 나였다.
그 시절의 뿌듯한 기쁨이 되살아난다.
그때부터였을까. 한 사람이 빠듯이 서 있을만한 에스컬레이트가 있는 대전에 하나 밖에 없는 백화점에서 이모가 사준 노트가 나의 비밀노트가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 쓰는 것이 즐거웠고, 예쁜 노트를 아끼는 즐거움이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에게 꾸지람을 듣기 일쑤였지만 밖에서 보낸 즐거운 시간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흘려들으면 그뿐이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꾸지람이 몹시 재밌다. 싸리 빗자루를 들고 내리치면서 이모들의 일탈 행위에 대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스토리가 너무나 재미있었기 때문에 꾸지람이라기보다는 푸념 섞인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외할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일장연설을 시작하신다.
“요년들, 바른대로 말해. 어디 갔다 왔어?”
“책보고 왔어. 서점에서. 이것 봐, 공부하려고 노트도 샀잖아.”
“내가 속을 줄 아냐. 둘째 년도 공부하러 갔다 온다면서 쌀 뒤주에 숨겨놓은 돈 훔쳐가 옷 사 입고 뾰족구두 사고, 셋째 년도 잠깐 사이 벽장에 있는 돈 훔쳐 달아나 코 수술하고, 내가 한두 번 속은 줄 알아? 찬장 선반에 넣어두었던 돈 가져갔지?”
“아버지가 돈을 안 주니까 그렇지.”
“그렇다고 어미 돈을 훔쳐?”
“서울서 오랜만에 왔는데 영화라도 보여주고 해야지.”
“이런 것들을 봤나! 영화를 본 게야? 얼마 남았어?”
이모가 주섬주섬 잔돈을 꺼내주고 얼른 달아난다.
나도 같이 달아나 옥상으로 도망가면 할머니는 '이년들'을 하면서 고함을 치시지만 쫓아 오시진 않으셨다.
할아버지가 워낙 구두쇠라 이모들은 돈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할머니가 쌀 뒤주며 찬장 선반에 돈을 놓아둔 것은 어쩌면 도둑들을 알면서도 놓아두신 건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런 스토리를 이야기하며 다음번에는 이불 속에 돈을 꿰매야겠다고 은근슬쩍 힌트를 주신 것이 아닌가.
겨울 방학에는 이불 홑청을 샅샅이 손가락으로 만져가며 뒤져서 찾아내 영화를 보러 갔으니 말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외갓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 후, 막내 이모도 결혼했고, 나도 자라 외갓집에 대한 향수는 그렇게 묻혀갔다. 그러나 이렇게 가끔 ‘느닷없이’ 기억이 떠오른다. 그 즐거운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