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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어떤 날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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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놀 Aug 13. 2021

아파트의 아우라

짧은 생각 #17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뉴욕의 거리를 위에서 내려다본모습을 그린 거란다.

빌딩들과 그 사이, 자동차들이 모두 직사각이나 정사각형으로 그렸다.

아파트 창밖으로 몬드리안의 그림이 있다. 불 밝힌 전등이 창밖에 스며 제법 분위기가 있다.

브로드웨이는 아니지만, 어둠이 짙어지면서 녹아내려 건물들에 스며드는 것처럼 어둠과 빛이 황금비율로 느껴진다.


경기도의 작은 도시 낡은 아파트에 무어 그리 아름다움이 있을까마는 때로는 이런 절묘한 비율들이 아름다움을 만들기도 한다.

불 밝힌 창문들에게 서사가 있다.

집집마다 사연 없는 집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 불 밝힌 창문들을 바라보면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는 듯이 여겨진다.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하나뿐만'이라는 것을 잃게 되었다,

아마도 산업혁명 시기,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부터일 것이다.

아파트도 대량 생산된 집의 형태이니, 예전의 하나밖에 없는 나의 집은 아닐 것이다.

집이 갖고 있는 아우라를 잃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빨간 벽돌로 지은 다락방이 있는 집에 살았다.

대추나무 한그루와 여름이면 피어나는 분꽃과 맨드라미, 나팔꽃이 있는 집이었다.

뒤꼍이 있어서 담을 끼고 장독대가 있었고, 그곳에 빨래터가 따로 있었다.


엄마는 햇볕이 잘 드는 뒤꼍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물을 다듬을 때도, 빨래를 할 때도 옆집 아줌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뒤꼍에서 커피도 나눠 마시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커피는 커다란 노란 양은 주전자에 끓여서 설탕을 듬뿍 넣어 마시곤 했다. 소다를 넣기 전의 달고나 같았다.

이것이 내 어린 시절 집에 대한 기억이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즈음, 그 마을은 새롭게 바뀌었다. 해바라기 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상당히 큰 연립주택 단지가 되었다. 평균화된 집은 모두가 똑같은 구조였고, 편리한 구조다. 화단은 공유의 공간이 되었고, 장독대는 사라졌다. 엄마들의 뒤꼍은 사라졌다. 대신 양쪽으로 베란다라는 것이 생겼다. 베란다에 어설프게 장독대를 만들었다가, 동네 아줌마들이 합심해서 김장김치 독을 묻을 공간을 공유공간으로 만들어 한동안 연립주택 호수가 적힌 항아리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진풍경을 만들기도 했다.

일이 년 후 규모가 줄고 사라졌지만 말이다.


이렇게 우리의 삶은 평균화되고 있다. 우리의 삶은 거의 대부분이 아파트나 빌라의 공동주택에서 이루어지며 그래서 부딪히는 부분도 있지만 감수하면서라도 아파트에 살기를 원한다.

나 역시도 아파트를 떠난 생활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한밤중에 바라보는 부로드웨이 부기우기가 좋은 모양이다.


한강 변을 바라볼 수는 없어도 몬드리안이라니, 근사하지 않은가.

아우라는 잃었지만 긍정적으로 본다면, 단순한 몬드리안의 절제된 선과 면을 얻은 것이고

모두가 같아서 오히려 다름을 추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구해줘 홈즈>에 나오는 전원주택으로 이사하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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