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윤정은/ 북로망스
윤정은 작가의 아름다운 마법이 시작된
<메리골드 마음세탁소>를 읽었다.
한 동안 서점가에 불었던 잡화점, 편의점, 백화점이
들어간 제목들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책에도 유행이 있음을 실감케 했던
비슷비슷했던 표지들도 한 몫했고.
나에게 이 책도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힐링, 치유, 마법... 뭐, 그런 유행하는 느낌.
그런데 이제 와서 <메리골드 마음세탁소>에
손길이 간 이유는 마음의 얼룩을 마법처럼 지운다는
문장 때문이었다. 무엇하나 내 마음처럼 쉽지 않던
시기에 잔뜩 구겨지고 얼룩진 내 마음도 마법처럼
지울 수 있을까 싶어서.
소설은 메리골드라는 마을에 마음세탁소를 차린 지은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마법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지은은 웃음도 삶의 의미도 없이 살아간다.
또 시작된 이번 생은 바다와 도시가 함께 어우러진 '메리골드' 란 곳에 정착하기로 한 지은은 동네를
거닐다 마을 한 구석 세탁소를 보고 생각한다.
빨래를 하듯 마음의 얼룩도 지워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메리골드 마음세탁소의 문이 열린다.
마음세탁소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자신의
삶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아픔을 완전히 지워 없앨 것인지,
구겨진 부분만 다리고 빨아서 다시 간직할 것인지를 선택하게 된다.
지은은 찾아오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준다.
그리고 당신은 잘하고 있고, 잘했다, 앞으로도 잘 해낼 테지만, 힘들 땐 기대 쉬어도 된다고 말한다.
세탁소를 찾은 사람들은 지은의 위로를 받으며
깨끗하게 마음의 얼룩을 지우고
다시금 살아가는 용기를 일으킨다.
저는 그냥 이런 일상이 좋아요. 불행하다 느꼈던 상처들을 지우고 싶던 순간이 물론 많았지만 그날들이 있었으니 오늘이 좋은 걸 알지 않겠어요. 불행을 지우고 싶지 않아요. 그 순간들이 있어야 오늘의 나도 있고, 재하도 있으니까요. p.171
반면 아픔을 아프게만 여기지 않고
깨끗하게 빨고 판판하게 다려서 안고 사는 쪽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아픔은 버려야 할 시간이 아니다.
아픔의 시간들이 있어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상처가 아물고 난 자리에 남은 흉터는 그래서 더 소중하다.
만약 현실에도 마음세탁소가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지금까지 내 안에 남아 있는 아픔과 불행의 기억들을 깨끗하게 모두 지워달라고 할까?
글쎄... 앞으로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싶다.
책을 읽으며 삶의 아픔의 순간들을 견뎌온 내가,
그 순간들을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살아낸 내가,
스스로가 기특하단 생각을 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도 또 지나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잔뜩 구겨져 있던 마음으로 집었던
<메리골드 마음세탁소>
지금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누군가 필요한 순간에 '문학'이 있어 참 다행이었다.
혹, 지금 마음이 온통 구겨져 웅크리고 있다면,
마음의 얼룩을 지워주는 <메리골드 마음세탁소>의
문을 두드려 보기를 권한다.
살아 있어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