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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과마눌 Dec 04. 2018

‘앉아서마늘까’ 면 눈물이 나요

이진명 시인


                                                                      이진명 

  처음 왔는데 이 모임에서는 인디언식 이름을 갖는대요 
 돌아가며 자기를 인디언식 이름으로 소개해야 했어요 
 나는 인디언이다! 새 이름 짓기! 재미있고 진진했어요 
  
 황금 노을 초록별 하늘 새벽 미소 한빛누리 하늘호수 
 어째 이름들이 한쪽으로 쏠렸지요? 
 하늘을 되게도 끌어들인 게 뭔지 신비한 냄새를 피우고 싶어 하지요? 
  
 순서가 돌아오자 할 수 없다 처음에 떠오른 그 이름으로 그냥 
 앉아서 마늘 까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완전 부엌 냄새 집구석 냄새에 김 빠지지 않을까 미안스러웠어요 
 하긴 속계산이 없었던 건 아니죠 
 암만 하늘 할아비라도 
 마늘 짓쪄넣은 밥반찬에 밥 뜨는 일 그쳤다면 
 이 세상 사람 아니지 뭐 이 지구별에 권리 없지 뭐 
  
 근데 그들이 엄지를 세우고 와 박수를 치는 거예요 
 완전 한국식이 세계적인 건 아니고 인디언적인 건 되나 봐요 
 이즈음의 나는 부엌을 맴돌며 몹시 슬프게 지내는 참이었지요 
 뭐 이즈음뿐이던가요 오래된 일이죠  
 새 여자 인디언 앉아서 마늘 까였을까요 
 마룻바닥에 무거운 엉덩이 눌러 붙인 어떤 실루엣이 허공에 둥 떠오릅니다 
 실루엣의 꼬부린 두 손쯤에서 배어 나오는 마늘냄새가 허공을 채웁니다 
 냄새 매워오니 눈물이 돌고 줄 흐르고 
  
 인디언의 멸망사를 기록한 책에 보면 
 예절 바르고 훌륭했다는 전사들 
 검은 고라니 칼 까마귀 붉은 늑대 선고 차는 곰 앉은 소 짤 막소… 
 그리고 그들 중 누구의 아내였더라 
 그 아내의 이름 까치… 
 하늘을 뛰어다니다 숲 속을 날아다니다 
 대지의 슬픈 운명 속으로 사라진 불타던 별들 
  
 총알이 날아오고 대포가 터져도 
 앉아서 마늘 까는 바구니 옆에 끼고 
 불타는 대지에 앉아 고요히 마늘 깝니다 
 눈을 맑히는 물 눈물이 두 줄 
 신성한 머리 조상의 먼 검은 산으로부터 흘러옵니다 

                                                             『세워진 사람』중에서, 창비



가진 거라곤
넙데데한 땅 떵이밖에 없는 곳에 살다 보면
인디언식으로 이름 짓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지를 알게 된다

하늘이 얼마나 큼지막한 지
그 하늘의 표정은 또 얼마나 조증과 울증의 경계를 오가는지

애간장 태우는 석양
심란한 초저녁
메롱메롱 깜깜한 밤
확 안 올까 보다 하다 오는 새벽

그러니,
인디언 부르는 게 
제대로 진리



화병 제대로 도졌던 젊은 날

인디언식 내 이름은

빡친데 또 빡쳐 였다지


조련 노련한 애들 셋 만나

쑥과 마늘 쳐묵 하면 마눌 되는 진리 깨닫고

닥치고 정진 외치고 산다


그리 살며 오가는 길

몇 장 안 남은 나무에 이파리 하나 

내게 날아와

신발에 꽂히더라


팁~이란다

위자료 같은 디?








* 맨 위는 시인의 시, 사진 아래는 죄다 쑥언늬 사설

* 다들 함 지어 봄세, 인디언 이름..이런 거 우리 많이 해보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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