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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i Oct 16. 2024

오늘도 이름을 지어본다.

이름에 '도'자가 들어가서 도둑이라뇨!

인터넷에서 아기 모양의 썬캐처를 발견했다. 오동통한 다리 모양이 어찌나 귀여운지! 남편에게 귀엽지 않냐며 보여주었더니 곧장 주문을 해 주었다.


빠르게 도착한 썬캐처. 창가에 걸어두니 아주 예뻐서 멍하니 보게 된다.


아기 모양을 보다 보니 문득 써 보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는 남편에게 '당장에 쓸 데는 없지만 제법 재미난 질문'하기를 좋아하는데, 그중 제일 재밌는 주제는 아이 이름 짓기이다. 물론 '당장에 쓸 데는 없지만'에서 드러나듯, 우리 부부는 우리 둘 외에는 아직이다. 극 이성적인 남편은 '왜 일어나지 않은 일에 그렇게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하냐'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착한 사람은 나의 이름을 짓기에 동참해 준다.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이름이라거나, 존경하는 인물의 이름이라거나... 지난번엔 좋아하는 와인 품종과 지역에서 한 글자씩 따 보기도 했는데, 이 경우는 강아지 이름으로도 안 붙일 조합들이 생겨서 이렇게는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나는 이름 짓는 방법 중 남편 이름과 내 이름을 합쳐서 만드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우리 부부의 이름에서 각기 다른 네 글자를 요리조리 조합하면 제법 괜찮은 이름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내 이름 글자가 앞에 올 때만 예쁘게 완성되지만..) 하지만 가능하면 우리 이름 네 글자 중 한 글자는 피하고 싶다. 그 한 글자 때문에 어릴 적 내가 겪은 수고를 내 자식이 하지는 않았음 하기 때문이다.


내 이름에는 '도'자가 들어간다. 성인이 되고 난 뒤에는 제법 괜찮고 종종 세련됐다는 소리까지 듣지만, 어릴 때는 이 글자가 상당히 싫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순수악(惡)들은 아는 단어 중 '도'자가 들어가는 것들 중 가장 자극적인 '도둑'으로 별명 붙이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름 대신 도둑으로 불린다니, 얼마나 끔찍한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기억이 몇 가지 있다. 밖에서 만나면 "야 ○도둑! 쟤는 도둑이에요."라는 소리를 지껄인다든지, 교과서에 도둑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우리 반에도 도둑 있는데!"라며 깔깔거린다던지.. 언젠가는 저 녀석들 누군가 찌렁찌렁 외치는 탓에 처음 보는 어른이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데, 어찌할지를 몰라서 "아니에요.. 이름으로 놀리는 거예요.."라는 변명을 모르는 사람에게 황급히 붙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땐가. 진짜로 도둑 누명을 쓸 뻔했었다.

당시 어린이 잡지 부록으로 나오는 편지지가 있었는데, 플라스틱 파일 케이스에 그걸 모아서 각자의 컬렉션을 담아 다니는 게 여자애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케이스를 열어서 서로 갖고 있는 것을 구경하고, 친구가 맘에 들어한다면 주기도 하는 게 꽤나 즐거운 놀이였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의 편지지 케이스가 사라졌다. 웅성이는 무리 사이로 "사물함들을 확인하자!"는 목소리가 있었고, 당시 반장이었던 나는 대표로 모두의 사물함을 하나하나 열어 주었다. 하지만 교실 뒤편을 주욱 메운 정사각 뚜껑들을 하나하나 열어봐도 그 애의 플라스틱 케이스는 도통 보이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내 사물함만이 남았을 때 문득 불길한 예감이 훅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없어졌다는 편지지 케이스는 내 사물함에 있었다. 아이고야. 벌써부터 웅성거리며 "진짜 도둑이래요~"하는 그 놀림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참 다행인 건 내 사물함에 있었다는 게 내가 훔친 게 아님을 아이들이 인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그 아이 것을 가져가지 않았지만 이게 참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이라 뭐라 얘길 해야 이 아이들을 이해시키나, 하던 차에 "반장은 우리랑 계속 같이 있었잖아.", "맞아. 반장은 사물함에 가지도 않았어.", "반장 사물함에 누가 넣어놨나 봐!" 라면서 오히려 주변에서 내 결백을 주장해 주었다. 결론적으로 편지지 케이스는 원래 주인에게 무사히 갔고, 주인 역시 오히려 자기 것을 찾아주어 고맙다고 하며 이 사건은 막을 내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만고만한 애들 사이에 생일이 빠른 내가 상대적으로 성숙할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 친구들은 나를 언니 따르듯이 좋아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 그 이후로도 비슷한 시도를 몇 번 더 했는데, 그럴수록 오히려 주변에서 나를 더 두둔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애도 지쳤는지, 혹은 그 사이에 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나를 도둑으로 몰아가려는 시도는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일찍이 이런 사건들을 겪어서일까. 나는 그 어린 나이부터 '평소 행실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만일 내가 평소에 친구들에게 신임이 없었다면 그 억울한 상황에서 어떻게 내 결백을 주장해야 했을까? 그래서 나는 약간은 강박적으로 더 바른생활 어린이가 되었다.

이런 내게 힘이 된 것은 내 이름의 의미에도 있었다. 내 이름에 쓰인 '도'자는 '법도 도(度)'인데, 엄마에게서 이 한자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자 바르게 사는 게 역시 내 운명인가 싶었다. 그리고 이런 이름을 가진 내가 비도덕적인 무언가를 하면 이름만 못한 사람이 되게 되는 것도 싫었다.

덕분에 매 학년마다 선행상, 표창장을 받는 것은 기본이고, 그만한 신임이 있으니 반장도 놓친 적이 없었다. 학년이 바뀌고 심지어 고학년이 되어서도 그놈의 '도둑'이란 별명을 붙이려는 애들은 수두룩하게 있었으나, (그 나잇대의 남자애들은 왜 이런 단어를 그렇게나 좋아했는지..) 주변에서 그 애들을 나무라며 내 편을 들어주는 게 또 당연해졌고, 나는 그만큼 더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좀 번거롭긴 했지만 그런 삶의 태도는 결국 지금의 나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어쩌면 그 덕에 좀 더 나은 어른이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나쁜 일에 연루되기 싫고, 정직하고 성실한 게 제일 마음 편하다. 그리고 그런 내가 좋으니 참 다행이다.


다시 이야기를 미래 아이 이름 짓기로 돌아오면, 남편 이름과 내 이름을 합친 이름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게 있다. 남편과 연애할 때부터 꽤나 오랫동안 이 사람과 결혼해서 언젠가 딸이 태어나게 된다면 이 이름으로 지어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점찍어 둔 이름인데, 작년에 드디어 이 이름을 가진 지인이 생겼다.

나의 대학원 한 학기 선배인 이 선생님은 나이는 나보다 몇 살 더 어렸지만 연구자로서는 고작 한 학기 차이인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참 멋지고 똑똑한 사람이다. 친분이 생긴 뒤에는 종종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그럴 때마다 매번 그 성실함과 야무짐에 감탄하곤 했다. 미래의 내 자식의 이름으로 점찍어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나 멋지다니. 그 이름에 애착이 더 갈 수밖에 없다. 언젠가 생길지도 모를 내 자식이 이 이름을 가진다면 이 선생님처럼 자라줄까? 그러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남편에게 묻는다. 그래서 우리 애는 어떤 이름으로 할까? 그러면 남편은 대답한다. 일단 아이가 생기면 생각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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