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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둥 Apr 12. 2019

첫 출근날, 결국 울고 말았다.

쌉쌀했던 첫 출근의 추억

얼마 전, 우리 팀에 인턴이 들어왔다. 나이는 무려 스물셋. 대학교 한 학기를 남겨두고 학점 이수를 위해 직업현장실습을 한다고 했다. 부족한 일손에 허덕이던 우리는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간 회사에 여러 명이 거쳐갔지만, 이 인턴은 유달리 싹싹하고 구김살이 없었다. 불편할 만큼 지나치게 몸을 낮추거나 설익은 자존심으로 고집부리지도 않다. 그저 바다에 물 한 컵을 부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팀에 스며들었다. 무난하지만 마찰 없이 새로운 집단에 동화되는 능력.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성격이.


그 모습을 보며 나의 서툴렀던 첫 직장의 추억이 떠올랐다. 나도 이 아이 같았다면, 조금은 덜 힘들었을까?

기억 속 시곗바늘을 돌려, 첫 출근 날로 되돌아갔다.


때는 벌써 6년 전, 학생의 앳된 티를 채 벗지 못한 아이가 쭈뼛쭈뼛 사무실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일은 모든 직원 인사하기. 선배들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 얼굴을 보는 둥 마는 둥 단답형 인사를 건넸다.

얼굴도장을 찍은 후에는 인사팀 직원의 안내로 사무실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꼿꼿이 붙이고, 손바닥으로 책상 위를 조심스레 쓸어보았다. 그러자 긴장해 잠시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여기가, 내 자리구나. 나도 드디어 떳떳한 사회인이 되었구나.


그렇게 상상을 초월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남자 팀장님  분이 나를 불렀다. 'ㅇㅇ씨, 햄버거 괜찮아요?' '아, 네네! 괜찮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자 선배님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괜스레 두 손을 모으고 팀장님들을 따라나섰다. 식사 초반엔 어떻게 입사하게 된 건지, 집은 어딘지 형식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근처에서 자취를 한다고 자 '그런 건 말하면 안 되는데~ 자주 불려 오겠네. 흐흐' 하는 말이 돌아왔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었다. 그 이후엔 쭉 침묵이었다. 팀장님들은 한 손엔 숟가락을, 다른 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게임에 빠져들었다. 뻘쭘한 공기가 주변을 에워싸며 온몸을 옥죄었다. 자꾸만 햄버거를 씹는지, 고무를 씹는지 헷갈렸다.


사무실에 복귀하자마자 한 여자 선배가 나를 급하게 불러 세웠다. 해외 거래처에 답변 메일을 보내야 하는데 여력이 없다고 대신 작성해 달란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그럼 부탁해요~' 하며 사라졌다. 자리에 앉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영문 이메일?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는데.

네X버 지식iN부터, 온갖 사전을 뒤져 끙끙대며 메일을 완성했다. 그때 실장님께서 내가 작성한 메일 구를 보내달라고 하셨다. 심장이 덜컥 떨어졌다. 예상대로 실장님 앞 불려 갔, 부드럽지만 엄한 질책이 쏟아졌다. 무어라고 하시는데 손발이 굳고 머리가 하얘져 들리지 않았다. '어.. 어떻게 하면 된다고 하셨죠?' 그분께선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일단 자리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때부터 영혼이 가출했다. 내가 너무 작고 쓸모없고 먼지만도 못한 존재 같았다. 나 때문에 선배님이 혼나면 어쩌지? 심장이 망치로 치듯 쿵쾅댔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했다. 울컥 대는 가슴을 콩콩 치며 진정시키는데, 이번엔 경영지원팀에서 호출이 왔다.


"미안하지만 내일이 회계감사 날이라, 일손이 필요해요. OO씨는 이 서류들만 확인해주세요."

쿵. 팀장님께서 파일철 여러 개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개당 30cm는 넘어 보였다. 다 쌓으면 눈높이는 족히 넘을 것 같았다. 현재 시간은 오후 3시. 과연 오늘 안에 집에 갈 수 있을 것인가.


 퇴근시간은 금방 다가왔다. 오후 6시가 되어도 서류는 줄지 않았고, 사무실 인원도 마찬가지였다. 타닥타닥하는 키보드 소리와 분주한 말소리가 주변을 오고 갔다. 1시간이 흘렀다. 직원 한 두 명이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2시간이 더 지나자 눈이 아파왔다. 눈 주변을 비비는데 선배 한 명이 경영지원팀 사무실을 빼꼼, 들여다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아직 안 갔어요? 팀장님, OO씨 첫날부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일정이 너무 급해서...' 팀장님이 말끝을 흐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힘들죠? 거의 다 해가요.'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말을 건 선배는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문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혼미하게 중얼거렸다. '괜찮아요...'


어느덧 시곗바늘이 오후 10시 가리켰다. 창밖 시커멓게 어둠이 깔린 지 오래였다.

"OO씨, 이만 들어가요.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요."

눈 밑에 다크써클을 장착한 팀장님이 말했다. 쭈뼛대던 나는 몇 번의 독촉을 더 받고서야 가방을 들 멨다. 문 밖으로 나가기까지 굽실대다 하마터면 발을 헛디딜 뻔했다. 힘없이 건물 나서는데 하늘이 심상찮았다. 불길한 예감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어, 비 오네..."

투둑. 빗방울 하나가 이마에 떨어졌다. 아스팔트 위를 점점이 적시는 듯하더니, 이내 무섭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급한 대로 가방을 둘러쓰고 뛰었다. 쉼 없이 어깨를 두드리는 빗방울의 무게에 몇 번이고 주저앉을 뻔했다. 흠뻑 젖어 간신히  돌아왔는데, 지잉지잉- 어둠에 잠긴 원룸에 진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차갑게 젖은 손으로 폰을 들어 화면을 확인 그만 눈물이 픽 쏟아졌다. '에이, 정말 이게 뭐람...'


- 부재중 전화, 아빠.


장문의 문자도 와 있었다.

- 딸, 오늘 첫 출근은 어땠니? 어엿한 사회인으로 첫발을 디딘 네가 참 자랑스럽다. 사회생활이 만만치 않겠지만 잘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힘내거라.


참으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청춘 드라마 속 주인공도 아니고, 아빠는 왜 하필 이 시간에, 평소 보내지도 않는 문자를..

창 밖 여전히 쏴아, 요란스럽게 빗줄기가 부었다. 나는 방 안의 불 켜지 못한  한참을 우두커니  있었다.


그 회사 1년 하고도 반을 더 머물렀다. 첫날은 스펙터클의 연속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적응 되더라. 선배님들도 일을 함께하다 보니 모두 좋은 분들이었다. 그렇기에 떠날 때엔 행복한 추억만이 남았다.


겁먹은 병아리처럼 덜덜 떨던 나에겐, 출근 첫날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웠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실장님도 모질게 질책하지 않았고, 팀장님 역시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최선을 다한 것 같다. 다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한마디 한마디가 무섭게 신경이 쓰였었다.

유달리 힘든 하루를 보냈기에 그 후 들어오는 신입 사원들에겐 잘해주려 애썼다. 하지만 미친 듯이 바쁜 상황에선, 나 역시 모질게 비쳤을지도 모른다. 혹시나 그들의 마음에, 잊히지 않는 흠집을 내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느덧 4, 한창 상반기 공채 시즌이다. 모쪼록  처음 출근하게 될 모든 이들에게 파이팅을 외친다. 부디 당신의  출근은 액션이나 호러 아닌 힐링 영화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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