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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둥 Aug 20. 2019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쁜 것

스스로 한계를 짓는 '단정'의 힘

나는 MBTI 신봉자다.


MBTI는 성격 검사의 일환으로, 마이어스와 브릭스란 사람이 융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만들었다. 검사 결과는 총 16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아래 표처럼 외향/내향, 감각/직관, 사고/감정, 판단/인식 중 어느 경향에 더 가까운지에 따라 알파벳을 부여받는다.

굳이 밝히자면, 나는 INFP 유형이다. 20살 때 처음 검사 이후 10년 동안 계속 결과가 같다. 사람 성격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검사가 증명해준 셈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화제가 되었는지, MBTI 검사를 쉽게 할 수 있는 링크가 여기저기서 주기적으로 떠돌아다닌다. 메신저 단체방에도 인터넷에서도 난리다. 회원 수가 몇 만이 넘는 MBTI 모임·분석 온라인 카페만 여럿이다. 붐이라고 할 정도로, 여타 성격검사들을 제치고 화제성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을 16가지 유형에 가둘 수는 없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나는 이 검사에 매혹당하고 말았다. 남편 때문이다.

본인을 제외하고 누구보다 그를 잘 안다고 자부하는 내게, 이 검사의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용한 점집에서도 이 정도는 못 맞출 것 같았다. 남편은 전형적인 ENTJ 유형이며, 해당 성격의 모든 특성을 가졌다. 처음 결과지를 읽었을 때 등에 소름이 촤라락 돋았다.


내 성격도 남편만큼은 아니지만 80% 이상은 검사 결과에 들어맞았다. 간혹 '응?' 하는 문장도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무시했다. 혹은 그 문장에 동화되었다. 나 자신조차도 모르는 행위와 감정을 드러내 준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나는 이를 계기로 MBTI의 신봉자가 되었고, 어느 모임에 가나 이 검사를 퍼뜨리고 다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과를 보며 즐거워했고 그 모습을 보며 함께 흐뭇해했다. 검사에 대한 확신은 더 강해졌다.



MBTI 검사의 부작용?


어느 날부터 주변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말들이 흘러나왔다.

"ESFJ는 다 그래."

"난 INFP라서 그런 거 잘 못해."

"넌 ESTJ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 아니야?"


반대로 그런 말에 몸서리치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제 좀 그만하면 안 될까?"

누군가를 그 안에 가두고 단정하지 말라는 말라, 고 그는 말했다.

백 번 맞는 말이었다. 심리검사란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한 몇몇은 그것이 절대 진리인양 말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고작 16가지로 나눈 성격 유형이 모두를 규정할 수 없음에도, 결과가 잘 맞아떨어지니 더욱 그랬다.

자신에 대하여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나를 '이렇다'라고 단정 짓는 것이다.
- 임경선, 태도에 관하여 中

'INFP는 돈을 제일 못 버는 유형이야.'

'게으르고 실천에 옮기는 걸 잘 못해.'


어째서 늘 미루고, 게으르게 행동하냐는 말에 나도 모르게 위와 같이 정당화를 하고 있었다.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1위가 '난 원래 이래.'면서 그와 비슷한 생각을 머릿속에 품다니. '난 원래 이렇다.'는 말의 속뜻은 '나는 변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스스로의 성격을 규정해두고, 동그랗게 원을 그리곤 그 안에 안심하고 서있겠다는 뜻이다. 늘 서있던 자리가 아늑하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가 아닌,

'현재의 나는 이렇구나. 하지만 부족한 부분은 좀 더 채워나가야겠다.'라는 사고가 바람직한 게 아닐까?


어쩌면 나는 성격 검사를 통해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잘 안다고 자만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성격유형검사는 나를 더 알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하지, 나의 잠재력을 단정 짓기 위한 것은 아님에도 말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규정짓는 대로 행동하고 성장한다고 했다.

현재의 나를 파악하고 더 나은 미래의 내 모습을 만들어가기 위한 계단을 만드는 것.

그것이 성격 검사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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