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강원도
제비는 봄의 전령이자 여름 철새로, 3~4월에 우리나라에 와서 8~9월에 떠난다.
(cf. 기후위기로 제비가 오고가는 시기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4월에 강릉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갔었다.
시장을 걷다가 제비들이 열심히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 외투를 걸치고 있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이 오겠구나 싶었다.
6월엔 친구들과 속초로 2박 3일 여행을 갔었다.
역시 시장 주변에서 제비들이 둥지마다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날씨가 꽤 더웠기에 지금이 쟤네들에게는 제일 좋은 날씨이겠지... 싶었다.
8월 말인 지금은 연구실 파견으로 인해 원주에 와 있다.
문득 하늘이 맑다고 감상하고 있는데, 제비가 다 같이 후욱 날아올라 멀리 날아갔다.
아직도 산책하면 땀이 흠뻑 젖긴 하지만 이제 여름이 끝나가는구나 싶었다.
그나저나, 자연은 어떻게 시기를 아는 것일까?
새들에겐 이제 날아가야겠다는 마음이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일까?
한때는 내 인생을 내가 계획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나날들이 있었다.
중간에 변수는 조금씩 있겠지만 내 전공 특성상 학교를 몇 년 다니는지, 수련을 몇 년 하는지 등등 큰 틀은 잡혀 있으니까...
남들보다 더 빡빡하게 인생 계획을 짰던 것 같다.
언제 어디에 들어가고, 언제 결혼을 하면 언제 무엇을 하면서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지.
그러다 언제가 되면 여유가 생길 테니 무엇을 해야지.
그렇지만 올해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정말 큰 변수가 생겨버렸고, 그래서 슬픈 마음이 들었다.
내 계획은 이제 다 틀어졌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원했던 꿈을 이룰 순 있을까?
아니면 현실과 더 많은 타협을 봐야 하는 것일까?
나는 왜 꿈이 있어서 이런 현실에 빠르게 반응하지 못하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는 걸까?
오늘 떠나가는 제비를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너네는 언제 떠나가야하는지 아는구나.
나는 아직 언제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좋은 타이밍에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어.
내가 보기엔 너네들은 흘러가는 계절에 설렁설렁 맞춰서 살기만 하면 되는 것 같은데,
나는 계절 말고도 고려할 게 너무나도 많아서 머리가 복잡해.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지금 연구실 파견을 와 있는 것은 교수님께 밥을 얻어먹으러 간 1시간 동안 결정된 일이었다.
정말 겁이 많이 났지만 와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재미있게 살고 있다.
추진력이 정말 좋은 교수님을 보면서 느끼는 건데,
좋은 타이밍을 너무 계산하다보면 아무것도 못하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일단 저질러보고 수습하는 것이 더 좋은 경험일 때가 있었다.
제비들도 솔직히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고 날아오르는 것 아닌가.
날아가고 보았는데 태풍이 올 수도 있는 거고, 버텨보았는데 한파가 올 수도 있는 거고.
나는 그저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 되는 것이다.
요즘도 저지른 일들이 많다.
좋은 인연들이 꾸물대는 나를 이끌어주면서 저지른 일과, 홧김에 스스로 저지른 일도 있다.
잘 할 수 있을까?
지금껏 주어진 시간과 계획 속에서 열심히 달려만 와서 이렇게 자유로운 시간과 계획이 더 겁이 나는 것 같다.
그래도 제비는 떠나야지.
겁이 나도 제비는 떠나야지.
나도 열심히 수습해야지.
겁이 나도 열심히 벌린 일들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