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24 KBO리그 리뷰 7. 두산베어스

헤비의 프레이밍 12

by 헤비

이승엽. 푸른 피의 사나이이자 삼성의 영원한 36번. 레전드인 김응용 감독이 타자의 대명사로 꼽았던 선수. 라이온즈파크 오른쪽 담벼락에는 찬란한 그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더 짙은 푸른 색인 두산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고 감독으로 데뷔한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 수많은 팬들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 놀람은 여러 이유가 있었다. 이승엽이 삼성이 아닌 다른 팀으로 간다는 신기함이 하나의 이유였고, 이승엽은 지금껏 코치조차도 안해봤다는 게 또 다른 이유였다.

이승엽 감독은 2022시즌 60승 2무 82패 최종 9위를 마크했던 팀을 2023시즌 74승 2무 68패 최종 5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2024시즌에는 승패는 동일하게 74승 2무 68패를 기록했지만 최종순위는 4위로 마무리지으며 상승 폭이 크진 않지만 나름 꾸준한 우상향 그래프를 2년간 보여주었다. 숫자만 보면 그렇다. 그렇기에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끝난 직후 몰려든 두산 팬들이 '이승엽 나가!'를 외치는 게 일견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팬들이 답답해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최종순위 4위를 실패한 시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4위를 어떤 방식으로 기록한 것인지는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은 이렇게 말했다.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맞다. 인생에는 그런 치열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프로아구팀의 감독은 전쟁의 사령관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매니저다. 오늘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일도 생각하고 대비할 줄 알아야 좋은 감독이 된다.




1. 선발투수진

시즌 시작 전 알칸타라-브랜든-곽빈으로 이어지는 두산베어스의 1, 2, 3 선발은 KBO리그 그 어느 팀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것으로 평가되었다. 여기에 4, 5 선발을 받쳐줄만한 자원도 탄탄해보였다. 시즌 전만 해도 두산은 KT, 한화와 더불어 강력한 선발야구를 펼칠 팀으로 생각되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 팀들 모두 예상은 정반대로 빗나갔다.


두산베어스는 한화이글스와 더불어 외국인 선발투수 중 단 한 선수도 100이닝을 넘기지 못한 유이한 팀이었다. 그나마 한화는 대체 외국인으로 들어온 와이스가 활약을 해주기라도 했지, 두산은 그마저도 없었다. 부상으로 미국까지 다녀온 알칸타라는 결국 퇴출되고 말았고, 이승엽 감독은 시즌 내내 브랜든의 안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대체 외국인 선수로 영입한 발라조빅은 드넓은 잠실구장과 KBO최고의 중견수 수비를 자랑하는 정수빈을 외면한채로 저 혼자 삼진을 잡겠다고 덤비다가 5회만 되면 투구수를 꽉 채우고 물러나야 했다. SSG랜더스에서는 쏠쏠한 활약을 보여줬던 시라카와는 늘어나는 이닝에 따른 체력문제였는지 실망스러운 퍼포먼스를 보였다.


2024시즌 선발 최약체 팀은 다름 아닌 두산베어스였다. 무너져버린 선발진 중에서 가장 노릇을 해준 게 곽빈이었다. 문제는 그랬던 곽빈이 하필 가장 중요한 경기였던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 선발투수로 나와 1이닝 4실점 패전투수가 되며 포스트시즌 무승 징크스를 이어가버린데 있었다. 믿을 카드가 곽빈 하나 밖에 없었는데, 그가 무너지는 날이 하필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는 것도 아이러니 한 일이다.




2. 구원투수진

전체 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올 시즌 두산베어스는 불펜의 힘으로 버텨낸 팀이다. 구원투수진이 리그에서 가장 강력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보통 선발투수진이 무너지면 그 여파로 인해 구원투수진도 연쇄붕괴하기 마련인데 두산베어스는 예전 화수분 야구의 명성을 불펜투수진에서 다시 재연해내며 시즌을 나름 무사히 완주했다.


그러나 시즌 내내 김택연, 이병헌 등 신인급 투수들의 과부하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부분은 평가가 쉽지 않다. 몇가지 사실은 확실하다. 이승엽 감독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 김택연의 이닝 관리를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못했다. 연투 부분은 나름 최대한 관리를 해주려 한 흔적이 보이지만 멀티이닝 문제에서만큼은 확실히 실패했다. 시즌 중반 최지강이 부상으로 이탈하며 이 과부하를 이병헌이 모두 떠안은 것도 문제였다.


정리한 자료를 보면 구원투수들의 출전 횟수와 이닝 수에 있어서 이닝 수가 현저히 적은 선수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많은 불펜투수들이 동원이 되었지만 이들이 채 한 이닝을 다 채우지 못한 채 이닝 중간마다 잘라먹기를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많은 투수들이 구조적으로 동원될 수 밖에 없는데, 이게 반복될 경우 보이는 투구수보다 불펜에서 몸을 풀면서부터 누적되는 과부하가 생길 가능성을 우려해야 한다.


올 시즌 두산베어스의 불펜 운영을 두고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선발이 무너져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고, 동시에 이렇게 운영을 하지 않은 채로 성적이 2022년처럼 8, 9위를 오가게 되었을 때 그걸 받아들일 팬들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어차피 불펜은 소모품이다. 아껴준다고 해서 아껴지는 게 아니다."


야구 전문 유튜브 채널이었고, 심지어 저 발언은 두산 팬에게서 나왔다. 듣고 있으니 이 문제가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 쪽이 옳다고 똑부러지게 편을 들 수 없는 문제다. 시즌이 다 끝나고 리뷰를 하는 이 순간까지도 어느 한 쪽이 맞다고 도통 결론이 나오질 않는다. 그러나 딱 한 가지만 지켜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바로 이닝 잘라먹기 문제다. 선수를 내보냈으면 적어도 한 이닝은 맡겨뒀으면 어땠을까? 김택연의 구위가 너무 좋았어서 시즌이 시작하기 전 약속한 이닝제한을 어길 수 밖에 없었다면, 적어도 김택연이 멀티이닝 뛰는 일만은 어떻게든 막았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8, 9위를 했을까? 난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랬다면 순위가 한두 계단 아래일 수는 있어도 '이승엽 나가!'는 안나오지 않았을까?




3. 공격 부문

올 시즌 두산베어스의 공격은 한 타자만 봐도 특징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양석환이다. 외피는 그럴싸하다. 잠실구장을 사용하면서 무려 홈런 34개를 때려냈다. 그런데 wRC+가 104.5에 불과하다. 강승호도 마찬가지.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정작 삼진을 저렇게 당하면서도 홈런 갯수는 실망스럽다. 전반적으로 좋아보이는데 막상 뜯어보면 그저 그렇다. 나쁘다고도 좋다고도 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타선의 전체 성적은 평균선에 머물러 있다. 이게 꾸준한 평균치를 매경기 계속 달성해서 나오는 수치라면 차라리 나은데 기복이 만들어내는 평균이라는 점이 골치아픈 지점이다. 난 KIA팬이다. 무려 두산베어스에게 한 경기 득점 신기록인 30득점을 내준 팀의 팬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번 와일드카드 결정전 1, 2차전 내내 두산 타선이 얻은 득점은 제로였다.


조수행은 무려 64도루로 도루왕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생산성 면에 있어서는 도무지 주전이라고 불러줄 수가 없다. 제러드 영은 교체로 들어와서 화려한 수치를 보여줬지만 활약한 기간이 짧았기에 수치가 과대평가되었을 수 있다. 결국 중심을 잡아주는 양의지의 존재 유무에 따라 타선이 너무나도 차이가 큰 모습을 보여줬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의 최대 패인도 양의지의 부재였다.


2023년에도 한때 팀 내에서 스스로를 '두 점 베어스'라고 불렀다는 웃픈 이야기가 돌았을 정도로 두산베어스의 공격력은 시즌 내에서도 편차가 크다. 이런 기복은 보통 중장거리포에 득점루트가 한정된 팀에서 보이는 현상인데 두산베어스는 중장거리 몰빵 타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개선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부분은 기존 선수를 밀어내는 뉴페이스들로 인해 자연스레 이뤄져야 하는데, 불펜진은 화수분이 터졌지만 야수진은 LG트윈스에서 업어온 포수 김기연의 깜짝 활약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신진급이 보이질 않았다.




4. 주루, 수비 부문

조수행, 정수빈을 앞세운 도루 부분은 확실한 강점이었으나 성공률을 놓고 보면 이득을 크게 봤다고는 하기 어렵다. 두산베어스의 견실함은 수치상으로는 수비에서 온 게 아닌가 싶은데 사실 이 부분은 경기를 다 챙겨보는 자팀팬이 아니면 쉽게 평가하기는 힘든 부분이다. 일단 수치상으로는 좋은 편인데 아마도 강력한 외야수비를 바탕으로 허경민-김재호 등의 노련미 있는 수비진 덕분이 아닐까 싶다. 도루 저지율이 안좋아보이지만 아무래도 양의지가 포수 마스크를 벗고 있는 날이 많았고, 김기연이 이 부분까지 완벽하게 수행해낼 수 있었다면 애초에 LG가 이 선수를 풀어줄리도 없었을 것이기에 크게 아쉬워할 문제는 아니라 보인다.




5. 총평


하나의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분을 집중해서 보는가에 따라 두산베어스의 2024시즌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양의지 외에 타선의 평균치를 유지해줄 수 있는 타자가 한 명만 더 있었더라도 어땠을까 싶다. 허경민은 후반기에 아쉬운 모습을 보였고, 김재환은 어느정도 폭발력은 되찾았지만 삼진이 많은 타자가 공격흐름을 끊어먹는 건 일종의 세금과 같은 것이어서 지적할 사항도 아니다.


이승엽 감독을 두고 본인은 홈런타자였으면서 감독이 되어서는 왜 이리 스몰볼을 하느냐고 화를 낼 수 있다. 틀리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야수 구성을 보면 이름은 화려해도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스몰볼 밖에 할 게 없어보이는데 어떡하라는 말이냐고 대꾸하면 난 거기에도 틀린 건 없다 생각이 든다. 불펜 혹사를 두고도 감독이 소심증에 걸려서 선수 운용을 너무 자의적으로 한다고 하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동시에 외국인 선발이 저 난장판이 됐는데 감독이 된 입장에서 어떻게든 막아서 성적을 내는 게 잘못이냐 하면 그게 또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 싶기도 하다.


제 3자 입장에서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감독이 어마어마한 미스를 저질러서 경기를 내줬다면 차라리 속이 시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사상 최초의 업셋을 당했지만, 정작 이승엽 감독은 뭘 해볼 상황도 나오지 않았고, 심지어 그 두 경기만 놓고 보면 타선이 끝까지 안터진 게 문제였지 투수 운용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물론 이걸 두고도 "포스트시즌에서나 할 법한 투수운용을 패넌트레이스 내내 하고 있었는데 그게 감독 잘못이 아니야?"라고 하면 난 또 그 말도 맞다고 할 거다. 타선이 안터진 것 역시 감독 책임이다. 심지어 이승엽 감독이 맡은 두산베어스는 포스트시즌 3전 전패중이다. 책임을 물으려면 물을 수 있다. 결국 내겐 답이 없다.

지난 10년동안 3번의 우승을 한 유일한 팀, 두산베어스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말을 늘어놓을 수 밖에 없는 입장에서는 2025시즌 두산베어스가 차라리 기대가 된다. 새로운 감독이 왔지만 지난 두 시즌의 두산베어스는 사실상 새로운 감독이 무언가를 해볼만한 공간이 많지 않았던 팀이었다. 그만큼 좋은 베테랑들 위주로 팀이 빡빡하게 꾸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변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으로 팀이 내몰렸다. 이 상황에서 만약 이승엽감독이 무언가를 보여준다면 이 2024시즌에 대한 평가도 그제야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서 난 이승엽 감독이 장기 패넌트레이스를 진행하며 팀 전력을 맞추고 꾸려가는 프로팀의 감독보다는 갖춰진 전력을 들고 총력전으로 상대와 대결하는 대표팀 감독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고 어느정도 잠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https://youtu.be/Z6EU-EQEThs?si=8uuK_7CF6ZCzQzr7


keyword
이전 12화2024 KBO리그 리뷰 6. ktw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