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의 프레이밍 19
2023시즌 : 68승 76패 0무승부. 승률 0.472. 1위와의 게임차 19.0게임. 최종순위 7위.
2024시즌 : 66승 74패 4무승부. 승률 0.471. 1위와의 게임차 20.0게임. 최종순위 7위.
2024시즌을 맞이하며 롯데자이언츠는 김태형이라는 명장을 영입했으나 놀라울 정도로 전년도 시즌과 비슷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마치 복사해서 붙여넣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2023시즌과 순위가 변하지 않은 건 롯데자이언츠와 키움히어로즈 둘 뿐이다. 다들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데 둘만 제자리이니 눈에 더 들어온다. 하지만 키움히어로즈와는 다르게 롯데자이언츠의 성적표에서는 희망이 보인다. 그 점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달라진 게 없어보이는 데 다르다. 이제 그 달라진 부분을 성적으로 바꾸기만 하면 될 것 같아 보인다.
롯데자이언츠는 2024시즌 KBO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닝(196.2이닝)을 소화했던 애런 윌커슨을 내보내고 터커 데이비슨을 영입했다. 난 계속 '이닝 소화력'을 중요한 지표로 삼는다고 말해왔기에 데이비슨이 윌커슨의 부재를 다 메꿔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동시에 윌커슨이 남아있다고 해도 190이닝 언저리의 소화를 기대하는 것 또한 애매한 지점이다. 롯데자이언츠도 비슷한 고민 끝에 변화를 택했다. 역시 모든 건 결과가 답을 해주겠지만, 현 시점에서 보기에는 이건 틀린 선택도, 맞는 선택도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지 싶다.
24년 11월 22일 롯데자이언츠와 두산베어스간의 트레이드가 발표되었다. 롯데자이언츠는 외야수 김민석, 외야수 추재현, 투수 최우인을 내주고 두산베어스에서 투수 정철원, 내야수 전민재를 영입했다. 3대 2트레이드이지만 눈길을 끄는 건 역시 정철원과 김민석이다.
정철원은 2024시즌 내내 '마무리 경험이 있는 수도권 불펜투수'라는 이름으로 트레이드 시장에 오르내려서 두산베어스의 미래 구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 반공개적으로 드러나있었다. 현실적으로도 정철원이 두꺼운 두산베어스 불펜진을 뚫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반대로 김민석도 롯데자이언츠 외야에서 어느새 5옵션 정도로 밀려나있던 상황이었다. 두 선수 모두 양 팀에서는 잉여자원으로 밀려나 있었고, 그렇게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
양쪽 모두 유망주이지만(김민석은 1라운더고 정철원은 신인왕 출신이다.) 기대만큼 성장을 해주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국 코칭스태프가 이 부분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 트레이드의 승패가 갈릴 것이다. 두 선수의 약점이 비슷한 만큼 한쪽으로 급격하게 기우는 결과가 아닌 Win-Win 이거나 Lose-Lose가 될 가능성도 높다.
대신 두 선수를 제외한 카드 중에서는 롯데자이언츠가 받아온 내야수 전민재의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보이기에 롯데자이언츠 쪽으로 약간이나마 더 웃어주는 트레이드라고 평가하고 싶다.
여러 팀에서 관심을 나타냈던 롯데자이언츠의 마무리 김원중이 생각보다 빠르게 잔류 계약(4년 총액 54억원)을 마쳤고, 불펜투수 구승민도 같은 날 계약(2+2년 총액 21억원)을 발표했다. 두 선수 모두 2024시즌에 예상 외로 부진했지만, 이 선수들이 없는 롯데자이언츠 불펜진은 도무지 그림이 나오질 않기 때문에 빠르게 접점을 찾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명 '성담장'으로 불리던 외야 보조펜스(철망)를 철거하여 사직야구장 외야 높이가 기존 4.8m로 돌아간다. 롯데자이언츠는 타격부문에 있어서 에버리지는 높았지만 홈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2024시즌 팀 최다 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손호영인데 채 20개가 되지 않는 18개였고, 베테랑인 전준우가 17개로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이 조정으로 인해 홈런의 급격한 증가를 보일 가능성은 높지 않아보인다. 예전 LG트윈스에서 시행했던 잠실야구장 엑스존처럼 구조적인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많은 관중들이 제기해오던 시야 방해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는 편이 맞지 싶다.
롯데자이언츠는 2024시즌을 마치고 국방의 의무를 소화하려고 했던 김진욱을 주저앉히며 선발진의 공백을 최소화 했다. 선수들의 병역 스케쥴 조정은 팀의 선택이니만큼 결과를 보고 평가하면 되는 부분이지 당장 크게 문제삼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여기에 5선발 자리에 도전할 선수로는 심재민이나, 신인 김태현 등이 있지만 2024시즌 막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박진이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싶다.
구설수에 많이 오르락내리락 거리기도 했고, 성적도 신통치 않았던 나균안이 다시 2023시즌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으나 당장 그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롱릴리프로 오가는 한현희가 선발에 자주 얼굴을 내비치게 되면 그만큼 롯데 선발진에 문제가 생겼다는 반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국내 에이스인 박세웅이 분전을 해줘야 한다. 2024시즌, 이닝 소화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의 몫을 다 했지만, 한 경기 내에서도 갑자기 밸런스가 오락가락하는 등 내용상으로는 불안한 모습을 자주 노출했다. 박세웅은 팀의 변수가 되어서는 안되는 선수다. 다른 핑계를 댈 수가 없다. 에이스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 에이스가 흔들리면 단순히 한 선수가 흔들리는 걸 넘어서 팀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개인적으로는 박세웅이 24시즌보다는 안정적인 모습으로 25시즌을 치러내지 않을까 예상한다. 본인을 위해서나, 팀을 위해서나 꼭 그래야 한다.
반즈라는 확실한 선발카드가 존재하기 때문에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다른 선수들이 어느정도만 몫을 해줘도 타팀에 비해 크게 아쉽지 않은 선발진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외국인 투수인 터커 데이비슨에 대한 예상은 많이 엇갈리는 듯 싶지만, 요즘들어 KBO리그에서 MLB로의 리턴사례가 늘어나며 전반적인 외국인선수 수준이 올라간 듯 보여서 크게 걱정을 하진 않는다.
문제는 불펜진이다. 앞서 자팀 FA였던 김원중과 구승민 계약에는 성공했다고 했지만, 막상 이 선수들이 2024시즌에 만족스러운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 2024시즌 가장 많은 연투를 감행했던 코칭스태프의 불펜운용 문제가 무조건 개선되어야 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트레이드로 영입된 정철원의 몫이 큰데, 과연 정말 김태형 감독이 '정철원 사용설명서'를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비슷하게 다른 선수의 '사용설명서'를 갖고 있기에 트레이드에 나섰다는 감독들의 경우를 보아도 성공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보다는 새롭게 확충된 투수파트 코치진에 대한 기대를 해보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싶다. 롯데자이언츠에는 터지지 않은 유망주들이 많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곤 한다. 2024시즌 야수진이 그랬듯 새로운 시즌에 투수진이 환골탈태한다면, 굳이 외부 수혈이나 무리한 트레이드에 나설 이유는 없다.
앞서 2023시즌과 2024시즌이 성적상으론 거의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기대를 갖게 만든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 야수파트 때문이다. 공격력 하나만큼은 10개구단 어디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아니 가히 최상급이라 해도 손색없는 주전 라인업을 완성했다.
그나마 억지로 문제를 찾자면 역시 포수파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복귀할 자원이 없는 건 아니다. FA계약 이후 롯데자이언츠가 원하는 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적은 없지만, 그래도 유강남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기엔 아직 이르다. 손성빈마저 부상중이라 라인업에 이름을 넣은 건 결국 정보근이었지만, 이 두 선수가 돌아와 각각 주전과 후보로 마스크를 쓰게 된다고 하면 한층 더 나은 라인업이 될 것이다.
2024시즌은 김태형 감독의 야수보는 눈 하나만큼은 확실히 입증된 시즌이었다. 그렇기에 유격수 백업으로 영입된 전민재와 기존 백업 후보군이었던 이학주와 오선진 등을 방출하면서 기회를 몰아주려고 했던 이호준도 새 시즌에는 괜찮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FA 심우준이 롯데자이언츠 유니폼을 입는 게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경쟁조차 못 붙여본 것 같아서 아쉽다. (소문이 나도는 그룹 사정의 문제 때문보다는 유돈노 영입의 여파가 아닐까 싶다.) 이 아쉬움은 노진혁이 어떻게든 달래줘야 하는데 그의 역할이 이젠 3루 백업으로 한정되어 버린 것이 더더욱 아쉬울 따름이다.
약간 불안한 점을 꼽자면 김민석을 보내며 외야 백업이 얇아졌다는 점이다. 황성빈은 아직까지는 외야의 4옵션이어야 하는 선수다. 여기에 '윤고나황손'이라는 어마어마한 히트상품을 만들어내긴 했으나, 실상 이 선수들도 여전히 스탭업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는 점도 애써 찾을 수 있는 불안요소다. 젊은 선수들이 주전이라는 점은 엄청난 강점이지만 이건 꾸준함에 있어서는 아직 검증받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이 '윤고나황손'의 기량이 여기에서 더 좋아짐과 동시에 '장타력'마저 보완을 하게 된다면 '윤고나황손'을 그대로 퍼다가 올스타전에 써도 되고, 국가대표팀에 써도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윤동희과 나승엽은 이미 국가대표 주전선수들이기도 하다.
김원중으로 인해 아쉬웠던 롯데자이언츠의 2024시즌이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롯데자이언츠에는 김원중을 대신해 9회 마운드에 올라올 수 있는 투수가 없었다. 그건 2025년에도 마찬가지다. 나름 구색을 갖춘 선발진과 경쟁력이 있는 타선을 불펜진이 어느정도만 뒷받침 해줘도 롯데자이언츠는 마의 7위에서 벗어나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중심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김원중이 있어야만 한다.
지난 한화이글스 프리뷰 때도 밝혔다시피, 나는 내 멋대로 체크리스트를 만든 다음 2025시즌 각 팀별 예상 점수를 매겨 예상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한화이글스와 롯데자이언츠는 동점으로 공동 5위가 나왔다. 만약 2024시즌에 이어 2025시즌에도 5위 결정전 타이브레이크가 열린다고 하면 이 사실을 예측했던 누군가가 있었음을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그렇다면 타이브레이크에서 이길 팀을 5위로, 질 것 같은 팀을 6위로 놓아야 하지 않겠나. 한참 고심 끝에 6위에 롯데자이언츠를 놓을 수 밖에 없었다.
두 팀의 평가를 결정적으로 갈라놓은 건 역시 불펜이었다. 물론 롯데자이언츠에는 기존 선수들 중 스텝업을 해줄 수 있는 선수들이 꽤 많이 보이지만, 불펜에 있어서만큼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인다.
대신 이 부분이 바로 내가 틀릴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두산베어스에서 투수 조련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김상진 코치를 영입했기 때문이다. 만약 김상진 코치가 불펜진에 새로운 피를 잔뜩 집어넣어준다고 하면, 롯데자이언츠는 공동 5위를 넘어서 더 높은 자리를 노려도 될 것이다. 물론 다 가정이고, 결국 코치도 사람이고, 팀을 옮겼으면 첫 1년은 적응기이니만큼 그 부분을 계산에 넣을 수는 없었다. 대신 점점 유능한 코치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된다고 하니 언젠가는 이 부분의 투자가 롯데자이언츠에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KIA타이거즈 팬인 나로서는 2024시즌 가장 무서웠던 팀은 다름 아닌 롯데자이언츠였다. 롯데자이언츠의 야구는 끈끈하고, 단단했다. 예전보다 쉽게 물러서지도 무너지지도 않는 야구를 할 기틀은 이미 완성되었다고 보인다. 문제는 여기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급하게 덤빌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확실히 좋은 예시가 되는 팀이 LG트윈스다. 좋은 클럽하우스 리더를 영입했고, 선수 육성에 박차를 가했다. 어느새 LG트윈스가 가을야구를 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팀 체질을 먼저 개선한 다음 마지막에 우승이라는 결실까지도 얻어냈다.
아쉬운 시절이 길었다며, 당장 한을 풀겠다고 서둘러 덤볐다가는 도리어 예상보다 쉽게 미끄러지게 될지도 모른다. 2024시즌이 야수진 변화의 한 해였다면 2025시즌은 투수진 확충의 한 해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 일을 해내기만 한다면 그 다음엔 사실 노릴 자리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롯데자이언츠라면 충분히 그 일을 하나하나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