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리 님께 보내는 열 번째 교환 일기
지금 몸상태가 완전 메롱이에요.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조그만 고양이가 송곳니로 콕콕 찍어대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왜 이러나 하면 일단 저희 집 문제를 설명해야 해요. 저희 집은 작고 낡은 단독주택인데 지하층, 1층, 2층으로 되어 있어요.
문제는 지하실을 쓰던 제가 2층으로 올라오면서 짐을 거의 안 들고 올라오면서 부터 시작됐죠. 책장 다섯 개 분량의 책이 지하에 남았어요. 그런데 여기에 작년무렵부터 누수가 시작되면서 지하에 습기가 더 차올랐죠. 어차피 사람이 안사니까 그냥 저냥 차일 피일 미뤄왔는데 지난주에 갑자기 공사를 결정해버렸고, 그 결과 어젠 하루 종일 지하실에 있던 짐 빼는 일을 했어요. 짐 빼는데만 일곱시간도 넘게 걸린 거 같아요. 다 끝내고 샤워를 하려는데 입술에서 짠맛이 나더라고요.
물먹어 뒤틀린 책장은 망치로 두들겨 팬 다음 노끈으로 묶어서 재활용 딱지를 붙여 버렸죠. 책은 건질만한 게 있는지 찾아봤는데 역시 대부분 버려야 할 상태더라고요. 아주 오래전 작은아버지에게서 받아온 몇몇 책은 확실히 좋은 책인 건 맞았지만 (카뮈의 '페스트'와 '이방인'도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펼치기 무서울 정도로 누렇게 떠버려서 탈락했고, 더 오래전 책들은 왜 그리 한문이 많은지 포기, 대부분 관리를 포기해버려서 '어쩔 수 없다. 새로 사든지 빌려보든지 해야지' 라고 생각했죠.
거기에다가 몇몇 책들은 상태보다는 다른 이슈 때문에 버려지기도 했어요. 저자가 스캔들을 일으켰다든지, 이후로 이상한 말을 하거나 행보를 보여서 마치 폭탄 만난 것처럼 급히 버려진 책들도 있었고요. 어떤 책들은 확실히 이때만 읽는 거였다 싶은 것도 있었죠. '충격 대예언 지구 종말의 날' 요런 식으로 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읽었던 예언관련 책들을 보니 씁쓸한 웃음도 나더군요.
어떤 작가의 소설은 표절작가라 더는 안 읽는다는 이유로 버려졌고요. '퇴마록'은 전체가 다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각 파트에서 한두 권씩 이가 빠져있어서 해설집만 빼고 나머지를 다 버렸고요. 고등학교 시절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같은 책들도 이젠 안 읽는 책의 범주에 들어가고요. 심지어 윤동주의 시집은 너무 예전 버전인데다 역시 종이가 낡아 바스라지려고도 했고, 이미 새 책을 사뒀다는 이유로 버렸어요.
반대로 "이건 정말 안보는 거다." 싶은 전집은 책장에 꽂아두면 아직까는 속된 말로 '뽀대'가 난다는 이유로 살아남았죠. 누가 보면 이 집에 목사님이 있나 싶은 성경주석 전집, 종교 미술품 사진집 같은 애들은 이번에도 꿋꿋이 살아남았어요.
잃어버린줄만 알았던 초중고 졸업앨범이랑 옛날 사진첩, 군대 시절 썼던 다이어리와 한참 아껴듣던 카세트테이프와 CD 뭉치를 찾기도 했네요. 카세트테이프는 아쉬웠어도 이제 더는 집에 플레이어가 없어서 버렸고, CD는 많은 지분이 동생이 한창 H.O.T 좋아하던 시절의 것들이어서 처분여부를 동생에게 물어보기로 했죠.
단순한 갈림길이었던 것 같아요. 양 옆에 둘 책과 버릴 책의 봉투를 나눠놓고 책을 손에 들고 무심하게 툭툭 집어던졌어요. 일하는 사이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죠. 내가 지금껏 끌어안고 있었던 것들이 알고보니 이렇게 버리기 쉬운 것들이었던 건가? 사실 그 사이 한 달에 한 번 갈까 말까 했던 지하실에 박혀있었다는 건 이미 버렸다는 사실을 잠깐 확인하는 작업만 미뤄놓았다는 뜻이었을까?
그러다가도 "얘는 도저히 버릴 수가 없잖아." 하고 책을 빼낼 때면 그런 생각이 들었죠.
이 책들의 가치가 사라진 게 아니라 이 책들을 소중하게 여기던 내가 사라졌구나.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런 기분을 오래 안고 있기조차 뭔가 겸언쩍달까요? 서둘러 씁쓸하게 웃고 계속 하던 일을 했죠.
그러다 다 버려 없어진 줄 알았던 예전 작업물들이 상자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튀어나올 땐 좀 놀라기도 했네요. 심지어 제본까지 해둔 녀석도 있었어요. 놀랍게 습기도 안먹었어요. 이게 뭔가 싶어 일단 지금 쓰고 있는 방에다 고스란히 가져다 두긴 했는데 당장 열어보진 못했어요.
당장 열어보고 싶은 마음 반, 한동안 그냥 내버려두고 싶은 마음 반이네요. 앞자리가 '2'일 때 나란 녀석의 치기와 어설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거라 열기가 무섭고, 혹시 지금의 제가 가진 굳어버린 머리로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문장을 하나라도 건질 수 있을까 싶어 빨리 열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어찌되었든 무슨 이유에서든 한번은 평가에서 탈락한 글이기에 그 이유를 지금은 알아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반대로 누가봐도 분명한 이유를 그 시절엔 왜 못 본 건지 하고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고요. 어쩌면 고스란히 '이것도 못 쓰겠네.' '아무래도 쓸 게 없네.'하고 다 버리게 될지도 몰라요. "미안하다 과거의 나여, 넌 아무래도 안되겠다." 할지도 모르죠.
아니면 '이것만 끼워넣으면 이야기의 문이 열릴지도 모르겠는 걸' 하고 드디어 열쇠를 끼워맞추게 될지도 몰라요. 솔직히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간장 묵혀 씨간장 만들듯이 이야기도 그렇게 묵혀서 열릴 수 있다면 지금의 모든 헤맴이 괴롭지 않을 테니까요.
사실 그런 생각도 해요. 어차피 과거의 저나 지금의 저나 그리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터여서 어찌되었든 지금의 글이 가장 최신 버전이고, 가장 개량형 버전이고, 그나마 봐줄만한 버전이지 않을까. 예전에 헤맸던 길을 되짚어 가본들 그 안에서 뭔가 좋은 것이 나올 수 있을까? 그냥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최선이 아닐까? 잃어버리고 묻어놓았다 생각하지만 어차피 내 몸에 쌓여있는 것들 아닐까?
어차피 버린 것들은 버린 것들이라고 가볍게 잊어버리는 게 맞지 않을까? 떨어진 잎을 도로 가지에 붙이려는 나무는 없듯 말이죠. 물론 떨어진 잎이 도로 썩고 문드러져 뿌리로 되돌아올수도 있겠죠.
지난번 글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고 썼는데 그 며칠 지나지 않아서 친구녀석 데리고 서해에 잠깐 다녀왔어요. 편도로 한시간 반쯤 걸리더라고요. 노을 질 때가 좋다 하기에 언제 시간 맞춰 가볼까 생각중이에요. 이미 한 번 다녀온 길이니 두 번째는 더 가깝게 느껴지겠죠. 모든 길이 그렇더라고요. 두 번째부터 확실히 쉽고 짧게 느껴져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윤회가 있었으면 했나봐요. 두 번째부터는 확실히 쉬워질테니 말이죠.
그런데 첫 번째 길에서만 느껴지는 무언가도 있기 마련일 거예요. 일기예보를 보지 않고 떠났던 길인데다 일정 때문에 가기로 한 걸 다음 날로 바꿀 수도 없어서 무작정 갔더니 하늘이 온통 구름투성이더라고요. 그런데 처음이라 그것도 나름 나쁘지 않더라고요. 전 기독교도라 윤회를 믿진 않는데(이야기 소재로는 매력적이란 걸 인정하지만요) 그건 신이 "야, 첫 번째만 재밌지 두 번째부턴 지루할 걸?"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해놓으신 게 아닐까도 생각해요.
흐린 바다도 처음이라면 나쁘지 않듯이, 우리의 매일매일에 때론 구름이 몰려와도 어차피 다 처음이니 그렇게 괜찮고 재미있게 여겨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벌써 열 번째 교환일기를 썼어요. 계절도 서서히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고요. 개인적으로는 저의 이야기가 조금 더 사소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탁구공 사이로 모래 알갱이들이 스며들어가듯이 더 사소한 이야기들이 혜리님과 저의 빈자리를 채워줬으면 좋겠어요.
글을 쓰다보니 몸이 풀리는 기분은 뭘까요. 오늘은 컨디션 안좋다는 핑계로 무작정 쉬려고 했는데 뭐라도 끼적거려봐야겠어요. 햇살이 좋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