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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Nov 06. 2019

‘일’로 뻗은 당신, 미룰 자격이 있다

 피로사회의 일꾼. 할 수 없다의 용기가 필요해

“그래도 한번 해보시죠? 시간은 얼마든지 드릴게요” 편집장이 난감해하며 말을 꺼냈다.
 “아니오, 그냥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나는 계약을 종료하자는 처음의 입장을 고수했다.


약 30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난감한 표정의 편집장과 악수를 하고 출판사 문을 열고 나왔다. 내 주장대로 계약을 종료했다. 1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 싶은 순간, 물밀듯 낭패감이 몰려왔다. 당당하게 해약을 요구한 나는 미룸 때문에 제때에 원고를 넘기지 못한 진상 작가였고, 나를 달래고 어르던 편집장은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성실한 출판사 직원이었다.  

학위 논문을 쓰며 미룸 때문에 고생을 한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이렇게 미룸 때문에 일을 망치는 자신에 대한 혐오와 실망감에 어디론가 꼭꼭 숨어버리고만 싶었다. 졸업을 하고, 한국에 돌아와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1년 6개월 되던 즈음이었다. 미룸 때문에 고생을 한 지 2년을 갓 넘겼을 뿐인데, 어쩌자고 다시 미루기를 시작했을까…   


뭐든 잘하고 싶었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특별채용으로 입사한 30대 후반의 팀장, 시기와 질투의 시선 속에 시작한 직장생활이었다. 펜대만 굴리던 박사라 비즈니스 감각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주중, 주말 가릴 것 없이 일에 매달렸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주변에서 고지식한 박사는 아니더라는 평판이 따라오면서 여유가 생겼다. 1차 목표를 이루었으니, 계획하고 있던 2차 목표를 시작할 때였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번역하리라 마음먹었던 책을 꺼내 들고, 출판사에 번역 제의를 했다. 조직 문화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전문서적이 희귀하던 차에 좋은 기회라고 흔쾌히 번역 계약을 하자고 했다.  6개월 안에 번역을 마치기로 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마치 날을 받아 놓은 것처럼, 계약을 하자마자 몸의 파업이 시작되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손 하나 까닥할 수 없을 정도의 탈진과 무기력이 시작되었다. 이번 주말에 몰아서 하면 돼.. 하면서 번역은 자꾸  미뤄졌다.


논문을 쓰느라 1년 6개월, 회사 입사 후 딱 6개월, 거의 2년을 쉬지 못하고 달려온 시점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매일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온몸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일만 잘하면 되는 직장 생활 초년과는 달랐다. ‘조직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박사’ 꼬리표가 무엇을 하든지 따라다녔다. 조직과 관계의 맥락 안에서도 유능하고 호감 있는 팀장이고 리더여야 했다. 감정을 조절하고 절제하는 일에 긴장을 놓칠 수 없는 하루하루였다.


6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다시 복귀한 한국 생활, 빡빡한 일상에서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건만, 나는 나에게 쉼 대신 채찍을 휘둘렀다. 여기서 쉬면 안 된다고, 불굴의 의지로 노력해야 한다고, 그래야 내가 원하는 모습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이다. 현장에서도 독립적인 공부와 연구도 놓치고 싶지 않아, 번역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뛰어든 것이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자기 계발’의 쳇바퀴를 계속 굴러가며 안주하면 안된다고, 뭐라도 해야 한다고 나를 부추겼다.


  


몸은 나보다 정직했다. 버틸 대로 버틴 몸이 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소진증후군이었다. 소진증후군이란 육체적/정신적인 피로가 쌓여 일을 비롯한 일상생활에서 의욕을 잃어버리는 증상을 뜻한다. 장시간 반복적으로 기력을 소모한 탓에 활동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버리는 것이 원인이다. ‘번아웃’(burnout)이란 원래의 용어대로 연료가 다 타버린 듯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의욕도 잃은 무기력한 상태를 가리킨다. 쉽게 말하면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이다*

  

직장인에게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늘 따라다닌다. 영어를 잘해야 하고, 책을 읽어야 하고, 전문 지식을 공부해야 하고…… 성과 사회는 무한정한 ‘할 수 있다’의 긍정성의 과잉 상태이다. 우리는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착취하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피곤해도 쉬기를 거부하는 피로사회의 일꾼은 계속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도전하고, 끊임없이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성과를 향해 돌진한다. 성과를 내는 기계로 끊임없이 작동하기 위해 지쳐가는 몸을 억지로 깨워 가며 일을 한다**


최근 급성장한 에너지 음료 시장의 주요 고객은 피로사회의 일꾼들이다. 2011년 300억 원 규모이던 시장은 2012년 1000억 원이 넘는 규모로까지 커졌다. 수입산인 ‘레드불’을 비롯해 롯데칠성음료의 ‘핫식스’, 코카콜라의 ‘번 인텐스’ 등 한 캔에 60㎎ 안팎의 카페인을 함유한 에너지음료는 전체 기능성 음료 시장의 약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가 됐다*


성과의 압박에 못이겨, 잘 하고 싶은 욕심에 속아, 계속 나를 몰아친 결과는 비참했다. 출판사와 약속한 6개월을 넘기고, 6개월을 미루다가, 내 발로 찾아가 계약 해지를 요청했다. 할수 없음을 깨끗이 인정하고 넉다운되고 나서야, 항복하고, 포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번 째 미룸의 굴레를 끊었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야 했다. 자기 계발의 쳇바퀴를 굴리느라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나고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했다. 몸과 마음의 피로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고백했어야 했다.뭘 해보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쉬는 것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끊임없이 자신을 계발하고 성공하라는 압박에 질질 끌려 덜컥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만 것이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있는 부정적인 힘을 발휘해서, 돌이켜 생각하고 쉬어가는 용기를 발휘했어야 했다**


더 이상 못하겠다고 보내는 몸의 신호를 무시한 채 나를 채근하고 착취하면서 괴롭혔다. 도저히 몸은 움직이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욕심은 포기가 안되니 미룰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에 나를 몰아놓고, 미룬다고 자책하고 비난했다.


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계속 미루고 있는 경우를 만나면, 그 사람의 평소 일과 시간을 점검해본다. 출근에서 퇴근하고, 하루에 기껏해야 1시간 남짓한  여유 시간에 꾸역꾸역 뭔가를 하겠다고 투두 리스트를 만들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때부터 코칭은 ‘뭔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뭔가를 하지 않기 위해서’ 진행된다.


‘할 수 있다’와’ 내일의 희망’ 만이 능사가 아니다. 무조건 ‘하면 된다’를 외치는 것만이 용기고 의지는 아니다. 성과의 압박에 쫓겨 피로 사회의 일용직 일꾼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세상의 부추김을 외면하고  과감히 쉼을 선택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도 필요하다. 지금은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용기를 내야 한다.  



* ‘소진증후군 사회’ 당신의 기력은 안녕하십니까?’ (경향신문, 2013. 8.24)

** 피로사회 (한병철, 2012)

*** ‘자유의 의지 자기 계발의 의지: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 계발하는 주체의 탄생’ (서동진, 2009)

 

*cover photo by 99designs.com

* photo by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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