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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거진 미러 Aug 18. 2023

Vol.20 <사랑을 담아,양동민>

기록보관소

[기록 보관소]


사서 송재희입니다.


내 앞에 나의 죽음을 꺼내놓아봅니다. 머리가 희지도, 허리가 굽지도 않은 오늘의 내가 영정사진의 주인공입니다. 나의 죽음을 직면하며 피차 끝날 생에 비관하기보다, 끝이 있기에 오늘이 소중하지 않냐며 나를 다독이고 싶습니다.


사진이 가지는 힘을 믿습니다. 오롯이 사실을 전달하는 사진의 힘을요. 우리의 민낯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비추는, 사진 찍는 사람 양동민을 만나보았습니다. <사랑을 담아, 양동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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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시고 2년 후에 제가 암 투병을 하게 됐어요. 전에는 ‘열심히 일해서 성공해야지.’라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는데 막상 죽음을 직면하고 보니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사람들은 영정사진하면 노인 분들만 떠올리는데 사실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인생에서 극적인 경험을 한 또래 친구들의 사연을 들어 보고 싶었어요. 삶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공감하고, 위로하려고요.


(중략)


저도 10~20대 때는 ‘오래 살아서 뭐 하나? 잠깐 반짝이며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 이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암 투병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변했죠. 정말 오래 살고 싶다고요. 젊은 사람들 모두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일은 있고 우리가 죽은 후에도 삶은 있거든요. 그러니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으면 해요! 내일은 있다! (주먹을 불끈 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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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 사진을 가장 좋아해요.” 그는 자신의 사진집 <Mother> 속 한 페이지를 펼쳤다. 짧은 머리, 우아한 풍채, 또렷한 눈망울. 사랑으로 빚어낸 마더는 빛을 뿜어 댔다. 찬란함에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열일곱. 동민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가 떠오른다. 한동안 목구멍 아래 울컥함이 가라앉지 않는 게. 시큰한 눈가를 벅벅 비벼도 그대로였다. 이미지 속 당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괜스레 넘실대는 감정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그래, 너무 소중해서 영원히 남았으면 하는 이름들이겠지.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의 사진은 하나같이 날 그렇게 만들었다.



동민을 모르는 분들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사진 찍는 사람 양동민입니다.


사진작가를 업으로 삼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고등학생 때 사진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카메라를 잡아봤어요. 이후 우 연히 보러 갔던 전시에서 오형근 선생님의 <아줌마> 시리즈를 보고 완전히 반했죠. 이분께 배우고 싶어서 계원예대 사진과에 진학했습니다.



다양한 소셜 미디어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 가고 있잖아요. ‘dongminism’이라는 유튜브 채널 이 름이 참 강렬해요. 어떤 의미가 담긴 이름인가요? 

-사실 어디에도 말한 적 없는 건데.(웃음) 어릴 때 좋아 하던 가수 비의 ‘Rainism’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이름 이에요. 당시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하늘을 찔렀었거 든요. 큰 의미는 딱히 없습니다.



유튜브에서 인터뷰 콘텐츠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데, 잊을 수 없는 인터뷰이가 있나요?

-유튜브 콘텐츠 첫 인터뷰이였던 김의 씨요. 암 환우 모 임에서 알게 된 친구예요. 그 친구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감사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고 말했거든요. 오늘 도 살아 숨 쉬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요. 여전히 반복 되는 항암치료와 절박한 상황에서도 이름처럼 의롭고 씩씩하게 이겨내고 있답니다.


<Jayang-Dong>, <Seventeen>, <Mother>까지. 동민의 작품은 신선한 충격 내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강해요. 창작의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오나요?

-제 모든 생활 안에서 영감을 받아요. <Mother>는 뇌 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엄마의 투병 과정과 임 종기를 기록한 작업이에요. <Jayang-Dong>은 엄마 임종 후에 친구분들을 찾아가 찍은 사진이고요. 또 초 등학교 때 제가 살던 동네기도 해요. <Seventeen>은 대학 시절 겨울, 안양 1번가 밤거리를 배회하던 학생 들을 찍은 거예요. 외롭고 방황하던 제 청소년기의 페 르소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Seventeen>에 출연한 모델들은 길에서 섭외한 건가요?

-네. 스트릿 사진이에요. 길에서 다 똑같이 노스페이스 패딩 입고 걸어 다니던 여학생들. 지금은 다들 성인이 됐겠죠?(웃음)


어머니들부터 길거리 소녀들까지 촬영 대상이 다양해요. 특별한 대상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졸업 작품인 <ART> 시리즈를 촬영하러 이태원 트랜스젠더 바에 간 적이 있어요. 사장 님께 촬영 의도를 말씀드리니 흔쾌히 응해 주셨죠. 즉흥적으로 가게 문을 닫고 술과 안 주까지 제공해주시면서요. 제가 엄청 잘생긴 친구를 데려갔었거든요. 꽃 한 송이도 사 들고.(호탕한 웃음) 밤새도록 신나게 노래 부르고 춤추며 찍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자 리를 빌려 말씀드릴게요. 사장님 태리 언니 감사합니다.


동민만의 사진 철학과 신념이 궁금해요.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더 사랑하기도 하고요. 다큐멘터리를 기반에 둔 창작자들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작업에 참여하는 태도를 중요시해요. 단순히 구경꾼의 입장으로 그들을 바라볼 건지, 그들의 삶에 뛰어들어서 빛을 비춰줄 건지 계속 고민해야 하죠. 또 지극히 개인적인 푼크툼*이 이미지 안에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감상할 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개인의 경험과 기억. 작가의 의 도와 상관없는 자신의 주관적 해석을 뜻함.


영정사진 프로젝트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2년 후에 제가 암 투병을 하게 됐어요. 전에는 ‘열심히 일해서 성공해야지.’라는 생각이 머리 에 가득했는데 막상 죽음을 직면하고 보니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사람들은 영정사진 하면 노인 분들만 떠올리는데 사실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인생에서 극적인 경험을 한 또래 친구들의 사연을 들어 보고 싶었어요. 삶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공감하 고, 위로하려고요.


양동민, <영정사진 프로젝트: 카코포니>

섭외 과정이 궁금해요. 어떤 사람을 촬영하는지.

-메일로 신청자를 받기도 하고, 따로 연락을 드리기도 해 요. 친구 김의, 싱어송라이터 백슬기, 그리고 카코포니 씨 는 직접 섭외해서 촬영했습니다. 특히 카코포니 씨도 저 와 비슷하게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로 음악 세계가 확 바뀌었거든요. 그 노래들에 많은 영감을 받기도 했답니다.


‘내가 찍었지만 이건 걸작이다!’ 하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 해주세요.

-2016년도에 발표했던 <Mother> 시리즈요. 어떠한 테크 닉도 없이 오직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낸 엄마와 나의 합작! 다시는 없을 작업이죠.

저도 <Mother>를 가장 좋아해요. 우아하면서도 개구쟁 이 같고, 따뜻하면서도 강단 있는 느낌이 동시에 들어서 요. 찍을 때 어떤 부분을 중점에 두었나요?

-대개 그로테스크하다고 많이들 말씀하세요. 느끼는 게 다들 비슷한 것 같아요. 촬영할 때는 최대한 엄마가 불편 해하지 않게 카메라에 적응시키려 노력했어요. 카메라가 없을 땐 휴대폰으로 계속 찍으면서요. 어떻게 보면 강박 적으로 담았죠. 병이 악화될수록 의식과 육체가 소멸해 간다고 느꼈거든요. 그 과정들이 하나하나 소중해서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어머니의 의상과 메이크업이 엄청 화려하고 멋있더라고요.

-다 제 옷이에요. 원래 그날은 영정사진을 촬영하는 날이 었어요. 살아생전 즐겨 입으셨던 한복을 걸치고 찍었죠. 그리고 매일 잘 때 착용했던 분홍색 비너스 파자마를 입 고 미니언즈 인형을 곁에 둔 채 촬영했어요. 엄마가 투병하시면서 언어 마비가 왔는데, 미니언즈는 사람 말을 따라 하는 인형이거든요. 재밌게 해드리고 싶어서 소품으로 놔뒀습니다. 당시 제가 즐겨 입던 재킷과 선글라스도 함께 연출했어요. 가장 동민다운 엄마 모습인 거죠.


KBS <거리의 만찬> 출연 당시 양희은의 ‘내 생애 가장 아 름다운 말’을 어머니와 자주 들었다고 하셨어요. 사랑하 는 이와 함께 들을 만한 좋은 노래가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이런 것도 아시네요. 현장에서 카메라가 꺼졌을 때 양희 은 선생님께서 라이브로 불러주셨어요.(웃음) 음, 노래는 생각해봤는데 딱 두 곡 있어요. 강허달림의 ‘외로운 사람 들’과 4월과 5월의 ‘장미’요. 전자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들으면 좋겠고, 후자는 땡볕이 내리 쬐는 뜨거운 여름날 길에 핀 장미를 보며!

  

자신의 이름과 얼을 기록하러 온 수많은 사람과 마주하며 기억에 남은 게 있다면요?

-하루는 어떤 가족을 찍게 됐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손자, 그리고 손녀. 이렇게 네 분이 오셨죠. 알고 보니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되어 어머니까지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제 작품을 보고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기록하는 게 얼마나 소 중한지 깨달아서 찾아오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가족분들이 기억나네요. 너무 밝고 유쾌하셨어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이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되네요. 저도 10~20대 때는 ‘오래 살아서 뭐 하나? 잠깐 반짝이며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 이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암 투병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변했죠. 정말 오래 살고 싶다고요. 젊은 사람들 모두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일은 있고 우리가 죽은 후에도 삶은 있거든요. 그러니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으면 해요! 내일은 있다!(주먹을 불끈 쥐고)


지금껏 쉼 없이 달려왔어요. 앞으로의 목표와 꿈은 무엇인가요?

-영화를 되게 좋아해요. 죽기 전 사랑에 대한 영화를 찍고 싶어요. 제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서요. 영정사진 프로젝트도 계속 진행할 예정입니다. 어느 정도 작업물이 쌓이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서 상영회를 열고 싶어요. 인터뷰이의 메시지를 담은 부록도 만 들고 싶고요.


동민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은 이름은?

-백공정. 엄마의 이름입니다. 이젠 이 세상에 안 계시기 때문에 기억해주는 사람이 많이 없잖아요. 제가 오래도록 기억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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