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오동 나무

그는 다 안다

by 미상이


그는 키가 크다. 그의 어깨는 늠름하다. 그의 손바닥은 넓다. 그러나 그는 멀리 있어 잡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내 곁에 있다. 나는 매일 창밖에 그를 본다. 나의 사랑하는 개오동나무.

나는 처음에 그의 이름을 몰랐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심히 바라보기만 했다. 달리 바라볼 것이 없었으므로.


나는 이곳으로 오기 전 평촌에서 오래 살았다. 언니들 근처에서 아이들을 다 키웠다. 언니들은 김치도 담아주고 내가 바쁠 때 애들도 돌봐주었다. 이 곳으로 이사 온 후 언니들과 밥 먹고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던 일상들이 사라졌다. 마치 언니들이 나 몰래 저들끼리만 극장에 갔던 어린 날처럼 나는 버려진 것 같았다. 나는 매일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가 다가왔다. 거기 나의 개오동나무.


나의 개오동나무가 살랑거리기 시작하면 봄이 다시 무성해지고 나의 일상도 기지개를 켠다. 그는 나를 다 안다.

내가 언제 일어나 커튼을 여는지. 누구와 전화 통화를 하고 무슨 책을 펼치고 저녁 공원을 몇 바퀴 걷는지 그는 내가 전철역으로 뛰어가는 것도, 한밤중에 놀이터에서 쥐똥나무 가지를 꺾는 것도 지켜본다.


나의 개오동나무는 아파트 뒷산 입구에서 계절을 본다. 초봄에 산수유와 목련이 피고, 오솔길에 철쭉이 핏빛으로 물들고, 도로에 벚꽃이 지고 나면 벚꽃보다 더 환하게 이팝꽃이 아파트를 덮어버리는 것을 본다. 마로니에 꽃이 아이스크림 콘처럼 부풀다 녹아내리면 여름이 오고 배롱나무 꽃망울이 분수와 함께 터져 버리는 소리도 듣는다. 세상이 잠들었을 때 공원에 작은 포도나무 열매가 배꼽을 부풀리는 소리도 듣는다.


나의 개오동나무 때문에 여름 폭우 속에서도 새들은 노래하고 바람은 껴안는다.

백석에게 갈매나무가 있다면 내겐 개오동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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