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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니 Dec 21. 2022

첫사랑의 BGM

첫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 뭐야?

처음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했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그때 당신은 이미 사랑에 빠져 있었을 수도 있고, 그냥 궁금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뭐죠?

처음 그 배우가 텔레비전에 나왔을 때,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던 것도 사랑인가요?

한 번 읽은 후 몇 달이나 내가 주인공이었으면 생각했던 주인공의 연인, 사랑했던 걸까요?

처음 사촌 오빠가 페달을 잔뜩 밟아가며 피아노로 '음파'를 쳐 줬을 때,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랑인가요?

처음 엄마에게 비밀로 편지를 쓴 친구, 사랑일까요?


누군가는 이 중 한 두 개는 사랑이라고, 아니면 모두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아니지, 그건 그냥 좀 좋아한 거지. 적어도 (  )는 했어야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 ( )에는 아마도 고백, 첫 키스, 사귀기 등 여러 가지가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요. 어떤 분은 이뤄지지 않아야 첫사랑이지... 하며 아련한 눈을 하실 수도 있겠네요. 뭔가 조금 이상한 것 같지만.


저는 제 첫사랑이 누구였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 사람은 첫사랑이 아니야, 하기엔 다들 조금 특별하고. 이 사람이 첫사랑이야,라고 하기엔 그 전의 누군가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고. 그래서 어느 시절까지는 그 모든 희미하고 추상적인 감정을 그냥 그 시절의 공기 같은 걸로 생각하고 있어요. 어떤 종류의 해가 비쳤고, 산들바람이 불어왔고, 어떤 냄새가 실려 왔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한나절이었다, 하는 식으로.


그리고 그런 하루를 생각하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는데, 바로 How Deep Is Your Love?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올드 팝송이죠. 리메이크도 많이 됐고요.


언젠가 라디오에서 배순탁 음악 평론가가, 가사는 부차적인 것이고,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 건 멜로디 때문이라고 했는데, 적어도 어린 시절 이 노래를 들은 저에게는 맞는 말이겠죠.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몰랐지만, 그냥 좋았어요. 썬이라던가 레인 정도는 알았을지도 모르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그냥 설어요.  뭔가 촉촉하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약간 슬픈...


(그런데 맙소사... 지금 보니 이 분들 영국계 호주인이군요... 제 브릿팝 취향은 여기부터였을까요... 심지어 호주로 이민 온 건 뭐죠...)


초등학교 때 친구랑 같이 버스를 탔는데, 마침 조갑경의 입맞춤이란 노래가 나왔어요. 가사 중엔 '사과 향기 진한 추억 속의 입맞춤'이란 부분이 있는데, 친구한테, 난 이 노래 이해가 안 돼. 왜 사과 향기가 나는 거야?라고 했더니 친구가 조용히, 사과 맛이 난다는 말이야,라고 속삭여줬죠. 전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하고, 응? 제리뽀 사과 맛이라도 먹은 건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날도 버스 맨 뒷좌석에 내리쬐이던 오후의 햇빛이 기억납니다. 그때 친구는 코트를 입고 있었으니 겨울이었을 테고, 그렇다면 늦은 겨울 해가 그렇게 눈부셨을 리 없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제 마음속 풍경 배경을 지워버릴 정도의 새하얀 햇빛이 있어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작품에 항상 인상적인 자연광이 나오는 이유로, 어린 시절엔 그렇게 느끼니까,라는 말을 했다던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말랑말랑한 마음에 처음 들어오는 것들은 모두 강렬하게  빛나죠. 아이들이 아주 작은 상처에도 그리 설게 우는 건, 그런 작은 아픔도 그들의 작은 마음을 온통 차지해 버리기 때문에, 그 고통을 비교할 곳이 없기 때문 아닐까요. 아이스크림 하나에 금방 잊어버릴지라도...


좋아하는 마음도 비슷한 것이 아닐지. 어느 순간, 나는 낯선 공간 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곳에서 잠시 헤맨 기억은 마치 꿈에서 방문한 외국의 여행지처럼 흐릿하고, 아롱아롱하고, 부드럽지만 약간 쓸쓸한 마음의 감각으로 남아, 해독되지도 분류되지도 않은 채 통째로 그냥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바로 이 노래의 느낌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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