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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cellaneous Sep 18. 2022

시간이 빚어낸 예술

Zion 국립공원부터 Bryce 국립공원까지

라스베가스에서의 화려한 첫날밤을 보내고, 이어지는 일정은 국립공원 로드트립이었다. 전체적인 일정은 Nevada주에 위치한 라스베가스에서 출발하여 국립공원들이 많은 UtahArizona를 거쳐서 다시 라스베가스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이번에도 자동차를 빌릴 땐 TURO를 이용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세미티를 갈 때에도 만족스럽게 사용했기에 이번에도 별 걱정은 없었다. 빌린 차는 2011 Ford edge 였다. 이전에 빌린 Tiguan 보다는 여러모로 엔진 떨림이나 조향감, 브레이크 민감성 등이 좋지 않아서 좀 걱정은 되었으나, 금방 적응했다. 싼값에 빌린 차에 많은 걸 바라는 건 과도한 욕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Zion national park 였다. 라스베가스부터가 사막 위에 지어진 동네였고, Nevada에서 Utah로 가는 길은 전부 사막이었다. 호텔 입구에서 운전을 시작한 지 1시간이 채 안돼서 양옆에 보이는 것이라곤 주황색 사막과 드문드문 나 있는 선인장뿐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인디애나에 있는 한적한 동네와 위도는 크게 차이 나지 않는데도 온도가 10도 이상 차이가 나고 이렇게도 식생이 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Zion national park의 입구, 차량들이 줄지어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라스베가스에서 Zion national park로 가는 길, 3시간 정도 운전하면 된다.
색상표에서 정 반대에 있는 색이 보색 관계이다. 대척점의 주황과 파랑이 보색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3시간 남짓 운전했을까? 슬슬 주변 풍경이 국립공원 느낌이 나기 시작하더니 Zion national park에 도착했다. 가자마자 보이는 건 새파란 하늘과 보색을 이루는 주황색의 커다란 바위들이었다. 사막지대의 국립공원에서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아름다운 사진이 나오는 것은 이 보색 관계* 때문인 것 같다.

(보색 관계*: 단순하게 본다면 보색은 두 빛을 합할 때 무채색이 되는 색이라고 할 수 있다. 보색은 서로 반대되는 색이니 그만큼 두 색의 대비가 강하게 느껴진다.-출처: 나무 위키)






도착해서 찍은 국립공원 주차장 부근의 사진이다.
주황색과 하늘색의 조합은 나 같은 아마추어에게도 멋진 사진을 찍을 기회를 선사한다.



National park들은 보통 크게 2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곳이냐' 혹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곳이냐' 이렇게 말이다.


예를 들자면, YosemiteZion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곳, 이후 일정에서 후술 할 Grand canyon, Bryce canyon은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곳이다. 물론 Rocky mountain처럼 등산로가 잘 나있어서 올려다보기도 내려다보기도 할 수 있는 곳도 있는가 하면, 대중적인 코스로 가지 않고 굳이 협곡을 내려가거나 바위를 올라간 후 노력의 대가로서 남들과는 다른 뷰를 볼 수도 있다.


아무튼, 내가 생각한 분류는 이 정도 되는 것 같고, 핵심은, Zion national park는 관광객들이 협곡 아래쪽에 난 길에서 길을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협곡들을 올려다보는 곳이라는 것이다. 

Zion national park에서는 나를 에워싼 높은 암벽들에 새겨진 무늬와 결을 보며 협곡 사이에 난 길을 걸을 수 있다. 


Zion national park는 끝까지 차를 타고 이동할 수는 없고, 어느 지점부터는 셔틀만 타고 이동할 수 있다. 정거장은 총 9개가 있디. 여유가 된다면 이곳저곳 다 둘러보고도 싶었지만, 다음 목적지도 있었기에, 몇 군데만 가보기로 했다. 맨 마지막 정거장에는 River side walk가 있다 해서 걸어가 보기로 했다. 

River side walk 옆에 있던 개울 주변에 솟아오른 협곡의 풍경이 웅장하고도 아름다웠다.


다들 어디서 가져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무 지팡이를 하나씩 들고 준비해온 아쿠아슈즈를 신고 강바닥을 걸어 다녔다. 우리 일행만 그런 것 하나도 없이 맨발로 강바닥을 걷고 있었다. 처음에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게 생각보다 보통이 아니었다. 은근히 빠른 물살을 견디며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울퉁불퉁한 돌멩이가 발바닥을 찌르면 입에서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더운 여름날에 그렇게나마 체온을 식힐 수 있어서 아직까지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다. 

River side walk에 사람들이 다들 나무 지팡이를 하나씩 들고 강바닥을 걸어 다니고 있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다들 아쿠아슈즈에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 맨발의 청춘들은 이곳에서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워낙 날이 더웠던지라, 돌아가는 길에는 다람쥐 한 마리가 시원한 땅 쪽에 납작 엎드린 채 체온을 식히고 있었다. 사람이 다가가도 꿈쩍 않는 것을 보니, 목숨과 맞바꿀 만큼이나 더위가 싫었나 보다. 여기저기 더 가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공원이 전반적으로 단조로운 편이었고, 다른 데에서 봐도 이젠 비슷한 풍경만 나올 것 같은 데다가, 다음 일정도 있었던지라 조금은 일찍이 떠나기로 했다.

날이 많이 더웠다. 시원한 땅에 납작 엎드린 채 다가가도 꿈쩍도 않는 다람쥐가 이를 증명한다.
Zion national park에서 나오는 길, 나가는 길에도 멋진 장엄하고 풍경을 보여준다.
이렇게 셔틀을 타고 공원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다. 내부도 상당히 후덥지근하지만 바깥보단 낫다.
Zion national park와의 작별을 고하기 전,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단체사진 한 장
안녕, 언젠가 또 올 수 있을까?


한참 오르막길을 타고 올라가고 나서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급경사에 커브길이 참 많았지만, 그래도 빠져나가는 길조차도 아름다웠다. 돌아가는 길에도 서서히 잦아드는 여운을 주면서 아쉬움조차 불현듯 잊게 만드는 길의 풍경은 National park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자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국립공원들은 나가는 길조차도 아름다워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다음 목적지는 Zion national park에서 좀 더 동쪽으로 가면 나오는 Bryce canyon national park였다. 말이 '조금 더 가면'이지 그래도 1시간 30분 정도 운전해야 갈 수 있는, 100km가량 떨어진 곳이다. 신기한 건, 차로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갔을 뿐인데, 기온이 20도가량 내려갔다. 분명 같은 유타주인데도 말이다. 정말 미국의 날씨는 어메이징 하다. 한여름에 가더라도 갑자기 쌀쌀해질 때 걸칠 겉옷 하나쯤은 챙겨두는 걸 권장한다.

Zion national park에서 Bryce canyon national park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운전해야 한다. 가깝다. ㅎㅎ


사실 도착하기 전까지 Bryce canyon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사진으로조차 본 적이 없었고, 그저 일행들의 말로 "볼링핀들이 세워져 있는 듯한 모습이다"라고만 들었다. 그다지 기대하지 않고 갔지만, 차를 세우고 뷰포인트에서 본 어마어마한 광경에 차마 입을 다물지 못했다. 

Bryce canyon national park의 첫인상, 정말 볼링핀들이 한가득이다.


내가 지금껏 본 것 중에 가장 비슷한 것을 꼽아보자면 바로 진시황릉의 병마용갱을 보는듯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발아래에 비슷하게 생기면서도 다른 모양의 바위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뾰족하게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모습이었다. 이곳의 특징이라면, 다양한 뷰포인트가 있고, 전부 같은 곳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는 뷰포인트이다. 게다가 다른 국립공원과는 달리 주차장에서 뷰포인트까지의 거리가 매우 짧았다는 기억난다. 먼길 걸어갈 필요 없이, 차에서 내려서 1분만 걸으면 아주 멋진 대자연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은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본인의 감탄사가 들려온다. 그만큼 감탄했다는 것이다.

때는 해가 져갈 무렵이었고, 사람들도 많이 빠져나간 후라 한적했다. 마침 우리 일행은 아무도 없는 한적한 뷰포인트에서 지는 노을이 비친 Bryce canyon을 감상하며 난간에 기대서서 수다를 떨었다. 마치 고요한 자연 속에 남은 건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는 무한한 해방감이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지는 노을이 비친 Bryce canyon을 감상하며, 우리는 못 다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나갔다.


해가 더욱 저물자 조금씩 쌀쌀해졌다. 일단 다 같이 숙소부터 체크인하기로 했다. 숙소는 근처의 Airbnb로 잡았지만, 처음에 길을 살짝 헤매서 늦은 밤에 체크인을 하게 되었다. 숙소로 가는 길에, 나는 오늘이 국립공원의 밤하늘에서 별을 보기에 최적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숙소에 갔다가 한밤중에 다시 국립공원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밤하늘을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날의 일정도 워낙 바빴고, 더운 날씨와 뜨거운 태양 아래서 다들 체력적으로 지쳐있었던 지라, 다 같이는 못 가고 나와 I만 미친 척 밤 운전을 해서 Bryce canyon으로 다시 향했다. 궁금하고 해보고 싶은 건 옆에서 뜯어말리더라도 꼭 해봐야 한다는 나의 못 말리는 외골수 기질이 여기서 톡톡히 진가를 발휘했다. 


밤에는 신기하게도 공원 안내부스에서 입장권 같은 것을 체크하지도 않고 마치 운영을 중단한 것 마냥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입구도 뚫린 채로 있었고, 나와 I는 이래도 되나 걱정을 하면서 다시 공원으로 기어들어갔다. 정말 공원 안에서 다니는 차가 우리 차밖에 없는 것 같았고, 어쩌다 한 번씩 보이는 차가 경찰은 아닐까 괜히 무서웠다. 잘못한 건 없지만, 여기 이 시간에 이렇게 들어와도 되는 건가 싶어서 말이다.


낮에 점찍어뒀던 Sunset point로 돌아왔다. 하늘은 충분히 맑았고, 계산된 건 아니지만 마침 무월광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다. 분명 내가 그동안 봐온 밤하늘은 항상 칠흑 같은 어둠으로 침묵하고 있었는데, 밤하늘의 별들이 이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지 미처 몰랐다. 

Bryce canyon에서 찍은 은하수다. 밤하늘이 유독 그날따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 보다.


나와 I가 열심히 사진을 찍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때마침 그곳 벤치에는 한 독일인이 통기타를 치며 독일어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사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실루엣조차 보이지 않는 음유시인이 연주하는 멜로디는 이 고요하면서도 요란한 밤하늘에 더없이 적절했다.

작은 센서 크기에 제한된 노출시간의 GR3 본체만 갖고 이 정도의 사진을 담아왔다는 것에 충분히 만족한다.


눈이 점점 어둠에 적응해갈수록 더욱 많은 것이 보였다. 어둠 너머의 것들까지, 서서히 잘 보이기 시작했고, 은하수도 그 실루엣만큼은 얕게나마 볼 수 있었다. 삼각대도 없고, 좋은 카메라도 없었던지라, 온갖 주변 사물을 이용하여 카메라의 각도를 맞추어 사진을 찍어냈다. 그리고 열 번 정도의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원하는 결과물을 얻어냈다. 


어느 정도 사진을 찍고 나서 우리는 잠시 벤치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며 이 아름다운 순간을 머릿속에도 담았다. "별이 쏟아질 것 같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하늘이었다. 한없이 거대한 코스모스 앞에서 나의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진 찍느라 정신이 팔렸던 사이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버렸고, 나와 I는 추위에 떨고 있었으며, 구름은 서서히 밤하늘을 가리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런 행운은 좀처럼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으며,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숙소로 돌아오면 J와 H가 이미 잠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둘 다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미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둘 다 기다리고 있었다니, 딱히 잠이 오지 않아서 그랬다는 걸로 기억하는데, 어쨌든 우리를 기다려주고 걱정해준 것만 같아 고마웠다. 그날 밤의 무용담을 그들에게 풀어내며 같이 가서 멋진 하늘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리고 곧이어 예상치 못한 소식을 들었다. 바로 J가 체력적인 이유로 여정을 2일 정도 일찍 마치고 먼저 돌아가려고 비행기표를 끊었다는 이야기였다. 적잖은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예상하지 못했던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여행의 목적이라는 것이 즐기기 위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건 더 이상 여행이 아닌 고행이기에 나를 비롯한 나머지 일행들은 J의 결정을 존중했고, 결국 우리는 일정을 조금 수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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