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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cellaneous Oct 01. 2022

그랜드 캐니언에서 마침표를 찍다

Grand canyon 국립공원 여행기

마지막 로드트립의 날이 밝았다. 앞선 국립공원 여행들에서 산전수전 겪다 보니 이젠 여행 갈 때 뭐가 필요할지, 선크림을 어디에 발라둬야 할지, 어떤 옷을 입고 가야 할지 등등 많은 것들이 능숙해졌다. 오늘의 메인 목적지는 Grand canyon national park(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 였지만, 그전에 들러야 할 곳이 한 군데 있었으니, 바로 Hoover dam(후버 댐)이었다.

우리가 있던 숙소에서 Hoover dam 까지는 40분 정도 걸렸다.


Hoover dam은 과거 미국의 대공황 시절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시행한 대규모 토목공사이다. 그 시절 후버댐을 짓던 엄청난 수의 노동자들은 노동의 대가로 얻은 봉급을 소비할 곳을 찾고 있었지만, 그 근방의 도시라곤 라스베가스가 전부였다. 남성이 주를 이루는 노동자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이곳은 공연, 도박, 호텔, 매춘으로 뒤덮인 관광과 향락의 도시로 성장하였고, 그것이 지금의 라스베가스로 이어졌다. 사실 후버댐 사업이 라스베가스를 키운 것이라고 봐도 무관할 정도이다. 


1931년에 착공하여 1935년에 완공한 이 거대한 댐은 20세기 미국 토목공학의 정수로 일컫어지는 많은 의미가 담긴 곳이다. 엄청난 규모 덕에 다양한 기록들을 가지고 있으며, '규모'를 주제로 이야기할 때 레퍼런스로 자주 등장하기도(예를 들면 "여의도 면적 00배" 이런 것처럼) 한다. 상당히 많은 기록과 여담들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지만, 충분히 검증된 정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 이곳에 따로 언급하진 않겠다.

정말 거대하면서도 아찔하게 생겼다.

후버댐은 나름 미국의 국가 중요시설이다 보니, 이곳으로 향하는 차들은 검문검색을 한다. 사실상 안 하느니만 못하게 대충대충 검색을 하고, 그냥 해야 돼서 하는 느낌뿐, 트렁크를 열거나 하차를 요구하진 않으니 쫄 거 없다. 그래도 나름 9.11 테러 이후에는 테러 위협을 막기 위해 댐 위로는 대형트럭(댐을 붕괴시킬만한 폭발물을 운반할 수 있기 때문)이 다니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일단 하차지점에서 내려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댐이 내려다 보이는 다리를 건널 수 있다. 

관광들이 준수해야 할 주의사항들이 안내되어있다. 상당히 바람이 강하게 부는 곳이라 사람이 다니기엔 위험할 수 있다.
후버댐 위를 지나는 다리의 이름이다. 마이크 오 뭐시기...
후버댐은 Nevada 주와 Arizona 주의 경계에 속해있다. 뒤에 Nevada 주의 표지석이 보인다.
신기하게도 송전탑들이 저렇게 반듯이 기울어진 채 새워져 있다.
댐 위에서 다리를 바라본 모습이다. 다리 아래로 콜로라도 강이 흐르고 있다.


댐 기둥에는 흰색으로 조각된 미술품이 부착되어 있었다. Flood control(홍수 조절), Navigation(항해?? 탐색??), Irrigation(관개), Water storage(수자원 저장), Power(전력생산)는 각각 후버댐의 큰 역할이라고 한다. 각 역할별로 아래에 후버댐을 의인화한듯한 근육질의 남성이 마치 '몸으로 말해요'라는 게임을 하듯이 포즈를 잡고 있다. 근데 저 다섯 개 중에서 Navigation은 어떤 의미에서 후버댐의 역할인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후버댐의 역할을 의인화된 캐릭터로 표현한 모습이다. 엉성한 포즈에 진지한 표정의 조합이 다소 그로테스크하다.
대충 엄청난 걸 봐서 상당히 기분 좋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중이다.


후버댐에는 신기한 것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댐의 벽을 타고 위로 솟구치는 상승기류이다. 이 상승기류 때문에 물을 부어도 물방울이 떨어지기는커녕 하늘 위로 솟아올라버리는 광경을 유튜브에서 접할 수 있었고, 보면서도 상당히 의아했다. 이런 건 또 해보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기에, 이미 차에서 내릴 때부터 이 실험을 위한 물을 가지고 내렸다. 상승기류가 계속적으로 일정한 세기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물이 그냥 줄줄 떨어지기도 했지만, 타이밍을 잘 맞추면 물병 입구에서 나가기가 무섭게 위로 흩어져버리는 물을 볼 수 있다.

후버댐의 벽을 타고 올라오는 강력한 상승기류로 인해 물이 중력을 거슬러 올라온다
상승기류가 내 길고 소중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있다.


타버려서 빼빼로가 되어버린 나의 팔과 닮았던 암석의 색채 대비

뒤쪽으로는 후버댐 때문에 생겨난 Lake Mead(미드 호)가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건, 주변 암석에 너무나도 명확한 경계가 있는 것이었다.(마치 나의 팔뚝처럼)


알고 보니 후버댐이 생겼을 당시의 미드 호의 수위는 항상 저 하얀 부분만큼 차 있었지만, 갈수록 증가하는 물 사용량과 최근에 급격해진 가뭄 때문에 근 20년에 걸쳐 수위가 감소했고, 이 같은 모습이 드러나게 된 거라고 한다. 물에 잠겨있던 부분이 하얀색인 것은 물속의 미네랄이 퇴적된 결과라고 한다.



뒤쪽에는 Lake Mead가 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암석의 흰 부분 까지가 이 호수의 수위였다고 한다. 


미국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였던 후버댐을 마침내 보았다는 것에 크게 만족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댐은 높이만 따지고 보면 세계에서 가장 큰 댐 Top 10축에는 끼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이유는, 이 엄청난 구조물을 1930년대 기술력으로 단 5년 만에 준공함으로써 생긴 토목공학적 의미와, 대공황에서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라스베가스를 탄생시키면서 막을 내림으로써 생긴 역사적 의미가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후버댐에서 4시간 정도 더 운전해서 그랜드 캐니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갈수록 심해지는 차체 진동을 보여주며 정신줄을 놓으려고 하는 우리의 2010년형 Ford edge의 핸들을 부여잡고, 제발 로드트립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빌었다.

Hoover dam에서 Grand canyon national park 까지는 차로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Grand canyon(그랜드 캐니언)이라는 이름은 해외에 단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한국사람도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본 장소일 것이다. 미국에 가기 전의 나 역시도 어린 시절부터 그랜드캐니언이라는 이름은 수도 없이 들어보았다. 197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75호로 지정된 그랜드 캐니언은 원래 높이 솟아오른 고원지대였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 고원지대의 가운데를 Colorado river(콜로라도 강) 이 흘러지나 가면서 침식작용이 일어나서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고원지대를 동서로 가로질러간 콜로라도 강의 북쪽이 North rim, 남쪽이 South rim으로, 크게 2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우리의 목적지는 South rim이었다.

그랜드 캐니언은 고원지대(초록색)였던 곳에 콜로라도 강이 동에서 서로 흐르면서 계곡(갈색)을 만들어낸 결과다.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은 지금까지 가보았던 어떤 국립공원 보다도 시설이 좋았다. 주차장, 화장실, 안내소, 셔틀버스, 도로 등등 모든 게 정녕 자연 한가운데에 만들어 놓은 건가 싶을 정도로 상당히 깔끔하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 워낙 세계적인 명소이다 보니 다른 국립공원에 비해서는 방문객의 인종이 더욱 다양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평생 기억에 길이 남을 장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또 한 번
웅장한 대자연의 신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 존재가 되어
무아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과연 지구상에 이보다 더한 웅장함이 있을까?


여태껏 살아오면서 화면 속, 사진 속 풍경으로만 보아왔던 그랜드캐니언은 마침내 이곳을 두 눈으로 직접 마주했을 때 모두 잊게 되었다. 엄청난 규모의 계곡이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에서부터 매우 오랜 시간 동안 깎아 내려져 간 것을 겉에 드러난 지층을 통해서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North rim 쪽에는 안개가 조금 끼어있었다. 안개마저 없었다면 참 좋았을 것 같지만, South rim에서 보이는 풍경도 충분히 훌륭해서 나에게 감동을 주기엔 충분했다. 

Grand canyon의 모습, 약간은 안개가 끼어있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진 스폿을 찾고 있던 중, 절벽 끄트머리에 어떤 백인 여성분이 아무렇지 않게 앉아서 그랜드캐니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나를 보고 찍새라고 생각했는지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핸드폰에 보이는 그림을 봤는데, '와 여기다, 여기가 진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I와 H를 불러서 여기서 꼭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불러 모았다.

백인 언니가 아무렇지 않게 앉아계시던 곳에 앉아보았다. 역시 대단한 언니였다. 


그랜드캐니언에는 난간이 있는 곳보다 없는 곳이 훨씬 많고, 위험한 곳으로 간다 할지라도 어느 누구도 말리지 않다 보니, 스스로 마음속의 모험심과 조심성 사이에서 적당한 줄타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껏 들뜬 기분에 뭘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으로 위험한 행동을 무릅쓰다간 빠른 시일 내에 조상님과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상당히 아무렇다. 머릿속에서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이 무한 재생 중이다.


South rim의 절벽 테두리를 따라 난 길을 걷다 보니 다람쥐들이 많이 보였다. 워낙 사람이 많이 오다 보니 사람 손을 많이 타서인지, 다른 국립공원들처럼 다람쥐가 도망가기 바쁜 게 아니라 일단 콩고물 안 떨어지나 확인하러 사람 쪽으로 다가오곤 한다.


다람쥐랑 밀당 좀 몇 번 하다 보니 길 중간쯤에는 지질박물관이 있어서, 그랜드캐니언의 생성원리와 국립공원의 역사 등등 다양한 정보를 훑어볼 수 있었다. 지형을 전제적으로 볼 수 있는 디오라마도 전시되어 있어서, 대자연이 그린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해 줬다.

지질박물관 안에 있던 디오라마, 빨간 화살표로 표시된 곳이 우리가 있던 곳이다.
심상치 않은 먹구름이 동쪽에서부터 몰려오고 있었다. 정말 좋은 타이밍에 잘 보고 갔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그랜드캐니언을 1시간 남짓 봤을 때였나, 갑자기 엄청난 양의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 덕분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단체사진을 한 장 찍고 우리는 황급히 차로 향했다.


차에 타고 얼마 가지 않아 차 지붕을 뚫을 기세로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 조금이라도 늦게 출발했다거나, 후버댐에서 시간을 지체했다면 아마 우리에게 그랜드캐니언은 축축한 기억으로 영원히 남았을 거라는 생각에 살짝 아찔했다. 


다음날 라스베가스의 마지막 아침이 찾아왔고, 우리는 화려했던 아라비안 나이트를 마치고 각자의 일상으로 복귀할 채비를 했다.


I는 2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 했고, H와 나는 남은 1년도 힘내서 졸업이라는 결승선까지 무사히 통과해야 했다. 이렇게 각자가 향해야 할 목적지는 다들 조금씩 달랐으나, 10일간의 서부여행이 우리의 미래를 살아갈 큰 원동력이 될 것임은 분명했다. 




에필로그: 서부 여행기의 마침표를 찍으며


여행 중에 기억을 좀 더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어두고, 그때그때의 감정과 느낌 그리고 생각을 핸드폰에 메모해 두었던 것이 나의 머릿속 기억과 어우러지고, 그것이 한 편의 글로 탄생될 때마다 더욱이 선명해지는 추억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곤 한다. 마치 잘 복원된 문화재나 유물을 보는 느낌이랄까?


일일이 사진을 찾아서 글로 써내는 게 귀찮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 않냐고 물어보는 이들도 있지만, 나에겐 글을 써내며 추억에 잠기는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특히 요즘처럼 높은 환율로 인해 여행은 차치하고 생활조차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때에는 여행기록을 쓰는 것만큼이나 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 남긴 추억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매우 값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일상 속에서도 행복한 추억을 남길 수는 있지만, 적어도 나의 뇌가 본능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보는 것에서 오는 충격과 영감들이다.


심심한 미국의 중부지역인 Indiana에서 대부분의 유학생활을 보내는 나에게, 광활한 미국은 어디를 가도 신기하고 색다른 것투성이다. 그리고 특히 이번에 다녀온 서부여행은 도시부터 자연까지 어느 것 하나 익숙한 것이 없었다. 가는 곳마다 매번 마주치는 건,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느끼지 않고서는 논할 수조차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낯선 것들에서 얻어지는 충격을 여행을 통해 잠시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즐기면서, 삶의 경험치가 쌓이고 작게나마 내면의 성숙을 이뤄내곤 한다. 


이러한 소중한 경험들을 생생하게 되새기기 위해, 글을 읽는 훗날의 내가 여행자였던 나의 시점에 완벽히 동화되어, 신선하게 보존된 기억을 꺼내올 수 있게끔 모든 걸 최대한 자세하게 기록하는 편이다. 어쩌면 타인의 입장에서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고 산만해 보이는 곁다리들일 수 있었겠지만, 부디 재밌었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추억과 멋진 글감들을 선물해준 서부여행의 동행자이자, 내가 아끼고 존경하는 대학 동기들이기도 한 I, J, H에게 감사의 뜻을 남기며 길었던 서부 여행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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