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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연 Dec 23. 2022

요리하듯이 글이 써졌으면 좋겠어

"요리하듯이 글이 써졌으면 좋겠어"

주말 오후, 낮잠을 자고 일어난 남편 알피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요즘 그는 퇴근 후와 주말 시간을 쪼개 논문을 쓰기 바쁘다. 그의 비유가 재미있어서 요리하듯이 글이 써지는 건 어떤 건지 물었다. 


“요리를 할 때는 뭘 만들어야겠다 하면 모든 과정이 머릿속에 한 번에 그려지거든. 재료를 길게 썰지 도막을 낼지, 어떤 순서로 볶거나 튀길지, 어떤 타이밍에 뭘 넣을지, 언제쯤 오븐을 예열할지, 어떤 오일을 쓰고 어떤 향신료와 드레싱을 사용할지 단계별로 착착. 논문을 쓸 때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히 재료는 다 있는데 이걸 어떻게 조합하고 전개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너무 많아.”


역시 전직 셰프답다. 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이라 신선하기까지 하다. 체계적인 알피와는 달리 메뉴를 정했으면 전체적인 과정은 생각하지 않고 일단 프라이팬부터 데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하다 보니 꼭 뭐 하나 빠진 재료가 생기는데 그러면 요리를 잠시 멈추고 퇴근길인 그에게 부탁하거나 쉬고 있는 그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식이다. 예열해 놓은 오븐이 이미 식어있을 때도 많다. 오늘만 해도 충분히 달궈지지 않은 프라이팬에 충분히 해동되지 않은 잡채를 던져 넣었다가 한 소리를 들었다. 이런 식이니 요리를 한번 했다 하면 싱크대와 조리대가 난장판이 되지만 그래도 아직 주방을 불태우거나 못 먹을 음식을 완성시킨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난 이미 요리하듯이 글을 쓰고 있어. 무작정 앉아서 써 내려가고 보는 게 똑같아” 


바로 알아들은 알피가 크게 호응하며 웃는다.


내가 저녁을 차린답시고 벌여놓은 온갖 흔적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방에 들어간 그가 생각을 정리하며 논문을 쓰는 동안 난 생각을 죄다 풀어놓으며 에세이를 쓴다. 요리하듯이 글을 쓰고픈 그와 너무나 요리하듯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각자의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의, 그리고 각자의 시간.  


문득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요리를 하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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