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은 케이티 언니와 만나서 너무 행복했다.
종종 그 둘은
일을 끝내고 호안끼엠 근처 프랑스나 이태리 식당에 앉아
와인잔을 부딪히며
해외생활의 어려움을 나누기도 했다.
비록, 첫 만남의 목적이었던
사업거래에 관해서는
케이티 언니는 즉답을 피하고 계속 말을 돌렸지만
수민은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케이티 언니와의 관계는 계속해서 유지해 나가고 싶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수민과 달리
멋지게, 그것도 타지에서 자기 사업을 하는 케이티 언니는
롤모델 그 자체였고
케이티 언니도 수민에게 사회생활에 필요한 조언들을
아낌없이 해주었기 때문이다.
수민은 그런 그녀에게
친언니와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언니, 이번주까지 일이 너무 바빴네요
혹시 내일 저녁에 시간 돼요?
둘의 우정이 깊어지던 어느 여름날
수민의 질문에 평소와는 다르게
케이티 언니는 오랫동안 답이 없었다.
3시간, 6시간,
그리고 하루, 이틀 -
일주일 -
처음에는 일이 바빠 답이 없는 것이라 생각했던 수민도
이쯤 되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답을 기다린 지 일주일째 되는 날,
안 되겠다 싶어 일을 끝내자마자 수민은 그랩을 잡아
케이티 언니의 사업장으로 달려갔다.
...
수민이 찾아간 케이티 언니의 사무실은 낯설었다.
갓 임대를 내놓은 신규 오피스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책상이며 의자며,
수민에게 K-자양강장제를 꺼내주던 미니냉장고까지-
모든 것이 감쪽같이 증발해 있었다.
수민은 손바닥이 축축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도대체 무슨 급한 사연이 있었길래
이렇게 말도 없이 떠난 걸까
주변의 몇 안 되는 베트남, 한국지인들을 통해
케이티 언니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수민이 생각하기에
케이티언니는 누구보다 의리가 있고 책임감이 강해서
절대 말없이 사라질,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분, 임대료 계속 미납하다가
집기 싹 정리해서 야반도주했대요
수민은 가슴이 죄어 드는 느낌을 받았다.
수민 씨,
순수함도 이제
그 정도 나이 먹었으면 벗어내야 해
해외에서 절대 믿어선 안 되는 게
한국인이라고
수민은 당혹감과 슬픔, 걱정, 공허함,
그 모든 것이 범벅이 된 감정 속에서
사고의 스위치가 꺼진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바보든, 아니든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케이티 언니가 여전히 걱정되었다.
어딘가에서 그저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