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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Jul 08. 2018

멱살 잡아 세상을 바꾸는 '파도 위의 여성들'

낙태죄 폐지에 관한 이야기 

케이트와 은선, 그리고 나는 행사가 끝나고 쭈꾸미집으로 향했다. 하자센터에서 상영회가 끝난 시각은 9시. 어느새 해도 지고, 배가 고팠다 달달한 막걸리도 시켰다.

영화 '파도 위의 여성들'은 인상적이었다. 가슴이 찡했다. 나는 그냥 해버리는 여성들이 좋다. 언젠가 법이 바뀌길 기다리거나, 반대파를 설득하고 나서야 나은 세상이 찾아올 것이라 기다리지 않고, 그냥 세상을 당장 구하는 여성들. 영화 '파도 위의 여성들'은 레베카 곰퍼츠와 함께 세상을 '당장' 바꿔낸, 더 나은 세상을 멱살잡아 끌고 온 여성들의 이야기다.

레베카 곰퍼츠는 네덜란드의 산부인과 의사다. 약물을 통한 안전한 임신 중지가 가능하다는 것을 모르고 불법 낙태 중 죽어가는, 수 많은 여성을 위해 레베카 곰퍼츠는 이 운동을 한다. 그들은 약을 전달하기 위해 배를 타고,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드론을 날리고, 로봇을 보낸다. 우먼온더웹(www.womenonweb.org)에서 상담을 받고 알약을 우편으로 보낸다. 경계 없이 세상의 여성을 구한다. 

뜨개바늘, 옷걸이, 표백제, 그리고 다섯 알의 알약 

그들이 보내는 알약은 다섯알이다. 한 알을 먹고 몇 시간 뒤 네 알을 연속해 먹으면 임신 10주 미만일 때 안전하게 스스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다. 환자가 수술대에 누울 필요도 없고, 의사가 기구를 들 필요도 없다. 딱 다섯알의 알약만 혀 밑에 넣으면 된다. 이 알약에 접근할 수 없는 여성들에게 이들은 바다 위에서 알약을 전한다. 네 알의 알약이 존재하지 않는 낙태 금지 국가의 여성들은 뜨개바늘로, 옷걸이로, 표백제로 낙태를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법망을 피할 수 있는 영해 위 어느 삼각지대, 여성들은 서로를 구하기 위해 그 곳에 작은 배를 띄운다. 

원치 않는 임신을 지속하도록 강제하는 것. 사실상 여성의 몸에 대한 고문이다. 십개월 동안 뼈가 벌어지고 장기가 뒤틀리며 거동이 어렵고 메스껍고 어지럽다. 임신은, 출산은 위험한 일이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가 임부의 몸에 위험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출산 과정의 위험은 고귀한 것으로 덧칠해 생략한다. 

낙태를 금지하는 것이 태아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고 사람들은 막연히 생각한다. 그러나 낙태를 금지하는 것은 불법 낙태로 수많은 여성이 죽도록 내버려두는 일이기도 하다. 그들이 조작된 낙태 수술 영상을 가지고 핏대 올리는 동안 전세계 여성들은 자신의 자궁에 옷걸이를 넣다가 과다출혈로 죽는다. 

여성들의 판단에 대한 신뢰, 그리고 낙태법 페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의 나영 님은 영화를 보며 또 한 번 울었다고 했다. "여성들의 판단에 대한 신뢰, 그리고 그 신뢰를 기반으로 한 활동"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임신 중지를 권리로 주장할 때 사회의 몇 가지 반응이 있다. 여성을 자신의 몸에 대해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존재로 깎아내리는 것. 여성들이 무분별하게 낙태를 할 것이란 상상이다. 낙태가 합법화 되면 오늘 피임 없이 섹스하고 내일 낙태하고 다음주에 섹스하려고 이번주에 낙태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 상상하는가. (정말?) 

한국은 위선적인 나라다. 1970년대에는 정부도 종교계도 아이를 낳지 말자고 했다. 낙태 버스가 전국 방방곡곡의 마을을 돌았다. 이 정부 선전이 너무나 성공해버리자 다시 '저출산이 문제'인 시대가 왔다. 태아의 성감별 기술이 가장 발달한 이 나라에서 여아들은 일찍 뱃속에서 죽었다. 이제 살아남은 '여아'들은 아이를 낳아야할 성숙한 자궁이 되었다. 가임기 여성으로 이들의 머릿 수를 셈하고 이들이 신혼 부부가 되면 아파트 지원을 받고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환히 웃는 얼굴로 너희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고충을 이해한다고 국가는 말한다.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국가는 이들이 '출산'이라는 선택지로 오도록 길목을 설계한다. 

한국은 위선적인 나라다. 배우자의 동의 없이 여성이 임신 중지를 선택하면 불법이다. 임산부를 오랜 기간 때린 남편이어도, 헤어진 남성이어도 '내 씨'를 함부로 다룬 여성을 고발할 수 있다. 여성의 몸은 삭제된 채 '씨'만 보는 엑스레이식 법 적용. 부모에게 장애가 있는 경우 낙태가 허용되기 때문에, 장애 여성은 주변에서 낙태를 강요 받기도 한다. 이 사회가 필요로 하지 않으면 성감별로, 장애를 이유로 아이를 낙태하도록 허용한다. 이주여성은 귀한 농촌의 남성이 대를 잇기 위해 '자궁'으로 동원된다. 가족들이 원할 때 임신하고, 원하지 않을때 임신하지 말아야 한다. 농번기라 일손이 바빠서, 바람 필까봐 두려울 땐 시부모가 손을 끌고 병원에 가 피임 수술을 시킨다.

한국은 위선적인 나라다. 우리는 인구 관리, 생명 선별을 위해 여성에게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해왔다. 산부인과 교육 과정에서는 임신중지의 방법, 과정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지만 현실은 낙태를 위한 병원을 암암리에 찾을 수 있다. 이 위선을 이용해 어떤 이는 낙태 브로커가 되고 어떤 산부인과 의사는 현금 금고를 채운다. 자신의 몸을 제 뜻대로 할 수 없는 이 나라의 여성들은 안전하지 않고, 위험한 수술대 위에 눕는다. 

모든 섹스는 임신의 위험을 알고 하는 것이며
여성은 섹스하기로 동의한 순간 이미 일정 정도 '엄마'나 다름 없다는 것을
국가가 변론이랍시고 꺼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콘돔 끼지 않는 쾌락은 남성의 본능이고,
원치 않는 임신도 엄마로서 포용하는 것이 여성의 본능이라는
모성 신화는 그만 우려먹어야 하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는 물론이며, 
그 어떤 여성도 차별 없이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안전한 임신 중지에 대한 권리를 
국가로부터 온전히 되돌려 받아야 한다. 

(그러기도 전에 출산 어쩌구 지랄하면 진짜 안되는 것 아니겠는가..........)

SUMMER 소속닷페이스 직업출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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