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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Sep 30. 2018

고통의 순간에 머무는 일요일

이태원 요가 일기 선데이 나마스테 

요가 일기 9월 30일


한 달의 마지막 날. 서늘한 바람이 불어 얇은 운동복 위에 니트를 걸쳤다. 추석 전 주엔 칼럼 마감을 부랴부랴 해내고 요가에 가지 못했다. 추석에는 등근육이 뻐근하도록 잤고, 9월의 마지막 주 이태원으로 요가를 하러 갔다. 


선생님은 팔언저리가 까맣게 탔다. 추석 동안 무인도에 다녀왔다고 한다. 같이 요가 클래스를 드는 동생과 함께 자매 모두 추석을 무인도에서 보냈다. 요가를 끝내고 같이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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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이 필요해서 무인도에 갔어요. 바나나잎 위에서 요가를 했어요. 무인도에선 시간이 어찌나 빨리가던지. 밥할 거리를 찾고 밥을 하고 불을 피우고 빨래를 하고 잠을 자고 요가를 하고. 물 속이 다 보이는 투명한 바다에서 작살을 넣어 고기를 잡아요. 돼지를 한 마리 데려갔고 네 명이 목을 잡고 목의 한 점 깊숙이 칼을 넣었어요. 차마 볼 수도 없었는데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였어요. 십수명이 이틀을 먹었어요. 닭을 잡을 때는 기절시키지 않고 헐떡이는 숨에 피가 빠져나오도록 산 채로 잡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잔인하고 자연에서 당연한 일들을 새삼 알게 되었고, 도시에서 널려있는 그 수많은 고기들은 모두 어떻게 왔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음식은 모두 둥그렇게 앉아 한입씩 돌려먹어요. 코코넛은 입속으로 쏟아부어도 부어도 모자라지 않고 넘쳐요. 다들 자신의 재능을 알게 돼요. 불 피우기를 천성으로 잘 하는 사람이 있고, 불 지키기를 천성으로 잘 하는 사람이 있고. 모두 서로의 생존에 필요한 동료로서 서로를 일꾼으로 써요. 

무인도에선 자꾸 멀리 보게 돼요. 먹구름이 올까,아닐까. 빨래를 널어야 할까,아닐까. 하늘의 색깔이 시계이고 구름의 움직임이 일과이고. 먹구름 한덩이가 수도꼭지처럼 섬에 비를 퍼부으면 김장용 비닐이 왜 필요했는지 알게 되고요. 사람들이 섬에 들어오기 전 섬의 뱀들을 쫓아버린 훈련받은 개들은 참 귀여웠어요. 사람을 잘 따르고요. 정말 좋았어요. 꼭 가봐요. 무인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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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의 시간을 재밌게 쓰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하려다 말을 멈췄다. 인생을 쓴다는 표현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정된 자원을 쓰거나 지불한다는 말이 두 사람의 무인도 이야기엔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요가원에서도 자꾸 시계를 보고 싶었다. 시계가 보고 싶으면 창 밖의 하늘을 보고 천장의 무늬를 보고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나는 자꾸 다음 순간을 생각한다. 자꾸 다음 걸음을 생각하며 걷고, 다음 스케쥴을 생각하며 시계를 본다. 나는 순간에 머물고 있는, 초조하지 않은 그 무인도 이야기 속의 시간이 참 좋았다.  


이번 주말엔 고통에 대해 생각했다. 토요일엔 그레이아나토미를 봤다. 이 의학 드라마에서는 매 화마다 환자가 죽고 다치고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어리석은 짓을 하고, 매 시즌마다 주조연급 의사들이 죽고 다치고 사라진다. 다들 교훈을 얻고. 시작지점과 끝 지점의 나레이션은 뜬금없고, 머릿속에서 울리는 독백같다. 우여곡절이 눈 앞에서 흘러간다. 독백이 그 의미를 잡는다. 독백으로 누군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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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고, 애쓰고, 고통이 계속 될 것 같을 때 정말 더이상 애쓰지 못할 것 같을 때 그 때를 지나버리면 돼요. 더이상 안 되겠을 때 다음 순간이 와요. 계속 숨을 쉬고 그 때를 지나서 다음 때로 가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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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몸이 말랑말랑하고 유연하다고 '아기 같은 몸'이라고 내게 말했다. 탄탄한 근육이 한 점도 없는 '아기같은' 몸으로 나는 요가를 한다.  발목을 잡고 허리를 휘어 뒤로 넘어가는 동작을 취할 때는 너무 쉽다. 유연하고 민첩하게 발목을 잡고 허리를 휠 수 있다. 그치만 요가에 필요한 건 유연함만이 아니다. 내가 수강하고 있는 '하타요가'는 한 동작 안에서 머무는 것을 중시한다. 그러니까, 자세를 취하고 민첩하게 바꾸는 것보다 버티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쉽게 자세를 취하고 의기양양했다가 금방 나는 달달달 떤다. 도저히 버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팽팽한 느낌. 팽팽하고 고통스럽고 지탱이 어려워 금방이라도 위험한 자세로 무너질 듯한 느낌. 그런 느낌을 받으며 버틴다. 


이번 주말엔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생각했다. 아슬아슬하고, 팽팽하고, 고통스러울 때 그 순간을 다음 순간까지 이어갈 수 있는 힘은 호흡이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그 고통의 순간에 머문다. 가슴을 펴고 스스로를 하늘로 끌어올리고 어떤 부분은 자연스럽게 땅에 맡겨 끌어내린다. 호흡에 맞춰 끌어올리고 끌어내리면서 그대로 존재하고 고통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인다.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급하게 몸을 비틀거나 궁여지책을 찾으면 몸이 다친다. 할수 있는 만큼. 조금씩 숨쉬며 한다. 


요가 수업은 철학적인 면이 있다. 웅크리고 온몸을 펴는 가운데 생과 사를 담는다. 아기 자세에서 시작해 마지막 자세에선 꼭 죽는다. 시체처럼 부동의 자세로 머물러야 한다. 나는 요가를 배우면서 내가 못하는 것을 두 가지 알게 되었는데, 하나는 부동의 자세로 가만히 있는 것이다. 시체는 눈을 뜨면 안 되는데, 눈을 굴리고 손가락을 까딱까딱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저 멀리 갔다가 못돌아오고. 못하는 것 또 하나는 숨을 잘 내쉬는 것이다. 몇 번의 수업을 지나고 조금 나아졌는데, 고통스러우면 숨을 참으려 한다. 그런 습관들 속에서 평상시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고통 앞에서 습관적으로 호흡을 멈추진 않았는지. 고통 속에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오르락 내리락 스스로 자리를 잡는 걸 스스로 방해하진 않았는지. 부동의 시간이 필요한 때 스스로 괴롭히진 않았는지. 


오늘은 허리가 많이 아팠다. 몸이 완전히 굳어있었던 첫 수업만큼 괴로웠다. 그치만 고통을 인지하고 그 안에서 머무르는 일을 할 수 있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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