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는 아닙니다.
중저음의 중후한 목소리. 사건 현장 수색을 위해 암벽 등반하는 와중에도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 넥타이. 감히 형사에게 칼을 들이댄 용의자를 구타하려는 후배를 꾸짖으며 ‘가혹행위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하는 원칙주의자. 품속에는 항상 일회용 물티슈를 지니고 있을 만큼 깨끗한 남자. 외모마저 영화배우 박해일을 닮은 품위 있는 형사 장해준.
그가 탕웨이를 닮은 매혹적인 용의자 송서래에게 고백한다.
“내가 품위 있댔죠? 품위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요? 자부심이에요. 난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온라인마케팅을 주업으로 하는 광고대행사를 운영하며 많은 강연을 다닌다. 강연 후 질의시간에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왜
마케팅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전직 고등학교 교사인 나의 이력이 자아내는 궁금 중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지도 않고 마케팅 회사에서 실무를 쌓은 건 더더욱 아닌 내가 어쩌다 교사를 하다 그만두고 마케팅 사업을 하게 되었는지 내가 청자여도 궁금할 거다. 처음부터 마케팅 사업을 한 건 아니다. 산삼 농장에서 산양삼을 구해다 인터넷 쇼핑몰에 파는 일부터 시작했다. 산양삼 외에 여러 물품을 판매하면서 마케팅의 필요성을 느꼈고 자칭 마케팅 전문가에게 피 같은 돈을 주고 마케팅을 맡겼다. 그때 맡긴 마케팅이 효과를 봤다면 지금도 산양삼을 팔고 있지 않을까? 나에게 마케팅 전문가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그들은 돈만 챙기고 서서히 연락 두절되었다. 지금은 사정이 조금 나아졌지만 10년이 넘은 그 당시만 해도 온라인 마케팅 바닥에는 정말이지 사기꾼이 득실거렸다.
문득 정직하지 못한 업자들 틈에서 최소한의 신의만 지켜도 밥벌이는 하겠지 싶었다. 최소한의 신의를 넘어 마케터로서의 품위를 갖추면 이 분야에서 꽤 성공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마케터로서의 품위를 갖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내가 찾은 답은 ‘교양’이다.
교양(敎養)
1. 가르치어 기름
2.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웃길 때 웃는 건 가르치지 않아도 다 하는 본능이다. 굳이 기를 필요도 없다. 하지만 먹은 후에 설거지하고 잠 잔 후에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것. 별로 웃기지 않아도 상대를 배려해 밝게 웃는 건 끊임없이 가르쳐야 형성되는 습관이고 길러야 하는 교양이다. 본능적 욕구를 실현할 때 인간은 행복을 느끼지만 그 행복이 지속되려면 반드시 교양이 필요하다.
사업가로서 돈을 벌고 싶은 본능은 당연하지만 당장에 돈 버는 일에만 급급하지 않고 교양 있는 사업가가 되고 싶었다. 제때에 약속한 일을 모두 끝마치는 최소한의 신의를 넘어서서 고객이 가진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같이 고민하고 고객의 욕구 실현을 위해 기꺼이 양보할 줄도 아는 여유를 갖길 원했다.
마이클 르뵈프의 <절대 실패하지 않는 비즈니스의 비밀>에서는 의류 판매 직원인 ‘프레드’에 대해 소개한다. 그는 고객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다. 그런 다음 고객에게 어떤 옷이 필요할지 진지하게 고민한 후 적당한 옷이 자신의 매장에 없을 경우에는 경쟁사의 제품을 추천하기도 한다. 고객이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고가의 양복을 사려고 하면, 2주 후에 할인할 예정이니 급하지 않으면 그때 구매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할 정도로 고객을 배려한다. 프레드는 이런 행동으로 자신의 실적을 당장에 올리지는 못하지만 고객의 문제를 진심을 다해 해결하면서 충성 고객을 확보한다.
책에서 얻은 힌트를 바탕으로 고객을 대했다. 그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같이 고심했다. 그들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고객은 나의 열의를 알아줬고 마케팅 성과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고객과의 만남은 본능과 본능의 교차점에서 교양과 교양의 교차점으로 발전해 갔다. 업자와 업자의 만남이 아니라 사업 파트너가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의 일터는 더욱더 진심이 통하는 현장이 되었고 내 일에 대한 자부심도 같이 자라났다.
형사 장해준의 품위는 일에 대한 자부심에 근거한다. 품위를 잃은 장해준은 서둘러 시들어갔다.
외모가 박해일처럼 준수하지 않아도, 목소리가 중후하지 않아도 괜찮다. 교양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우리도 품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부디 당신과 나는 붕괴되지 않길 바란다.
재미를 상실한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고 라잇킷까지 눌러준다면 당신은 무조건 품위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하하하.
*배경출처: 영화 '헤어질 결심'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