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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민경 Oct 12. 2021

결혼식이 없는 해

이상하다... 다들 결혼한거야?

코로나의 여파인지 아니면 이제 갈만한 사람들은 다 간 건지 올해엔 청첩장을 한 장도 받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결혼식이 한 번도 없는 해는 올해가 처음이었다. 장례라면 두 번 있었다. 지인과 회사 직원의 조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이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참석은 못했다. 부조만 하고 괜히 씁쓸한 마음에 넋을 빼고 있다가 문득 이제는 결혼 소식보다 부고를 많이 들을 나이인가 싶어 은근하게 놀랐다. 


결혼 적령기가 점차 미뤄지고는 있다고 해도 동창부터 동기, 아는 동생, 후배 할 것 없이 이십 대 후반부터 부지런히 결혼 소식을 알려왔는데 신기하게도 나랑 가장 친한 친구들은 아직 아무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서른다섯을 목전에 둔 이 타이밍에 미혼 동지들이 곁에 있다는 건 참으로 든든한 일이다. 성격도 취향도 직군도 제각각이라 만나면 할 얘기야 무궁무진하지만 각자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보니 결국 말미에는 결혼 얘기가 터져 나온다. 


비혼주의자 J에겐 스스럼없이 결혼 계획을 물어오는 모두가 무뢰한이다. J의 가까운 주변인들은 그녀의 비혼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자고로 결혼이란 그래도 태어나서 한 번쯤은 거쳐가야 하는, 진정한 어른이 되는 어떤 자격이라고 여기는 집안 어른들(특히 그중에서도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친척 어르신들)은 J를 볼 때마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모양이다. 그래서 J는 명절만 되면 호텔을 잡아 피신한다. 참 현명한 친구다. 


이제 연애 10년 차인 P는 대부분의 데이트를 남자 친구의 집에서 그들의 가족과 보낼 만큼 사이가 돈독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결혼에 대해서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다. 뭐, 할 때 되면 하겠지. 안 하면 더 좋고. 이런 식이랄까. 그래도 그렇게 가족들과 친하게 지내면 얘기가 자주 나오지 않느냐고 물으니 딱히 그렇지도 않단다. 어차피 이 사람이랑 할 텐데 굳이 빨리 하면 뭐하나, 연애가 훨씬 재밌지. 이런 생각인 듯하다. 


지난달에 남자 친구가 생긴 R은 연애 한 달 만에 맞이한 명절에 이미 남자 친구 집으로 소고기를 보냈다. 대학 동기인 그녀는 20살 때부터 애를 왕창 낳고 싶어 했다. 아이가 너무 좋다고, 만약 결혼을 못한다면 정자를 기증받아서 아이를 키우면서 살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오랜 솔로 끝에 남자 친구가 생긴 지금, R은 아주 빠른 속도로 결혼을 향해 돌진 중이다. 이번 달엔 커플링을 맞추러 간단다. 이러다가 결혼 전에 조카 소식을 먼저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로 말하자면 이제 연애 4년 차. 그럼에도 모든 게 불투명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남자 친구와 나는 잘 맞는 부분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너무나 다른 사람이고 싸우기도 자주 싸운다. 나는 그의 무던함에 상처 받고 그는 나의 예민함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둘 다 싸움이라는 형태로 애정을 확인하는 변태이거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얘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싶다. 그래서 나는 내 연애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흥미롭게 관전 중이다. M의 연애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나조차도 너무나 궁금하다.


혼자일 때보다 좋으려고 하는 게 결혼인데 내 주변엔 당최 결혼 바이럴이 되는 사람이 없다. 인터넷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기기괴괴한 시월드 괴담이 올라온다. 어마 무시한 이혼율도 무시 못한다. 이렇게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결혼이라는 제도는 비합리적이고 이상하다. 그럼에도 하나둘씩 아이의 사진으로 프사를 바꿔나가는 이제는 엄마가 된 친구들을 보면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결혼만이 줄 수 있는 행복의 세계가 분명히 있는 것도 같다. 이 사람이라고 확신을 얻는 것. 그로 인해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 자신보다 소중한 존재가 생긴다는 것. 나에게는 모두 상상만으로도 벅차고 찬란한 일이다. 




아침에 업무 계획을 세우고 나면 빨리 끝낼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편이다. 되도록 자잘한 일은 오전 중에 끝내고 엉덩력이 필요한 일은 오후에 진득이 진행한다. 어쩌면 결혼이라는 것은 서른넷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랫동안 보류해 놓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 몰라 몰라. 결혼은 나 혼자 하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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