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꾸는 '똑딱이의 꿈'
지금 당장 떠나야 한다면
떠날 수 있다면
누구와 함께하시겠어요?
자, 만약 지금 여러분이 당장 카메라 한 대 들고 한 달쯤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면? 그림 같은 몰디브 해변이나 24시간 전부를 보내도 지루하지 않은 환상적인 우유니 사막 혹은 종일 걸어야 하는 지구 어딘가의 오지 탐험이 될 수도 있고요. 생각만 해도 짜릿한 여행 앞에 고민거리가 하나 던져집니다. '특별한 그 여행을 무엇으로 담아야 할까?'라고요. 사랑하는 dslr 카메라를 떠올리지만 몸이 너무 힘들 것 같고, 그렇다고 스마트폰이나 콤팩트 카메라는 다녀와서 후회할 것 같고요.
이러한 고민에 최근 몇 년간 많은 사람들이 공통된 결론을 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바로 이 기적 같은 콤팩트 카메라가 등장한 후부터 말이죠. 현대 디지털 카메라의 트렌드인 '소형화&고화질'을 현재까지 가장 세련된 형태로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소니의 RX100 시리즈입니다.
당시에는 일반적이지 않던 1" 이미지 센서를 탑재하고, Zeiss의 고품질 줌렌즈를 놀라울 정도로 작은 크기로 욱여넣으면서 주목을 끈 이 카메라에 대한 초반 평은 엇갈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볍게 찍을 콤팩트 카메라기엔 너무 비싸고, 미러리스나 dslr카메라보다는 어딘가 부족한 '애매함'때문에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작은 카메라가 크기보다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실제로 결과물도 썩 괜찮았죠.
작은 크기에 훌륭한 화질. 굉장히 마니악한 카메라라고 생각했던 이 RX100 시리즈는 단일 시리즈로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카메라가 되었습니다. 특히 여성들에게 대단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지인들에게 빼놓지 않고 추천하는 시리즈이기도 하고요. -제대로 써 본 적도 없으면서- 기존 카메라들을 바라보는 잣대로는 규정하기 힘든 새로운 형태였지만 확실히 좋은 제품은 어떻게든 인정을 받나 봅니다.
2012년 등장 이래 '똑딱이의 꿈'이라 불리며 역사상 가장 성공한 콤팩트 카메라 시리즈로 기록된 소니 RX100 시리즈. 부지런한 소니답게 해마다 꼬박꼬박 신제품이 나와 벌써 네 번째 제품이 나왔습니다. 오늘은 이 RX100 IV를 간단히 소개해볼까 해요. -역시나 우리는 사진보다는 사진기에 관심이 있으니까요.-
RX100 시리즈에서 주목할 점은 소니의 어떤 카메라 시리즈보다 새로운 기능의 도입과 성능 향상 속도가 빠르다는 점인데요, Wi-Fi와 틸트 LCD가 채용된 M2, 새로운 렌즈와 팝업식 뷰파인더를 선보인 M3 기존 사용자들도 해마다 재구매를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죠. 그래서인지 후속 제품이 나올 때마다 가격 역시 올라가고 있습니다. 마침내 네 번째 RX100 IV에서는 백만 원을 돌파했네요. 그래서 이젠 이 카메라를 주변에 자신 있게 추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똑딱이에 백만 원이라뇨-
사진은 RX100 IV의 패키지. 역시 그냥 똑딱이 카메라예요.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는.
보증서와 박스 내부, 그리고 구성품의 사진입니다.
새 카메라의 패키지를 열어보는 건 제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 중의 하나입니다,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는 것 못지 않은. 그런 면에서 이 카메라 패키지는 확실히 재미없어요. 그냥 차곡차곡 챙겨줬을 뿐입니다.
요즘 카메라들이 실속을 강조해서인지 예전처럼 상자 여는 즐거움이 많이 줄어 아쉽습니다.
-혹 제가 감흥을 잃었던지요-
외관에서도 별로 놀라울 것 없죠. 기능/성능 변화에 따라 매 제품 외모 변신을 거듭해왔지만 이번 네 번째 시리즈는 외형의 변화가 없습니다. 전작의 기본 틀을 유지한 채 속도나 내부 기능/성능을 끌어올린 버전이라서요. 많은 분들이 RX100 III를 '완성형'이라 표현하셨는데, 소니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얼굴은 이 정도면 됐어!라는 걸까요-
하긴 이제 적어도 겉에서는 이 카메라를 흠잡을 곳이 없으니까요. 크기는 놀라울 정도로 작은데다 180도 돌아가는 화면으로는 셀프 촬영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꽤나 그럴듯한 뷰파인더까지 있거든요. 모드 다이얼과 후면의 빼곡한 버튼 등 RX 시리즈의 콘셉트에 맞게 외부 인터페이스 역시 일반 콤팩트 카메라와 차별화되는 다른 상위 인터페이스를 채용했습니다.
크기만 보고 조금 크고 비싼 콤팩트 카메라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화질이나 성능 등에서 철저하게 차등을 두며 체급별, 가격별로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는 소니의 A 라인업과 달리 RX 시리즈만큼은 그 하나로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지향 는 확실한 콘셉트로 출시가 되고 있거든요. 적어도 이 RX 시리즈에 있어서만큼은 사양을 아끼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중 백미는 역시 이 렌즈입니다. 135 포맷 카메라 기준 24-70mm의 표준 줌 렌즈이면서 수납 시 놀랄 정도로 부피가 작거든요. 게다가 조리개는 f1.8까지 개방이 가능합니다. RX100 IV를 포함해 RX10, RX1 시리즈까지 모든 RX 시리즈의 핵심은 바로 이 Zeiss 렌즈입니다. 미러리스 카메라 부럽지 않은 이미지를 종종 뱉어내는 1" 이미지 센서가 없었다면 이 카메라는 그저 비싼 똑딱이 카메라로 전락했겠지만, 그렇다 해도 이 렌즈보다 앞에 둘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RX100 시리즈의 평가는 세 번째 제품인 RX100 III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기존의 24-100mm F1.8-4.9 렌즈가 24-70mm F1.8-2.8로 변경되면서, 초점거리 폭은 줄었지만 밝은 조리개 값으로 이미지 품질은 더욱 향상되었거든요. RX100과 RX100 II에서 이미 '충분하다'는 호평을 받은 1" 이미지센서에 렌즈의 최적화가 더해지면서 '완성형'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죠.
RX100 IV에도 동일한 Zeiss Vario-Sonnar T* 24-70mm F1.8-2.8 렌즈가 탑재되었습니다. 빛이 부족한 실내, 야간 촬영에도 흔들림이 적은 F1.8 개방 촬영은 70mm 망원에서도 F2.8로 밝은 조리개 값을 유지하고 있어 기존 콤팩트 카메라들에 가졌던 불만인 어둠에서의 아쉬움을 상당 부분 해소하고 있습니다. 렌즈를 보다 보니 이 작은 렌즈에 이 정도의 고성능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특히나 전원을 끄고 렌즈가 본체 속으로 쏙 들어간 후의 이 콤팩트함이란.
렌즈와 함께 이 카메라를 지탱하는 가장 큰 장점을 꼽는다면 크기와 무게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상대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기존의 익숙한 콤팩트 카메라들에 비해 RX100 IV은 분명히 크고 무겁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용자들이 이 카메라를 구매할 때 동일 선상에 넣고 비교하게 되는 경쟁 제품보다는 월등히 작고 가볍죠. 물론 몇몇 요소에서 분명 부족함이 있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DSLR/미러리스 카메라와 RX100 시리즈를 두고 고민하는 것을 보면 이 카메라가 화질과 휴대성 사이에서 꽤 합리적인 해답을 찾았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쥐어보면 작은 크기에도 꽤나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거든요. 패키지는 실망스러웠지만 카메라 자체는 꽤 고급스럽습니다. 백만 원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확실히 비싸 보여요.
외형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단연 이 팝업식 뷰파인더입니다. 카메라 옆구리의 레버를 통해 '탁'하고 올라오는 이 전자식 파인더는 밝은 낮이면 잘 보이지 않는 LCD를 대신하면서, 작은 카메라에 그럭저럭 '찍는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존재 자체로 신기하고 고마운 파인더인데, 쓰다 보면 크기나 밝기도 기대 이상으로 괜찮습니다. 비슷한 구조, 크기의 전자식 파인더를 몇 번 경험해 보았는데 그중에선 처음 눈을 대는 순간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으니까요.
이 외에도 셀프 촬영이 가능한 틸트 LCD와 Wi-Fi 무선 공유의 장점이 있습니다만, 셀프 촬영을 하지 않고 이미지 보정을 필수록 생각하는 아저씨에겐 크게 매력적인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RX100 IV의 간단한 사양을 살펴볼까요?
- 2010만 화소 1" Exmor RS CMOS 이미지센서
- 24-70mm F1.8-2.8 Zeiss Vario-Sonnar T* 렌즈
- 4K (3840 x 2160) 동영상 촬영
- 16 fps 초고속 연사
- 최대 960 fps 슬로우 모션 촬영
- 1/32000 - 30초 셔터 속도
- ISO 125 - 25600
- 5cm 접사
- 3인치 129만 화소 틸트 LCD
- 236만 화소 팝업식 뷰파인더
- Wi-Fi 무선통신
- 101.6 x 58.1 x 41.0 mm
- 271g
2000만 화소의 이미지 센서, Zeiss 렌즈, 4K 동영상 촬영 등이 가장 눈에 띄네요. 역시 소니의 최신 카메라다운 고사양입니다. 하지만 RX100 III를 떠올려보면 큰 변화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화소가 비슷하고 렌즈는 같으며 감도와 접사 LCD와 뷰파인더, Wi-Fi 무선 통신 등의 촬영 기능/편의 장치가 대부분 같기 때문이죠. 디자인이 동일해 겉으로 보기엔 같은 제품으로 보이는 것 역시 그렇습니다.
제조사에서 발표한 RX100 IV의 가장 큰 장점은 RX100 III에 비약적으로 향상된 '속도'입니다. 이미지 처리 속도가 향상된 Exmor RS CMOS 이미지 센서를 탑재해 기존보다 촬영 속도가 크게 향상됐다는 것인데요, 초당 16장을 찍을 수 있는 고속 연사와 16배 슬로우무비 960 fps 동영상, 4K 동영상 촬영 등이 그 변화입니다. 외형에서, 그리고 한 컷 한 컷 사진을 찍을 때는 쉬이 느낄 수 없는 이런 개선점들이 그동안 이 카메라에 열광했던 일부 라이트 유저들에게는 크게 유용하지 않은 기능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역대 RX100 시리즈 중 가장 매력적이지 않은 신제품, '옆그레이드'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고속촬영 기능을 활용하는 분들에겐 이 가격이 아깝지 않은 카메라일 것입니다. -성능이 향상된 아이폰 S 버전 정도로 비유하면 적절할까요?-
아쉽게도 저는 전자 쪽이라, 이 카메라의 '속도'를 아직 즐기고 있지 못하지만, 일부러라도 한 번 체험해보려 합니다. 오늘은 우선 첫 만남이니 이 정도로 하고요.
마지막으로 아래는 RX100 IV로 찍어본 샘플 이미지 몇 장입니다.
이미지는 보정을 하지 않은 원본 이미지이며, 카메라 내부의 컬러 설정을 변경하며 촬영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촬영한 이미지들을 보니 그렇습니다. 무엇이 이 시리즈를 그토록 사랑받게 했는지요. DSLR, 미러리스 카메라에 탑재된 이미지센서보다 작은 것은 여전하지만 렌즈 성능과 이미지 처리 성능 개선으로 일반적인 사용자들의 눈엔 충분한 결과물을 안겨주는 것이 이 RX100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그리고 RX100 IV는 잘 다져진 기본 틀에 경쟁 제품들보다 우월한 '속도'를 더해 확실하게 돋보일 요소들을 갖췄습니다. 그래서 RX100 III이 출시되었을 때보다 더욱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들보다 더 좋은 화질은 아닙니다. 이미지를 확대해 보면 금방 그 차이를 알 수 있죠. 하지만 이 카메라를 사용하며 우리는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하게 됩니다. '굳이 이 이상이 필요한가?' 대부분의 경우 대답은 '굳이...'나 '이 정도면'이 될 것입니다. 대형 인화나 상업 용도의 고품질 이미지가 필요한 상황이 아닌 일상 그리고 여행에서 RX100 IV의 이미지 품질은 충분 혹은 그 이상이니까요. 게다가 비교할 수 없이 작고 가벼우니 화질 때문에 다른 카메라에 욕심이 나다가도 마음이 자꾸 부릅니다.
RX100 IV의 이미지는 재킷 주머니에서 꺼낸 카메라의 그것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좋습니다. 게다가 아직 이 카메라의 하이라이트인 '속도'는 제대로 겪어보기도 전이죠. 특히나 960 fps의 슬로우 무비 촬영이 기대가 됩니다. 아이폰의 슬로우 무비가 최대 240 fps이니 그 성능에 더욱 궁금증이 생기거든요.
올 여름엔 이 카메라와 즐거운 여행을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 이 카메라의 진가를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그 후에 다시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저처럼 '사진보다 카메라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요.
RX100 IV, 첫 만남은 이 정도면 충분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