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모든 감동, 그 시작은 이곳이다
멈추지 않는 모스크바의 심장
붉은 광장 (красный квадрат)을 만나러
포털 사이트에 이름만 치면 열 시간을 비행기 타고 숙소에서 하루를 보낸 다음에 직접 눈으로 보는 것보다 오히려 더 멋지고 선명하게, 그리고 편안히 감상할 수 있는 -맑은 날이 드문 러시아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뻔한 관광지는 가급적 빼자는 것이 제 여행 계획의 큰 방향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에 왔는데 이 곳을 가지 않을 수는 없죠. 모스크바의 중심이자 러시아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인 '붉은 광장'에 다녀온 날은 다름 아닌 러시아의 크리스마스 1월 7일이었습니다.
-위키백과 펌-
'붉은 광장'은 말 그대로 붉은 건물이 많아 붉은 색의 광장이기도 하지만, 본래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얼마나 자신이 있길래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 우리나라로 치면 딸 이름을 '김예쁜'으로 짓거나 거리 이름을 '아름다운 거리'로 짓는 정도의 패기인데요, 일찍이 이 광장을 러시아의 랜드마크로 만들 계획이 있었던지 성 바실리 대성당이 있던 위치에 크렘린 궁과 모스크바 최대의 백화점 굼, 역사 박물관까지 집중 건설(?) 한 것이 놀랍습니다. 이에 구소련의 '정신'인 블라디미르 레닌의 묘까지 한 곳에 모여 있으니 그야말로 러시아의 정치, 역사, 문화, 상업을 아우르는 중심 of the 중심이 아닐 수 없죠.
제가 붉은 광장을 처음 만난 날이자 러시아의 2015년 크리스마스였던 이 1월 7일은 이번 겨울 가장 추웠던 '심히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이 날 아침 기온이 영하 25도 정도로 기억하는데요, 영하 3,40도까지 내려간다는 지인들의 놀림(?)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곳 특유의 칼바람과 찬 공기 때문에 체감 온도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 수준이었습니다.
- 후에 들어보니 올해 모스크바의 겨울은 평년 대비 '온화했다고' 하네요, 아니 대체 어디가? -
저는 이 사진을 보면 아직도 그 날의 추워가 생생히 떠오릅니다.
더우면 나도 모르게 땀이 흐르듯, 추우면 인지할 수 없는 콧물이 흐른다는 것을
아르바트 거리를 지나 붉은 광장까지 걷는 길에도 모스크바만의 보석 같은 거리 풍경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역시 예술로 전성기를 누렸던 민족답게, 게다가 땅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가진 덕분에 거리 곳곳에 저런 예술 작품들이 넘쳐 나니 말이죠.
문득 모스크바 현대 건축의 예술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전철역 역시 '차마 대강 만들지 못하고 예술혼이 터져 나와 버린'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봅니다.
유럽부터 이란(옛 페르시아), 아시아까지 다양한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인 러시아의 건축 양식은 그만큼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그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요, 러시아 골목 풍경이 제가 방문했던 국가들은 물론이고 사진으로 봐왔던 유럽의 거리 풍경과도 다른 '특별'한 느낌을 줬던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게다가 세계 지도에서 '돌기' 정도로 표시되는 작은 나라에서 온 제게는 이 곳의 건축물들의 규모가 이상하리만치 다들 거대했으니까요.
아르바트에서 붉은 광장으로 가는 길은 지도상으로는 크게 멀지 않았지만 -쉬엄쉬엄 걸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추운 날씨에 휴대폰이 꺼지기를 몇 번, 지도 없는 여행객의 방황 수십 분을 거치고 나니 어느 덧 점심 때가 지나서야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빨간 성벽(?)이 보이며 '자 이제 드디어 붉은 광장이다, 유후'라며 입구를 찾던 제 눈을, 걸음을 이 풍경이 막아섰는데요. 광장 앞 이 수 많은 인파는 성탄절을 맞아 성당에 예배를 드리러 온 시민들입니다.
광화문 광장 시복식처럼 광장 바닥(?)에서 예배를 드리는 거야? 교통 정리를 위해 괜히 한국보다 몇 배는 무서운 러시아 경찰들이 곳곳을 지키고 있고, 족히 200미터는 넘어 보이는 광장 앞의 줄을 보며
아, 크리스마스에는 붉은 광장에 이렇게 줄을 서서 들어가는 건가?
내가 줄을 설 수 있을까, 모피도 안 입었는데?
그래, 러시아 크리스마스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야!
그러다 은혜를 받아버리면 어떡하지, 난 한국에 가야 하는데..
아니, 다 모르겠고 없고 지금 영하 30도라고
짧은 시간 동안 목적지 앞에서 많은 고민을 하다 넘치는 콧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른 길을 찾기로 결정합니다. -분명 길은 있을 것이다- 마침 추위를 이겨내고 잠시 전원이 들어온 아이폰이 돌아가는 길을 친절히 알려주고 나서, 다시 잠에 듭니다.
10박 12일의 여행 동안 가장 힘들었고, 조금이나마 이 여행에 대한 회의가 들었던 순간이 있었냐고 물으신다면, 바로 이 영하 30도의 크리스마스 산책뿐이었노라고 답하겠습니다.
크렘린 성이 얼마나 컸는지 누구보다 생생하게 실감하면서, 언젠간 입구가 나오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걷던 약 30분의 산책(?)은 지금까지도, 영하 30도의 이 the coldest day에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으며, 돌이켜보면 처음으로 제 건강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들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 혹시 지름길을 아신다고 해도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
하지만 저의 이 엄살과는 달리 오늘도, 언제나 평화로운 러시아에서는 이 평화로운 도로를 따라 강아지와 산책하는 시민들을 종종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를 가장 먼저 맞아준 것이 바로 이 성 바실리 대성당입니다. 붉은 광장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면서 모스크바, 그리고 러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성당은 러시아 정교회 성당으로 16세기, 약 500여 년 전 지어졌다고 하네요. 러시아와 비잔틴 건축 양식이 융합된 독특한 건축물로 양파(?) 모양의 탑이 정말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아마 여러분들 눈에도 어딘가 낯이 익으실 건데요,
이렇게 붉은 광장의 동쪽에 위치한 성 바실리 대성당을 통해 붉은 광장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휴우- 이 아름다운 건축물의 사진은 아무리 올려도, 수 없이 보아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내가 너를 보러 얼마나 먼 길을 왔는데!
모스크바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건축물이었던 성 바실리 대성당 앞에선 잠시 영하 30도의 추위도 잊었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 건축물 앞에 드디어 섰다는 감격에 연신 카메라로 똑같은 듯 다른 사진을 수십 장 찍고, 한창 저녁 시간인 한국의 지인들에게 실시간으로 사진도 찍어 보내다가, 마침 눈 마주친 금발의 관광객 모 씨와 서로 기념 사진도 찍어줍니다. 짧은 인사 'Have a nice day', 그 사진은 이번 여행의 제 유일한 관광 기념 사진이 되었습니다. 날씨는 무척 추웠지만 -아니 무척이란 말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날은 사진에서처럼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맑은 날이었으며, 제 여행기간 중 만난 단 이틀의 Sunny days 중 하루였습니다. 그래도 꿈꿔온 붉은 광장에 온 날, 그것도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화창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추억해 봅니다. 역시 이래서 이렇게 멀리까지 직접 보러 오나 봐요? X-D
성 바실리 성당과 찐한 첫인사를 나누고 나서 들어선 붉은 광장 동서남북으로 들어선 으리으리 멋진 건물들을 보니 분명히 여기가 붉은 광장이 맞는데 제가 생각한 그런 광장 분위기가 아닙니다
연말 연시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붉은 광장에 대형 스케이트장 및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선 건데요, 이 넓은 광장의 절반 가까운 면적이 시민들을 위한 스케이트장이 되어 있습니다. 붉은 광장과 모스크바 내의 공원, 호수 등에 조성된 수 많은 스케이트장을 보며 '하긴 이런 날씨에는 물만 뿌려놓으면 금방 스케이트 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시청 광장 앞의 스케이트장 생각도 나고요.
모스크바의 랜드마크에, 그것도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크렘린 궁 바로 앞에 시민들을 위한 스케이트장과 마켓은 제가 그동안 러시아에 대해 가졌던 고정관념을 많이 사그라들게 해 주었습니다. 감상은 잠시, '아, 블로그에서 본 적 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일 년 중 이 짧은 겨울 시즌에만 볼 수 있는 붉은 광장의 크리스마스 풍경에 애써 젖어보려 하지만
이런 광장을 기대하고 왔건만
제가 기대했던 이 웅장한 광장과 다르게 이 크리스마스 풍경은 너무 큐트&러블리입니다.
제 여행 기간이었던 1월 첫주는 1월 7일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이 붉은 광장은 물론 모스크바 전역이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방문한 날이 성탄절 당일이었으니 더더욱 이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른 거죠. 이 넓은 광장을 채운 수 많은 가족과 연인, 친구들의 표정은 이 곳이 마치 러시아 속의 다른 나라인 듯 밝았고 동화 속에 있는 듯한 크리스마스 마켓은 함성과 웃음 소리로 시끌벅적했습니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러시아 풍경을 상상하고 온 저에겐 이 사랑스러움이 참 낯설기도 했어요.
뭐, 생각했던 붉은 광장의 위용(?)은 아니었지만, 일 년 중 붉은 광장이 가장 행복한 이 날 제가 이 곳에 있었던 것도 참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큰 백화점인 금 백화점은 19세기 지어진 국영 상점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Gosudarstvenny Universalny Magazin)
그리고 러시아 혁명이 끝난 1953년부터는 국영 백화점으로 운영되었다고 하는데요, 현재는 민영화되었지만 상징적인 이름은 그대로 사용하고 있죠. 고급스러움이 풍기는 외관에 커다란 건물 세 개가 연결된 압도적인 규모, 내부 장식까지 과거 명품만을 팔던 고급 상점의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공산주의 시대에 운영되었던 백화점 답게, 현재는 내부가 많이 개조되었지만 내부 인테리어와 상점의 모양, 크기가 인위적일 정도로 균일하고 공평(?)합니다.
러시아 건축물의 멋을 느낄 수 있는 건물임과 동시에 붉은 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 못지 않은 화려한 크리스마스 파티(?)가 손님을 반기는 곳이기도 하죠. 이 군 백화점 탐방기(?)는 따로 포스팅하겠습니다.
붉은 광장의 서쪽에 그야말로 이 '붉은' 광장에서 가장 '붉은' 건물이 모스크바 역사 박물관입니다. 마치 변신 로봇의 머리로 변신할 듯한(?) 절도 있는 외관에 가장 최근에 지어진 듯 외관에서 풍기는 '광채'가 눈길을 끌었던 곳이었습니다. 짧은 여행 기간에 굳이 러시아 역사를 봐야 할까라는 생각에 방문은 하지 않고 이렇게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게다가 여기 맑은 날이 얼마나 된다고 이런 날 저기를- 이 건물 너머로는 또 하나의 광장인 마네쥐(Манеж) 광장이 있습니다.
이 넓은 광장, 모스크바 그리고 러시아의 랜드마크인 붉은 광장에 역사 박물관이 있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이들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백화점 바로 옆에 역사 박물관이 있다는 것이 새삼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그 사이에는 성당이 있고요. 붉은 광장에는 참 이것저것 다 있습니다.
역사 박물관과 금 백화점 사이의 이 아담한(?) 건물이 카잔 성모 성당입니다. 건물 자체로는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상대적으로 양 옆의 금 백화점과 역사 박물관이 워낙 남다른 위용을 자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데요 -그래서 저도 지금 검색해보고 알았습니다- 마침 이 날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쉴 새 없이 많은 시민들이 예배를 위해 성당을 찾는 모습이었습니다. 설마 아까 저를 돌려세웠던 그 끝 없는 인파가 이 성당을 찾은 것이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그 많은 분들이 다 어디 가셨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붉은 광장 남쪽, 그러니까 군 백화점 건너편은 러시아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크렘린 궁전이 있습니다. 러시아 하면 누구나 떠올릴 푸틴 대통령이 이 곳에 머문다는 거군요.
사실 이 크렘린 궁전은 이 붉은 광장에 오는 길에 지겹게 보기도 했고 -성 따라 걸어왔으니까요-
들어가 볼 생각도 들지 않아서 사진이 많지 않습니다. 모스크바의 짧은 겨울해가 지기 전 남긴 저 풍경이 유일하네요. 크렘린 궁전의 일부 구역과 레닌의 묘는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이번 겨울 중 가장 추운 이 날 -그런데 나는 왜 대체 이 날 여기 있는가- 에도 붉은 광장에서는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모스크바인들이 이 크리스마스를 보낼 모든 방법들이 이 곳에 다 있으니까요.
아침부터 추운 날씨에도 예배를 드리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있고, 광장에 마련된 스케이트장과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족과 연인들은 당연히 모이기 마련이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위해 군 백화점도 붐빌 테니까요. 게다가 저처럼 모스크바 크리스마스 풍경을 찾아 온 관광객도 더해질 테니 이 곳이 이 기간 내내 붐비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붉은 광장을 다시 찾은 것은 재미있게도 바로 다음 날 저녁이었습니다. 갤러리를 찾아 사진전을 감상한 후, 무작정 강을 따라 맘에 드는 풍경을 따라 걷던 길에서 익숙한 풍경을 발견한 건데요, 서울보다 약 4배나 큰 모스크바지만 막상 걷다 보니 '거기가 거기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행 끝날 때쯤 되니 광화문-종로-명동-시청 돌듯 자연스러워지더군요- 해가 진 후의 붉은 광장 풍경은 어떤가요? 굼 백화점 전체를 두른 조명 장식이 사치스럽고 아름답지만, 조명 색 때문인지 눈발 때문인지 저는 낮에 본 풍경보다 어딘가 슬퍼 보였습니다.
이 커다란 금 백화점을 빈 틈 없이 두른 저 조명 장식 때문에 붉은 광장은 밤에 더욱 화려하게 빛납니다.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참 잘 이용했다는 생각과 참으로 사치스럽구나 라는 생각이 교차합니다.
전날만 해도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이었는데, 이 날 밤은 그동안 참았던 눈발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듯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폭설이 내렸습니다. 지금 모스크바의 겨울 풍경을 떠올리면 폭설 속에서 이 굼 백화점을 바라보던 날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저에겐 가장 모스크바 다운 풍경이에요.
여행 전의 저처럼 러시아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분들도 이 붉은 광장, 혹은 크렘린 궁의 이름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만큼 이 광장은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이름 그대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곳이자, 모스크바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외형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를 가진 성 바실리 대성당과 현재 러시아를 지탱하는 크렘린 궁, 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굼 백화점 등 '실세'이기도 하구요.
현재도, 앞으로도 많은 분들의 모스크바, 그리고 러시아 여행 계획 리스트 첫 번째에 씌여질 이름 붉은 광장, 기대 만큼이나 아름다운 건축물이 주는 감동, 러시아의 중심에 와 있다는 감격,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러시아만의 감상이 모두 있는 곳입니다.
단 하루만 러시아를 여행할 수 있다면, 아마 그 하루를 보내게 될 곳은 주저 없이 바로 이 붉은 광장이 되겠죠. 많은 분들을 통해 본 붉은 광장과는 달랐지만, 이 광장이 가장 화려해지는 크리스마스 풍경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제 머릿속 '모스크바 scene'으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