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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Sep 03. 2015

19장. 모스크바 최대 쇼핑타운 유러피안몰

역시 그들은 유러피안을 동경했던걸까?

모스크바 속의 작은 유럽

모스크바 최대 쇼핑몰 Европейский



해외 여행, 특히나 국내와 멀리 떨어진 유럽으로의 여행은 건축물과 예술품 등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이해하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신선한 충격, 그리고 감동 역시 한반도와는 역사, 문화적으로 그 접점이 거의 전무한 특성 때문에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거에 이뤘던 업적 못지 않게 그 나라, 도시의 사람들이 현재 살아가는 모습 역시 중요한 여행의 주제이며 사람에 따라선 과거의 발자취보다 더욱 큰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여행 일주일 째, 붉은 광장과 노보데비치 수도원 등 찬란했던 러시아 제국을 상징하는 주요 '관광지' 혹은 '유적지'를 둘러보고 나니 점점 지금 내가 있는 현재 모스크바의 모습들에 주목하게 됩니다. 나, 그리고 한국과 다른 것들만 찾아다녔던 여행에서 이제 닮은 점들을 찾기 시작한거죠. 모스크바 최대의 쇼핑몰이자 아직까지도 생소한 이름의 이 유러피안몰 (Европейский, 이브로비이스키)을 이틀에 한 번 꼴로 찾게된 것도 그런 맥락이겠죠. Европейский는 말 그대로 'European'입니다. 유럽 스타일의 쇼핑몰인지, 유럽 브랜드들을 모아놓은, 혹은 유럽 사람처럼 되기 위한 쇼핑몰을 뜻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 쇼핑몰은 단일 건물로서는 모스크바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자 가장 현대적인 스타일의 종합 쇼핑타운입니다.



Европейский - 편의상 유러피안몰이라고 하겠습니다- 은 지하철과 러시아 철도가 만나는 키에브스카야 (Киевская)역 맞은편에 있는 대형 쇼핑몰로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에 수백개의 의류, 잡화 매장과 카페, 레스토랑이 몰린 대규모 단지가 역시 러시아다운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굼 백화점과 쭘 등이 러시아 전통 양식의 전통 건축물에 고급 브랜드 위주의 현대 상점의 모습을 구성한 반면, 이 유러피안 몰은 외관부터 철저하게 현대 대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형태를 하고 있으며, 내부 입점된 매장 역시 자라와 H&M. 탑맨 등의 글로벌 스파 브랜드와 GAP, 캘빈클라인, 나이키 등 해외 유명 브랜드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곳이 철저하게 현대 모스크바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스타일은 러시아만의 특성이 거의 전무한 '글로벌 트렌드를 쫓는 러시아'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죠. 효율을 최우선하는 현대인의 삶이 이 곳 러시아에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나 큰 형태로 나타난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타까워지기도 했습니다, 이 곳의 일주일 동안 늘 수백년 된 건축물들과 그 안의 예술작품들만을 봐왔던 저로서는 더욱 그랬었죠.


유러피안몰의 야경, 그리고 건너편으로 보이는 키에브스카야 기차역


http://europe-tc.ru

하지만 제 이런 오지랖과는 상관 없이 이 유러피안몰은 현재 모스크바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나 러시아 전역에서 모스크바로 통하는 러시아 철도 키에브스카야역과 지하철역이 인접해있어 쇼핑몰 내/외부가 언제나 사람으로 가득합니다. 우수한 접근성과 어마어마한 규모, 현재 모스크비치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모두 갖춘 이 곳을 사람들이 일부러 외면할 이유는 없겠죠.

마침 저도 여행 7일차에 숙소를 이 키에브스카야, 그리고 유러피안 몰 인근의 아파트로 옮겨 그 후부터는 쇼핑과 식사, 장 보기 등을 이유로 거의 매일 가게 되었습니다.



성 바실리 대성당이나 마네쥐 광장의 야경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이 유러피안몰의 야경 역시 매우 매력적입니다. 까만 밤 하늘 아래 비현실적인 조명이 저렇게 빛나고 있으니 이 거대한 건물이 낮에 볼 때보다 더욱 크고 위압스럽게 느껴집니다. 보이는 공간은 쇼핑몰과 키에브스카야 기차역 사이의 공간으로 분명 횡단보도처럼 보이지만 별다른  교통 신호도 질서 의식도 없이 광장처럼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해외 혹은 러시아 국내에서 오는 여행객들에게 꽃과 간단한 기념품 등을 파는 할머니들, 아직 이 땅이 낯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언제나 번잡한 곳이기도 합니다.



종합 쇼핑 타운이면서 이 지역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유러피안몰의 입구는 그래서 모스크비치의 '만남의 광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고, 때때로 단체 여행객에게 주의 사항을 안내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그런 사람들을 노리고 싸구려 물건을 팔거나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되도록이면 내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도 잠깐 사이에 몇 명에게 구걸을 당하며 당황한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지상 총 4층 규모의 쇼핑몰은 층수는 높지 않지만 건물 내부가 워낙 커서 모두 돌아보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 크기만큼 수많은 상점이 입점해 있으며 대부분은 저에게도 익숙한 글로벌 의류 매장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몇몇 러시아 브랜드의 의류, 잡화 매장, 약국 등의 편의 시설들을 볼 수 있었구요.




홈페이지에 기재된 입점 내역을 보시면 이 대형 쇼핑몰의 규모를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중심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명품 브랜드를 쉽게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실제로 모스크바 중심가의 굼, 쭘 백화점보다 저렴한 의류 등의 쇼핑에는 더욱 유리한 곳입니다. 제가 갔을 때에는 시즌 오프와 세일이 겹쳐 저를 흥분(?)시켰죠.









철저하게 현대적인 내부 인테리어



러시아라고 해서 모든 건물들이 성 바실리 대성당처럼 생길 이유는 없지만, 이 곳에 있으면 잠시 이 곳이 예술 나라 러시아의 수도라는 사실조차 잊혀질 정도로, 영등포 타임스퀘어나 신도림 디큐브시티를 걷는 듯한 익숙한 느낌을 받습니다.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철저하게 현대적인 내부 건축과 인테리어 때문이기도 하고, 고개만 돌리면 쉴 새 없이 보이는 익숙한 상점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종종 제 인식을 방해하는 러시아어들이 쉴 새 없이 '여긴 모스크바'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지만요.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들다는 탑맨, 탑샵 매장을 보고 반가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침 세일 기간이라 오랜 시간동안 쇼핑에 전념했지만 아쉽게도 제 맘에 드는 옷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일 기간을 잘 맞춰 가시면 요즘같이 루블이 저렴한 시기에는 충분히 즐거운 쇼핑을 즐기실 수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한국에서도 살 수 있는 옷보다는 이 곳의 음식들을 먹는 게 남는 일이라는 생각에 별다른 쇼핑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여행엔 여행 짐에 옷을 좀 줄이고 이 곳에 와서 사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트렌드를 창조(?)하는

모스크비치를 위한 종합 문화/생활 공간



다분히 차갑고 현대적인 이 평범한 쇼핑몰 건물도 러시아인 특유의 예술혼은 막을 수 없었던지 유러피안 몰 내부 풍경 역시 쇼핑 못지 않게 여행객에겐 좋은 경험입니다. 제가 찾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이렇게 중앙 홀에 거대한 트리 장식을 세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죠.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마다 이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크리스마스도, 겨울도 지난 지금 저 곳은 어떤 모습일까요?



차와 디저트를 사랑하는 모스크비치를 위한 공간인만큼, 쇼핑몰 내부의 빈 공간은 여지없이 저렇게 카페와 아이스크림 가게 등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렇게 없는 공간에 욱여넣은 것 같은 간이형 구조의 카페는 왠지 여유가 없어 보인다는 생각 때문에 꺼리게 되는데요, 이 곳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와 식사를 즐깁니다. 그리고 이 같은 풍경은 모스크바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쇼핑몰 1층의 대형 광장 역시 카페/레스토랑이 입점해 있습니다. 이름부터 이미 패기 넘치는 '카페 모스크바'와 '모스크바 스시'가 그것인데요, 이 쇼핑몰의 '상석'에 있는 카페니만큼 전망도 좋고, 인테리어도 현대적으로 잘 되어 있어서 늘 바쁘고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3층에 있는 다른 카페 '커피 컴퍼니'에 빠져 이 곳에서의 여유를 즐기지는 못했지만, 지나가면서 저의 동경을 샀던 풍경이었습니다. 나란히 위치한 스시집은 러시아인들이 일본 음식, 그 중에서도 '스시'를 특히 좋아한다는 여행 전 들었던 이야기를 상기시켰습니다. 그 곳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러시아에서 초밥은 상당히 비싼 고급 음식이라 중요한 날이나 특별한 사람과의 식사에서 선택되는 메뉴라는 것인데요, 물론 현지인들에게 확인할 기회가 없어 저 역시 단정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겠습니다만, 이 대형 쇼핑몰의 가장 좋은 자리에 스시집이 있는 걸 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물론 맛있는 식당도 많습니다만, 아쉽게도 러시아 전통 음식점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까레이스키에게 큰 힘이 되었던 지하 대형 마트

여기까지 와서 장을 다 보네


앞서 설명한 이유 외에도 제가 이 유러피안 몰을 매일 찾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지하 1층에 위치한 대형 마트입니다. 이마트 혹은 홈플러스 같은 대형 마트가 이 쇼핑몰 지하 1층의 1/3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식품부터 고기, 생선, 채소같은 식자재까지 한 곳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가격도 무척 저렴한 편이라 숙소를 키에브스카야로 옮긴 후에는 매일 저녁 귀가 전에 이 마트에 들러 저녁과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위한 장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빵, 치즈부터 와인까지 제가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죠.


여행 7일차, 이렇게 매일 한짐씩 사들고 와 혼자 저녁을 해결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 날은 다음날 아침 식사를 위한 토마토와 파프리카, 치즈, 빵, 과일쥬스를 샀고 하루를 정리하면서 마실 기네스와 초코렛 안주를 샀습니다. 이렇게 한 짐 사고도 단돈 만원 가량밖에 나오지 않았으니, 새삼 러시아 물가가 천국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이 날은 소통의 부재로 홀로 2000루블짜리 만찬을 즐기고 왔거든요. 그래서 저녁 찬거리는 없습니다.


뚝딱 만든 아침식사, 괜찮쥬?



여행 7일차,

나를 모스크비치로 만들어 준 유러피안 몰, спасибо! (쓰파씨바!)



모스크바의 대형 쇼핑몰인 이 유러피안몰에서 사실 저는 폭풍 쇼핑을 하지도 않았고, 주요 관광지를 탐험(?)하느라 이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곳에 대한 기억이 특별한, 그리고 이렇게 포스팅을 통해 소개하게 되는 이유는 여행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있는 '현재의 삶'을 잘 대변해 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그리고 모스크바가 수백년된 건물들과 당대 예술가들의 작품들의 관광 수입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듯, 여행자 역시 과거의 영광뿐 아니라 현재 사람들이 사는 삶을 느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스크바 유러피안몰은 제가 찾은 곳 중 그런 모습들을 가장 여과 없이 보여준 곳이었습니다. 기차역, 전철역과 인접한 특성 때문에 언제나 다양한 인종과 특색의 사람들로 가득했으며,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곳 사람들의 대응은 현재 모스크바의 민낯처럼 느껴졌습니다.



또한 내부에 입점한 수 많은 글로벌 브랜드의 상점들을 보면 그 동안 강하게 고집을 부렸던 러시아도 역시 이 거대한 글로벌 트렌드의 물결에 결국은 휩쓸리는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됐구요. 내부의 현대식 인테리어는 그 동안 보아왔던 모스크바의 관광지와 너무도 달라 처음엔 이질감마저 들었지만, 각종 편의시설과 상점들이 모인 이 곳에서 여행과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을 얻는 제 모습을 보며 더더욱 강하게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이 곳 사람들 역시 이런 대형 쇼핑몰 앞에서 친구와 연인을 만나고 헤어진다는 것, 어디에서나 차를 즐길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는 것, 다음에 러시아에 스시집을 내 볼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까지. 아마 이 곳이 아니었다면 현재 모스크바의 삶에 이 정도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으로 모스크바를 찾게 될 여행객들에게 키에브스카야의 유러피안 몰은 러시아 특유의 느낌을 주지는 못합니다만, 즐거운 쇼핑과 차 한잔의 여유, 이 곳에서만의 식사 등 추천할 만한 이유가 많습니다. 현대 모스크비치들이 사고 싶어하는 것, 먹고 마시는 것, 즐기는 것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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