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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주인 잃은 편지에서 시작했다

그리운 오빠에게

by MITCH


1960년대 말, 그는 월남전에 파병된 군인이었다.


두려움과 공포, 정체 모를 분노와 일그러진 시간이 끝없이 이어지던 그곳에서 그를 붙잡아 준 한 줄기 빛은 한국에서 날아오던 그녀의 편지였다.


하지만 그 편지는 원래 그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월남에 파병된 사촌오빠가 그립고 걱정스러워 편지를 썼다.


- 그리운 오빠에게 -

짧은 문장마다 수줍음과 그리움, 그리고 어린 마음의 걱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 편지는 끝내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사촌오빠가 전장 한복판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탓이었다.


버려질 법한 그 편지는 기적처럼 그의 손에 들어왔다. 누구의 글이라도, 그곳의 군인들에게는 숨을 고르게 하는 위안이 되었기에. 그는 곧 답장을 썼다. 반듯한 글씨, 어딘가 정갈한 문장.

- 죄송하게도 저는 기다리셨을 그 사촌오빠가 아닙니다 -


그 편지가 한국에 닿았을 때, 그녀는 이미 사촌오빠의 비보를 전해 듣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뜻밖의 답장을 받아 든 그녀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봉투를 열었다. 첫 문장을 넘기기도 전에 눈물이 터져 편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어야 했다. 낯선 이의 글씨였지만, 그 속에서 마음을 어루만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녀는 다시 편지를 썼다. 설마 답장이 돌아오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그는 그 편지를 받아 설레었고, 다시 편지를 받은 그녀 역시 설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그의 파병 기간 내내 편지를 주고받았다. 전쟁터와 한국 사이, 두 젊은이의 펜 끝은 서로에게 길을 놓아주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오랜 친구들과 어울리며 평범한 시간을 만끽하던 어느 날,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그는 소중히 간직해 온 편지들을 꺼내 읽었다. 봉투에 적힌 주소를 바라보다가 직접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어 더 그랬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되는지 자신이 없던 그는 결국 다시 편지를 썼다.


- 한국에 돌아와 쓰는 첫 편지입니다.-

-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마침내 둘은 만났다. 수 없이 오간 편지 속에서도 서로의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이였다. 투명한 존재로만 지내다 현실에서 처음 마주한 순간, 두 사람은 첫눈에 끌렸다.


편지는 연애가 되었고, 연애는 결혼이 되었다. 자리 잡지 못한 그의 곁에서, 집안의 보살핌 속에 자라난 그녀는 많은 고생을 했지만, 그들의 젊은 날은 힘들어도 행복으로 빛났다.




어머니가 이따금 이 이야기를 하시면 그 끝은 꼭 "편지가 전해지지 말았어야 했다"다. 그러면 아버지는 화답이라도 하듯 "한국 와서 만나자고 하지 말 걸 그랬지" 하신다.


나는 자라면서 부모의 행복한 모습보다는 그렇지 않은 순간을 더 많이 보았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이런, 어쩌면 소설과도 같은 인연의 시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누구도 처음부터 불행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그 시절엔 젊었으니까. 그저 사랑했을 뿐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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