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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의 프러포즈

슈퍼 천재가 나온다고? 아니, 세상이 멸망할지도

by MITCH


프러포즈라는 것이 원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눈부신 순간으로 포장되고는 한다. 반짝이는 조명, 감동의 음악과 함께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나랑 결혼해 줄래?"라는 멘트까지.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때로는 유치하고, 때로는 뻔뻔하고, 때로는 진심을 비껴가 버린다. 내가 겪었던 몇몇 프러포즈는 그래서 지금 돌이켜 보면 장르가 블랙코미디였다.


가장 신박했던 멘트는 이것이었다.

"너의 유전자와 나의 유전자를 합치면 슈퍼 천재가 나올 거야. 어때?"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과학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어쩌면 나를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큰 찬사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시점의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고, 결혼이란 단어도 꺼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답은 짧고 단호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의 마이너스와 나의 마이너스가 합쳐진다면, 세상은 멸망할 거야."


재치 있게 포장했지만, 사실 속 뜻은 단순했다. 노, 땡큐.


그리고 또 하나, 내가 꼽는 최악의 프러포즈 멘트.

"너는 나와 내 가족에게 만족스러운 사람이야."


순간, 이게 무슨 회사 평가 피드백인가 싶었다. 보통 프러포즈는 "나와 너"의 이야기여야 하는데, 이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만족도 조사 결과였다. 정작 나는 그 원에 포함되지도 않는 기분. 머릿속에는 빙글빙글 회전목마가 도는 듯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그때 대답도 짧고 단호했다.

"그래? 그런데 어쩌냐. 넌 안 그런데."


말하자면, 그 사람의 화려한 "평가 기준표"를 순식간에 무효화해 버린 셈이었다.


나는 프러포즈에 로망이 없다. 반짝이는 반지, 무릎 꿇는 이벤트, 멋진 야경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진심은 거기에 있지 않으니까. 다만 그 말 안에 "나, 너, 우리, 현재, 미래"가 들어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게 없다면, 함께하지 못할 현재와 미래에 무엇을 기대하라는 건가.


"나 없이 너와 너의 주변 사람만 행복하다"는 말로는 시작할 수 없고, "너 없이 나의 유전자만 남는다"라는 말로도 이어갈 수 없다. 우리가 지금 함께 존재하고, 내일도 나란히 걸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담기지 않는다면, 그건 프러포즈가 아니라 그냥 개인적인 독백에 불과하다.


물론 예외는 있다. 상대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그 사랑이 절정에 달해 무슨 말을 해도 "오케이, 예스!"가 튀어나오는 순간이라면 멘트의 완성도 따위는 필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의 요건은 지켜야 한다.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갈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는 것. 몇 줄의 그 말속에서, 상대가 나를 사랑의 주체로 보는지, 아니면 부속품처럼 끼워 넣는지가 다 드러난다. 결국 프러포즈는 허울 좋은 이벤트가 아니라, 단 몇 줄의 말이 전부다.


내가 겪은 두 프러포즈는 낭만의 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의 민낯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황당해서 웃어버리거나 불쾌해서 단칼에 문을 닫아 버리는 시간. 함께 살아가자는 그 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고자 진짜 마음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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