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지금’에 집착하는가

제철코어, 불확실한 시대에 시간을 설계하는 법

by TODD

요즘 소비 트렌드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제철코어’가 자주 언급됩니다. 겨울에만 줄을 서서 먹는 대방어와 붕어빵, 특정 계절에만 열리는 성수동의 팝업스토어, 지금이 아니면 사라질 한정판 콘텐츠들.


우리는 이 순간이 지나면 의미가 퇴색될 것을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잘 알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열렬히 소비합니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지금’이라는 시점에 반응하게 되었을까요? 제철코어는 단순한 마케팅 기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대인의 심리 구조 변화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징후에 가깝습니다.


미래를 신뢰하지 못하는 시대의 소비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이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불확실성 앞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특히 미래에 대한 예측이 불투명할수록, 인간은 확실한 현재의 보상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현재 편향(Present Bias)’과 맞닿아 있습니다.


“나중에 즐기자”는 약속은 저성장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합니다. 대신 “지금 확실히 누릴 수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합리적인 선택이 되었습니다. 제철코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작동합니다. 이 소비는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붙잡을 수 없는 미래 대신 손에 잡히는 현재를 붙잡으려는 심리적 방어 기제입니다.


시간은 자원이 되었고, 경험은 증거가 되었습니다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인간의 태도를 ‘시간 조망’으로 설명합니다. 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 중 우리가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소비자들은 명확하게 ‘현재 지향적’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불안’이 자리합니다. 미래를 촘촘히 계획할수록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는 늘어나고, 그 무력감은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 계절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


여름 한정 메뉴인 수박 주스 한 잔, 가을 짧게 스쳐 가는 단풍 아래에서의 러닝은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강력한 존재의 증거가 됩니다.


제철코어는 소유가 아니라 ‘몰입’을 판다


긍정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순간을 ‘몰입(Flow)’의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시간 감각조차 사라진 채, 오직 현재의 경험에 완전히 융화되는 상태 말입니다.


제철코어 소비는 이 몰입의 경험을 짧고 강렬하게 설계합니다. 10년을 쓸 물건을 고르는 신중함 대신, 단 일주일의 계절감을 깊게 느끼기 위한 감각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제철코어는 매년 반복되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계절은 돌아오지만, 그 계절을 맞이하는 ‘현재의 나’는 작년과 다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 FOMO와는 다른 결


흔히 이 현상을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 ‘FOMO(Fear of Missing Out)’로 설명하곤 합니다. 하지만 제철코어는 조금 다릅니다. 이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불안이라기보다, 나의 삶을 공백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다는 의지에 가깝습니다.


작가 수전 손택은 삶을 해석하는 것보다 경험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요즘의 소비자들은 복잡한 해석 대신 직접적인 체험을, 거창한 메시지보다 찰나의 감각을 선택합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지금 이 순간의 느낌’ 자체가 소비의 목적이 된 것입니다.


브랜드는 무엇을 설계해야 하는가


제철코어 트렌드는 브랜드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제품을 파는가, 아니면 시간을 설계하는가.”


이제 브랜드는 제품의 영속성을 약속하기보다, ‘지금 이 계절을 우리와 함께 어떻게 기억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제철코어는 가볍게 소비되지만 그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금의 나를 존중하고 아끼는 가장 솔직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언젠가’라는 막연한 기약을 믿지 않습니다. 대신 ‘지금’이라는 확실한 시간을 삽니다. 제철코어는 조급함이 만든 유행이 아니라,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선택한 가장 따뜻한 생존 전략입니다.


이 계절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은 당신의 마음은, 우리가 여전히 삶의 순간순간을 사랑하고 있다는 가장 다정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화요일 연재
이전 18화말보다 먼저 스며드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