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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Mar 14. 2016

왜 나는 히키코모리가 될 수밖에 없었나

나는 오타쿠이고, 히키코모리다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문득 과거에서 비롯된 지금의 나를 한 번 더 명확하게 생각을 해보아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나는 블로그에 나의 소개를 '오타쿠에 히키코모리인 니트 블로거'라고 써두었다. 이 사유를 말하기 전에 앞서 오타쿠와 히키코모리가 무엇인지 설명하도록 하고자 한다. 


 오타쿠(일본어: おたく, オタク, ヲタク)는 일반적으로 가타카나(オタク)로 표기)는 1970년대에 일본에 나타난 서브컬처의 팬들을 총칭하며 독특한 행동 방식,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원래는 애니메이션의 SF 팬에 한정해 불렀지만 명확한 정의가 없었으며 현재는 보다 폭넓게 영역을 포괄하고 있으며 대상 또한 일정하지 않다. 


 히키코모리(일본어: 引き籠もり (ひきこもり))는 방이나 집 등의 특정 공간에서 나가지 못하거나 나가지 않는 사람과 그러한 현상 모두를 일컫는 일본의 신조어이다. 도지코모리(閉じこもり 토지코모리[*])라고도 하며, 2 채널 등의 일본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힛키'(ヒッキ)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우리말 다듬기에서 폐쇄은둔족(閉鎖隱遁族)이라는 말로 다듬었으나, 보통 은둔형 외톨이(隱遁型-)라는 단어가 더 많이 사용된다.


 위와 같은 것이 오타쿠와 히키코모리다. 내가 보냈던 10대 시절이 7할은 지금도 가끔 악몽에 시달릴 정도로 끔찍했다. 웃을 수조차 없었고, 그저 매일 울거나 슬픈 나날을 보냈었다. 그러한 이유에는 학교에서의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따돌림과 폭력, 가정 불화는 점점 내가 안으로 움츠리게 했다.


 그랬던 나에게 애니메이션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희망적인 존재다. 만약,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애니메이션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절망에 빠진 채 죽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공허했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준 것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나는 꿈을 배웠고,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애니메이션에서 나아가 원래 친구가 없어서 언제나 홀로 하던 독서에서 훨씬 더 많은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가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다른 같은 나이 때의 아이들보다 더 빨리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시사문제에 관해서 깊게 생각하고 다룰 수 있는 것은 이때의 영향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때부터 사회에 대한 모순을 글로 표현하는 것을 시작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속 지낸 나에게 한 가지 단점이 생겼다. 바로, 난 은둔형 외톨이 정도의 수준은 아니나, 대인기피증이 있다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20대 중반이 되어버린 지금도 나는 사람과 관계는 언제나 지나치게 가까워지지도 않고, 지나치게 멀리하지도 않는 관계를 유지한다. 나는 모든 일상의 시간을 대부분 혼자 보낸다.


 나는 사람이 많고, 상당히 시끄러운 데에 가면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생각을 수백 번도 더 한다. 게다가, 언제나 혼자서 생활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사적인 이유로 직접 만나서 관계를 이끌어가는 것에 아주 힘이 든다. 애초에 사람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마음 깊숙이 남아 있어 사람과 거리가 좁혀지는 일이 부담스럽다. 항상 사람이 많은 공간은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자동적으로 항상 인터넷이라는 가상을 통해서만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갈 수가 있게 되었고, 항상 직접보다는 간접적으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을 더욱 선호한다.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 이런 매체를 통해서 사람과 소통하는 일은 대단히 마음이 편하고, 언제나 존중과 예의를 갖추기 때문에 거리를 두는 관계가 오히려 더 편하게 느껴진다.


 아마, 나를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조금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닌 것처럼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진짜 내 모습이다. 나는 이런 나를 바꾸고, 조금 더 사회에서 적응을 하기 위해서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인간관계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 과정은 나라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바꿀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사회에서 필요한 스킬은 본능적으로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어떤 시점에서 어떻게 대해야 된다는 것이 나에게는 머릿속에 게임 공략 표처럼 짜여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어느 정도 사람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가 가능하나, 사적인 관계는 지속적으로 그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사적으로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내 머릿속에는 '뭘 말해야 되지? 어떻게 행동해야 되지? 여기선 또 어떻게 대처해야 되지? 그냥 집에 가고 싶은데'라는 생각들이 멈추지 않고, 표현은 안 하더라도 극심한 불안에 떨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난처한 상황을 겪지 않기 위해서, 웬만큼 친한 사람이 아니면 잘 만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인생은 손해 보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딱히 손해 보는 인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애완견처럼 집에 제대로 찾아가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면서 부산에 함께 갔을 때, 버리고 온 녀석들을 친구라고 만날 바에 그냥 혼자서 매번 '학교-집-학교-집'을 반복하는 것이 더 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행을 가더라도 혼자서 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서 넓은 세상의 지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나에게 주어져 있는 것은 무한한 공간에서 쉴 새 없이 나오고 있는 방대한 양의 정보다. 책과 인터넷만으로도 나는 누구를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다. 과거의 악습에서 희생되었던 과거를 통해서 나는 현실이라는 그것에 정이 떨어질 데로 떨어졌다. 그렇게 착할지도 악할지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등바등 칠 바에 이렇게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의 가치의 기준을 정했다. 


 그래서, 나는 위 영상과 비슷한 이유로 오타쿠에 히키코모리증을 앓고 있는 니트 블로거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것은 과거의 그 지옥 같은 생활을 겪어내면서, 나 나름대로 성장하고, 내가 추구해오던 길을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또 어떻게 바뀔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현재 진행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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