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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숲 Apr 04. 2022

[ 펀딩 수난사 ] 2-1. 목표금액 정하기

퍼센티지의 눈속임, 그리고 잠깐의 고민

  저 수학 정말 못합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숫자 하곤 담을 쌓고 살았고, 회사에서도 다른 건 곧잘 하다가도 숫자가 주르륵 나오는 일들에는 대략 멍해지곤 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프로젝트를 작성하며 가장 시간이 오래 걸렸던 일은 숫자가 나오는 '목표금액 설정'과 '선물 구성' 란을 채우는 것이었어요.


  일단 숫자와 계산이 필요한 모든 일들은 엑셀을 통해 해결합니다. 빈칸에 쭉 써 내려가요. 현재 지출 비용, 시제품 제작, 300,000. 엔터. 포장재 구매, 50,000. 엔터. 


  이러고 나니 또 멍해집니다. 


  '여태 썼던 비용은 이렇고. 근데 프로젝트가 오픈되고 얼마나 후원이 들어올지 어떻게 알지? 제작 비용은 후원자가 적으면 적어지고, 많으면 많아지는 건데?'

  언제나처럼 막막할 때는 텀블벅의 프로젝트 시작하기 가이드를 찾아봅니다. 역시나 답이 있습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데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금액을 산정해서 쓰면 된다는군요. 게다가 텀블벅에서는 아주 친절하게, 예산을 편리하게 수립할 수 있는 엑셀 시트를 배포하고 있습니다. (링크)


  엑셀 시트를 채워 나가다 보면, '선물 구성' 탭에서 잠시 머뭇거리게 됩니다. 뭘 만들지는 결정했지만 어떻게 구성해서 어떤 금액으로 펀딩 할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 제 경우에는 꽤 많은 품목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에 텀블벅에서 제공하는 엑셀 시트에 간략히 정리하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별(*)의 개수는 해당 품목의 개수를 뜻합니다.

  새로운 엑셀을 열어 내가 펀딩 할 품목들을 쭉 써 내려갑니다. 그리고 어떤 제품을 어떤 구성으로 펀딩 할지, 그리고 얼마에 펀딩 할지를 계산합니다. 이때에는 합리적인 가격 책정을 위해 생산 단가와 정상가를 책정해 펀딩 할인율을 잘 계산해야 합니다. 엑셀 수식을 이용해 금액을 변경해가며 적절한 펀딩가를 설정합니다.


  펀딩 품목이 많았던 저는 '정상가' 설정이 꽤 중요했습니다. 일단 펀딩 후 온라인에 판매할 목적을 가지고 있기도 했거니와, 펀딩 시작 후 이런 문의가 많았거든요.

  "저는 3번 구성에 키링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7번 구성에서 스티커 세트만 2개 더 추가 가능한가요?"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후원하기'기능으로 창작자의 재량에 따라 정해진 추가금을 펀딩 하고, 배송 시 해당 추가 상품을 함께 배송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해당 제품을 추가했을 때 얼마를 추가 후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금액 정리가 꼭 필요했습니다. 더불어 사후 온라인에 판매할 가격이 펀딩가보다 낮게 책정되는 불상사를 겪지 않으려면 '정상가' 정리는 필수. 




아무튼, 모종의 과정들을 거쳐 펀딩 구성도, 펀딩금도 정했습니다. 이제 다시 '목표금액'으로 돌아가 봅니다. 


  목표금액이 적으면 퍼센티지의 눈속임을 이용하기 쉬워집니다. 목표금액이 50만 원인 펀딩과 130만 원인 펀딩이 있을 때, 같은 금액인 300만 원을 펀딩해도 전자는 600% 달성, 후자는 260% 달성입니다. 저도 압니다, 퍼센티지가 클수록 제 성과를 부풀리기도 쉬워진다는 걸요. 그래서 잠시 고민했습니다. 사실 20명이 평균 20,000원의 펀딩에 참여하기만 해도 40만 원입니다. 그럼 그 이상의 후원자가 생겼을 때 퍼센티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지요.


  '내게 퍼센티지가 의미가 있나?'

  '실제로 필요한 금액은 그 이상인데, 퍼센티지 부풀리기를 해서 내가 얻을 건 뭐지?'


  문뜩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저는 꽤나 열성적으로 일하던 막내 직원이었는데, 당시 아무도 하지 않던 업무를 도맡아 꽤나 깔쌈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근데 아무도 이 깔쌈한 결과물을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요. 왜냐하면 제가 그 성과를 동네방네 알리고 다니지 않았거든요. 그냥 자리에 앉아서 꾸준히 업무를 해 나가고 조용히, 익명으로 공유할 뿐이었습니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직속 상사가 말했습니다. "숲 씨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자기 성과를 말하지 않아요? 좀 알리고 다니세요. 과장도 하고, 생색도 내고. 그래야 보상도 받고 하는 거지. 그러려고 회사 다니는 거 아냐?" 


  저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멋쩍게 웃었습니다. 그러게요, 그래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하고. 


  회사에서 과장과 생색을 통해 좋은 고과를 쟁취하는 인간군상을 몇 봤습니다. KPI를 소설로 쓰는 사람도 봤고요. 그들은 기본적인 업무도 아주 큰 일처럼 부풀리기를 곧잘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저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조용히 일하고, 필요하다면 그 일에 대해 담백하게 보고하고, 그에 대한 칭찬이나 보상이 따르길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들의 '성과 부풀리기'는 일정 부분 진실이고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다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 성과 부풀리기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타고난 천성이 그랬습니다. 



  퍼센티지의 눈속을 이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139만 원.

  저는 그 금액을 프로젝트 계획에 써넣었습니다.

 


* 인스타툰 계정 : @soupsoupforest

* 슈파두파럭키캣 계정 : @super_duper_lucky_




+) 제 경우, 이런저런것들을 따져봤을 때 139만원이 '적절한 펀딩금'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정도의 금액은 채울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어요.

+) 하지만 펀딩금 달성에 대한 확신이 없고, 제작금 회수가 되지 않아도 되는 상황(=손해가 발생해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것에 의의를 두는 상황)이라면 실제 제작금보다 적은 예산을 책정하는 것도 전략이라고 봅니다. 펀딩이 무산되면 결국 시제품 생산도 무의미해지니까요. 

+) 적은 목표금액을 싸잡아 '성과 부풀리기' 혹은 '퍼센테이지 눈속임'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펀딩의 적정금액은 정말 많은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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