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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우 Aug 11. 2022

본 투 비 연구자의 연구하는 취미

<호호호>를 읽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하여

<크툴루를 아시나요?>


나는 보드 게임을 아주 좋아한다. 루미큐브, 뱅, 로보77, 라스베가스 등의 다 같이 우하하 웃으며 즐길 수 있는 보드 게임이 아닌(이런 가벼운 류의 게임들을 보통 파티 게임이라고 부른다.) 전문가용 게임들을 좋아한다. 전문가용 보드게임이라 함은, 보드게임 카페에서 처음 하기 힘든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제일 간단하다. 룰 설명이 최소 30분이 걸리는 정도의 난이도에 3~5인이 한 판을 하는데에 1시간 이상이 걸리며, 운적 요소가 거의 없이 두뇌 풀가동을 하여 점수를 최대한 짜내는 전략 게임들이 대부분이다. 보드 게임에는 단판성 게임이 아닌 RPG 게임들도 있다. 시나리오들을 진행하며 캐릭터가 점점 성장하거나, 이전 시나리오에서 했던 선택들이 다음 시나리오에 영향을 미치거나, 게임을 진행하면서 캐릭터나 시나리오가 점차 해금되는 방식들의 시스템도 보드 게임으로 구현이 가능하다. 이럴 경우, 플레이 타임이 최소 10시간부터 100시간에 달하기도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들은 바로 이런 종류의 게임들인데, 치명적인 단점은 같이 게임을 할 고정 파티를 꾸리고 여러 번 만나서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컴 호러 카드게임은 러브 크래프트 단편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크툴루 신화 세계관의 보드 게임이다.  세계관을 공유하는 ‘아컴 호러 보드게임 별개의 게임이며, 내가 좋아하는 게임은 아컴 호러 ‘카드게임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명시한다. 아컴 호러 카드게임은 카드로 진행되는 시나리오성 RPG 협력 게임으로, 1-4인의 플레이어가 각각 게임의 캐릭터를 맡아  캐릭터를 구성하는 카드 덱을 만들고, 하나의 캠페인 내의 연속된 시나리오들을 차례로 진행하는 방식의 테마 게임이다. 카드로 시나리오와 장소, 모든 캐릭터  사건들을  구현하며,  시나리오마다 여러 가지 선택에 따라서 진행 루트가 갈리고, 경험치를 얻어 성장하기도, 트라우마를 얻기도 한다. 보드게임에서 이렇게 전율과 소름을 느낄  있나 싶을 정도의 여러가지 기믹(gimmick) 다양하고, 내러티브가 강해서 마치 판타지 게임을 하거나 영화 속의 주인공이  듯한 몰입 경험이 가능하다.


내가 아컴 호러 카드게임을 처음 해본 것은 2021 3월의 어느 날이었는데, 시나리오 하나를 맛보기   너무 충격을 받아서 꿈에서도 생각이 나길래 바로  확장을 구매했다.  뒤로 지금까지 새로 확장이 발매될 때마다 성실하게 사들이며 아컴 호러 카드게임 오픈 채팅방에도 들어가서 여건이  때마다 열심히 즐기고 있다. 얼마나 진심이냐면 주위 사람들에게 영업하기 위해서 방대한 분량의 소개  FAQ PPT 만들었고, 상기한 게임의 특성상 연속된 시간의 확보가 필요하기에, 밥도  먹고 12시간을 앉아서 내리 게임을 한다거나 1 2 광기 합숙을 꾸리기에 이르렀다. 방구석에 앉아 미국도 다녀오고, 유럽도 다녀오고, 정글이나 남극도 모자라  다른 차원의 우주나 , 기억 속을 모험하는 일은 생각보다 생생하고 멋지다. 코스믹 호러에 맞서 서로 의지하는 협력 게임이기에 같이 게임하는 사람들과 유대감이 생기는 것은 덤이다. 요즘도 거의 매일 ‘아컴 호러 카드게임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다.  고백하자면,  게임을  운용하고 싶어서 틈만 나면 덱을 분석하고 심지어 카드 효과의 이득과 확률 등을 계산하기도 한다. 나보다 더한 사람들의 분석 칼럼도 자주 읽는다. 논문도   있을  같다! 텍스트가 매우 많고 규칙도 많아  언어능력이 필요하고, 테마 취향도 맞아야 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은 있지만 독보적인 게임이기에 궁금한 사람은 문의하시면 찍먹 시켜드리겠습니다. 신규 광신도 환영 문의 010-….





<뮤 세끼, 그리고 파스타>


나름대로 요리에 조예가  깊다고 생각한다.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시는 덕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음식을 혼자 차려 먹어야 했는데, 우리 엄마가 만든 거의 모든 음식들이  입맛에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초등학생 때부터 직접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남짓 무렵 김치볶음밥과 김치찌개에 한참 몰두했을 때가 있었는데, 매일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매일 김치볶음밥을 만들지만 부재료를 바꿔가며 어떤 재료들의 조합이 가장 맛있는지 연구하곤 했다.  돼지고기와 참치, 스팸 등은 각각 어떤 야채들과 어울리는지, 굴소스는 어떤 재료를 넣을  어느 타이밍에 넣어야 하는지, 김치 국물은 어느 정도 양을 넣어야 하는지  매일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어제보다  맛있는지 비교해보곤 했다. 김치찌개 역시 마찬가지였다. 찌개용 돼지 앞다리살을 넣은 김치찌개와 꽁치 김치찌개와 베이컨 김치찌개엔 각각 어떤 재료와 육수가  어울리는지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20대가 되어서는 새로운 요리를 시도해보는 것에 꽂혔다. 지금은 흔하지만 10 전엔 희귀하던 프랑스 음식이나 동남아 음식들을 먹어보고 싶어서 블로그와 요리책들을 찾아보며 태국 그린 커리, 레드 커리, 팟타이, 분짜 등을 직접 만들어보았다. 코코뱅, 비프 부르기뇽, 어니언 스프 같은 프랑스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번도 먹어보지 않은 음식들을 내가 만들어서 처음 먹어보며  맛이 맞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요리를 도전하여 결과물을 내는 과정도, 가족들이나 친구들의 찬사를 받는 것도 나에게 대단한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혼자 나가서 살게  후로부터는 주로  그릇 요리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파스타가 주식이 되었다. 시작은 미약했다. 간단하게 시판 파스타 소스나 페스토에 약간의 재료와 조리과정을 더해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만족시키는 시판 소스는 없었고, 다양한 레시피들을 찾아보며 새로운 도전을 하다 보니 맛에 대한 기준이 높아졌다. 그리고 취향도 확고해졌다. 오일 파스타를 주로 만들게 되면서 500ml 5  이상 하는 프리미엄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알게 되었고(나라별 올리브 품종의 차이까지 알아버렸는데 나도 정말 이렇게까지 알고 싶지는 않았다.), 스파게티면 역시도 마트 스파게티면의 10 이상 비싼 것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냥 후라이팬과 스테인리스 후라이팬에 조리한 것의 미묘한 차이를 알게 되었으며, 파스타는 2인분을 만드는 것보다 1인분을 조리하는 것이 훨씬 맛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귀찮은 것이 많은 내가 요리를  때만큼은 디테일에 신경 쓰면서 부지런하게 한다는 것이 나의 자존감을 올려주며, 결과가 금방 보이지 않는 일들 사이에서 지칠 , 15분이면 훌륭한  그릇의 파스타를 완성할  있다는 것은 크나큰 위로와 기쁨이 된다. 나의 최애 파스타는 레몬과 어니언 플레이크를 뿌린 짭조름하면서 산미와 감칠맛이 가득한 앤초비 파스타, 그리고 겨울에 주구장창  먹고 친구들에게도 많이 해줬던 백김치와 쪽파가 올라간  마리네이드 파스타이다.


연구와 요리는 비슷한 점이 많아서, 내가 궁금하고 내가 즐거워서 하는 것이지만 결과물을 남들에게 자랑하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 내가 만들어준 파스타를 먹고  뒤의 반응, 미우가 만들어  파스타가 자꾸 생각난다는 고백이 예쁘다는 칭찬보다, 심지어 웃기다는 칭찬보다 좋고 뿌듯하다. 언젠가 다시 미미 하우스를 오픈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만든 파스타를 대접하고 같이 보드게임(아컴 호러 카드게임이면  좋음)  행복한 날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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