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난 자리에 책을 펼치며
문득 내 취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대학 시절, 내 유일한 낙은 과제를 모두 끝내고 혼자 보는 영화였다. 예술 영화, 대중 영화, 독립 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빠져들었던 이유는, 내가 겪지 못할 타인의 삶을 '경험'하고 그로부터 영감을 얻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영화 포스터 디자인을 하겠다며 세미나를 찾아가고, 영화를 더 많이 보겠다고 1년 동안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의 나.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그 즐거움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 느낄 새로움이 없어진 탓인지, 일상의 권태에 지쳐 즐거움을 좇을 힘마저 잃어버린 까닭인지. 볼거리가 넘쳐나는 대OTT 시대에도 나는 굳이 영화를 찾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늘 영화라고 자신 있게 답하던, 남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영화를 본다고 자부하던 나는 이제 같은 질문에 망설임을 느낀다. 그런 내 모습에 어쩐지 스스로에게 섭섭한 마음마저 들었다.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취미를 고민하다가, 문득 지난해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만 50권이 넘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한 것도 많지만, 그만큼 직접 사서 읽은 책도 많다. '나는 요즘 무엇에서 즐거움과 영감을 얻고 있는가?' 가만히 돌아보니 그 역할을 이제 '책'이 대신해주고 있었다. 취미의 자리에 조용히 '책'을 올려두고는 내심 안도했다. 아직도 나에겐 경험해 보고 싶은 세계가 많이 남아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그래서, 이 브런치에서는 내가 읽은 책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 한다. 작년부터 노션에 꾸준히 필사를 해오고 있지만, 한 가지 느낀 것은 아무리 적어두어도 책에서 얻은 지식과 영감의 절반도 온전히 체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록하지 않은 인사이트는 휘발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텍스트에서 얻은 것들을 꼼꼼히 '되감기' 해보려 한다. 대단한 인문학자나 평론가 같은 거창한 글을 쓰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극장을 나서며 나만의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왓챠피디아에 긴 리뷰를 남기던 과거의 나. 딱 그 정도의 애정과 열정으로 이 공간을 채워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