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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Apr 15. 2022

흩어진 배열 맞추기, 중심은 나!

     아이들이 훌쩍 자랐다. 마흔이 넘어가고 있었다. 

언제부터일까. 새해 계획을 세우게 되는 12월이 되면 뭔가 켕기고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다. 아이를 키우던 30대의 나는 이것저것 열심히 하고 그 안에서 충만함도 컸는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삶의 명확한 나침반이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이들이 크면서 삶의 주기는 바뀌는데 내 한 해 계획은 너무 잘 보이니 의욕이 예전 같지 않았다. 아이들이 손을 조금씩 덜 타는데 ‘육아하느라 힘들어서 딴 건 손도 못 대요~’라는 말은 이제 누구에게 해도 옹색할 것 같았다. 남편이 돈 벌어오라고 타박을 한 것도 아니었다, 이대로 편하게 머물고 싶은 마음과 전진하고 싶은 모순된 마음이 날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집중 육아 기간이라는 핑계로 내내 외면했던 질문을 마주했다.  

     

     ‘은미야, 앞으로 주어진 40대 이후를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고 싶니? 경쟁에서, 직업전선에서 물러나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여유롭게 살고 싶어? 아니,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냐. 그럼 만화를 다시 시작하고 싶어? 모르겠어. 자신 없어. 10년이나 손을 놓았는걸. 근데 이것저것 배워 봐도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었어.’   불편한 마음을 들여다보고 질문을 계속 하다 보니 질문이 점점 명확해졌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거 다 치워! 네가 좋아하는 게 뭐냐고? 딴 사람 아니고 너! 연은미, 너 말이야!’

     

     난 뭘 하고 싶은 걸까? 뭐부터 시작해야 할까? 머리를 싸매 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뾰족한 답도 없는 가벼운 생각은 되돌이표가 되어 제자리만 맴돌았다. 생각도 머릿속에 든 게 있을 때 할 수 있는 거구나. 생각을 키우려면 어떻게 하지? 책부터 집중해서 읽어봐야겠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던 생각이 조금은 윤곽이 잡혔다. 하지만 책 읽는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문제였다.  아직은 어린 아이들과 남편을 챙기다 보면 하루가 뒤죽박죽, 오후가 되면 진이 빠져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내가 찾은 답은 바로 새벽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일기를 쓰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새벽에 처음 읽은 책이 <내가 단단해지는 새벽 공부 천년의 내공/조윤제>이었다. 사색이 가득한 글을 읽으니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의욕적인 시간은 잠시였고 바로 저항이 찾아왔다. 새벽 5시 알람이 울리면 더 잘까? 일어날까? 갈등하다 알람을 끄고 자버리는 일이 자꾸만 생겼다. 수십 년 몸에 인이 박이게 새겨놓은 습관은 자꾸만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고 했다. 법륜 스님 강연 영상을 보니  갈등하는 그 순간에 이미 악마인 마라(mara)가 안에 들어와 마음이 진 거라고 했다. 알람이 울리면 ‘그냥’ 몸을 일으키란다. ‘그냥?’ 나는 이것저것 시도하다 나에게 맞는 최적의 방법을 찾았다. 바로 핸드폰을 머리맡이 아니라 다른 방에 두는 거다. 알람이 오래 울리면 다른 식구들이 깰까 봐 그냥 몸을 일으키게 되고 핸드폰을 가지러 걸어가면서 잠이 깨게 된다. 강제 벌떡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새벽 기상이 어느 정도 정착되자 새벽 시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독서를 기본으로 20분을 맞춰놓고 이모티콘 캐릭터를 따라 그리기도 하고 명심보감 필사를 했다. 영어 공부도 시작했다. 그렇게 의욕 충만하다가도 피곤이 몸을 무겁게 짓누르면 이 모든 행위가 쓸데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뭐 하러 이 고생을 하며 꾸역꾸역 일어나는 거지? 아직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는데. 몸살이 나서 1주일을 무너졌다 다시 시작하기도 하고 책을 버티듯 읽다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그렇게 좌충우돌, 누가 시키지도 않은 혼자만의 씨름을 2년을 하고 나니 이제 새벽 5시 가까이 되면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눈이 떠진다. 몸의 생체시계가 적응한 것이다.  


     그렇다면 새벽기상으로 나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솔직히 아직 답을 찾는 과정에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이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하다. 좋은 습관이 불러온 변화 또한 많다.  오전 외출 전에 내가 정한 루틴을 끝내는 뿌듯함. 10권, 50권 90권... 완독한 쌓여가는 책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내 정체성이 주부에서 작가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원해서 말이다. 나는 누가 골라준 것이 아닌, 내가 고른 새 신발을 신었다. 신발 끈을 당겨 동여매고 육상 트랙 출발선에 섰다. 관성으로 돌아가려는 어제의 나를 다독이며 발을 힘차게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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