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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 Miyoung Jul 08. 2015

단편 <너무 소중했던, 당신> 작업기_#번외(1)

눈이 내린 풍경에 빠졌네

내가 유학했던 곳은 보르도 근방, 즉 프랑스 동남부 쪽에 위치했던 ANGOULEME이라는 도시이다.  기후가 그리 나쁘진 않아 찌는 듯한 더위나 시릴듯한 추위도 그저 잠시 손님처럼 머물다 가곤 해서 날씨 때문에 오랜 기간 애를 먹거나 했던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작업기 정리를 위해 사진과 자료를 훑어보던 중 이 지역에 때아닌 폭설이 내렸던 날 찍었던 사진들을 보게 됐다. 문뜩 그날이 생각나 잠시 쉬어갈 겸 사진과 함께 그날 적은 노트를 이곳에 남긴다.


 2010년 12월 2일 아침이었다.


9시입니다. 밤 말고 아침 9시요.
아~앞이 안보여요~ 띄띄빵빠앙!

2010년 12월 2일 그날의 노트                                                 

 아침에 volet(덧창)를 열었더니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있다. 어제 새벽까지만 해도 이런 낌새는 없었는데.

 온몸을 꽁꽁 싸매고 아파트를 나서자 굻은 눈발이 후두두둑 쏟아지는 게 보인다. 눈은, 바깥 풍경의  색뿐만 아니라 소리도 하얗게 만든  듯했다. 눈을 뜨고 나아가기가 무섭게 내게로 달려드는 눈송이, 걸음걸음 내딛을 때마다 신발에 소복이 쌓이는 눈을 거둬내려 온몸을 흔들기를 몇 번.

'그냥 학교에 가지  말까-?..'

잠시 필요 없는 고민을 하다가, 이 풍경을 그저 앉아서 보기만은 너무 아까워 조금씩 조금씩 걸음을 내디뎠다. 

 이미 눈이 5~7센티가량 쌓인데다가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니 도로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2차선의 좁은 도로에 오가는 차들은 사라지거나 한 두대씩 나보다 느린 속도로 살금 살금 기어가고 있다. 갓길에 주차된 차들은 두꺼운 이불을 쓰고 잠을 자듯 하얀 눈을 가득 짊어지고 고요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들 서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오가지도 못하는 자동차들을 정비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오늘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다들 출근해야 할 텐데 어쩜 저렇게 여유 있을까 싶을 만큼, 한가롭다. 왠 아저씨는 잠시 버스정류장에서 서서 사진을 찍고 있는 내게 커피 한 잔 하겠냐 묻는다.


 내 어깨로, 모자 위로, 가방 위로 쌓여가는 눈을 몇 번 쳐내다 이내 포기하기로 한다. 눈은 너풀너풀 떨어지고 난 그 사이를 헤쳐 머나먼 20여분의 등굣길을 걷는다. 그 사이 얼굴에 달려드는 눈송이들이 간지러워 몇 번이나 눈꺼풀을 움찔거렸다.

 오늘은 길 위에서 달리는 차들도 없어, 인도와 차도의 구분도 없다. 왠지 도로가 생기기 전 어느 날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도 들어 이유도 없이 차도위를 폴짝거리며 걸어 다녔다.

 

 눈이 포물선을 그리다 그들보다 조금 먼저 이 땅에 떨어진 눈들 위로 살포시 안착한다. 그런 눈을 보고 있자니 그들이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속도 만큼이나 세상이 느려진 것 같아 잠시나마 평화롭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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