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느낌을 좌우하는 짧은 테스트씬 제작
괜한 설레발일지도 모르지만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이것이 애니메이션 작업의 정석이다!!'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 방법과 과정을 담은 수필일 뿐, 누군가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교과서적 글은 아니다.
앞서, 이런 밑밥을 까는 데는 내 균일하지 못한 작업방식에 대해 찔리는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보통 스토리까지 정리가 되면 그 다음 캐릭터와 아트워크를 애니메이션에 적합하게 더욱 구체화하고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앞으로 진행하게 될 영상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런 정석적인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밟아가기엔 시간적으로 촉박했고 어차피 팀이 아닌 개인 작업이기에 몇몇 부분에서 규격화하는 과정을 아예 지나쳐 버렸다.(훗날 이것은 큰 재앙으로 다가오게 되는데 -..-;)
2010년 10월~11월
우선 전체 영상의 표준이 될 짤막한 테스트씬을 제작하기로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아직 모호하게 잡혀있는 영상의 컬러나 질감을 표본화시킨다는게 일차적 목표.
영상 첫 머리에 등장할 <다락방의 쥐> 씬이 이 작업의 대상으로 정해졌다. 화면의 레이아웃과 캐릭터의 동선을 정한 뒤 본격적인 배경 작업에 들어갔다.
첫 머리에 등장한 '다락방'은 '잊혀진 물건'을 소재로 한 이 애니메이션에서 꽤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공간이었다. 어느 집이나 낡고 더 이상 손이 잘 가지 않는 물건들을 한데 모아두는 곳이 있고, 그게 주로 다락방이나 창고같이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공간인 경우가 많다. 물건들이 말을 할 수 있어 그네들의 넋두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곳이 어디일까-생각해보니 그런 대표 격인 공간이 다락방이었고 이로 인해 애니메이션 제일 첫 머리를 장식하는 배경으로 설정되었다.
컬러의 경우- 처음엔 연필선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지정된 한두 가지 컬러(예를 들면 노랑계열의 색+붉은 계열의 색)만 사용하고 일체 다른 컬러는 사용하지 않고자 했다. 그러나 아직 그런 기법으로 화면을 풍부하게 그려내기엔 경험과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튀지 않게 사용하는 선에서 다양한 컬러를 이용하기로 했다. 대신 연필의 질감이 사라지지 않도록 최대한 차분한 느낌의 색을 쓰기 위해 애썼다.
이제 이 배경이 들어갈 캐릭터의 움직임을 만든다.
이제 그려낸 배경과 캐릭터를 조합해 하나의 완성된 씬을 만들어본다.
엄청 파파바박-!!! 촥촥!! 처억-하고 작업한 듯 적어놨지만 이 작업 기간 내내 무수히 많은 헛발질이 있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를 세심히 돌보지 않은 내 불찰로 인한 몸고생이라 말할 수 있겠다.(이래서 기초 공사가 중요하다 선인들이 말씀하셨지..)
이렇게 점차 작업은 본궤도에 올라서고 있었고 시간은 느리지만 착실히 앞서 나갔다. 눈 앞에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면서도 앞으로 맞닥뜨릴 상황에는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늦가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