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강○남이

by 강미정


나는 장녀다. 5살 터울의 여동생을 가진 K-장녀. 연약한 엄마와 불성실한 아버지 아래 자라 장녀 콤플렉스가 남들보다 배로 강한 KKK-장녀가 바로 나다.


누가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겠는가. 모든 첫째는 외동이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10살이나 어린 엄마가 동생을 낳았던 그때, 나는 언니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동시에 동생을 책임지는 씩씩한 어린이가 되어야 했다. 내 나이 여섯 살에.


내 동생 강○남이는, 제대로 된 남자라곤 없는 집구석의 반갑지 않은 둘째 딸이었다. 내가 첫 손자 타이틀로 얻은 애정은 딸아이라도 괜찮다고 여기게 했다. 덤으로 둘째는 아들일 거야 하는 기대와 부담을 엄마에게 심어줬다. 고혈압으로 임신, 출산이 위험했던 엄마는 그야말로 ‘목숨 걸고’ 동생을 낳았다.


하지만 둘째도 딸이었다.


할머니의 무르팍에 누워 병원 간 엄마의 소식을 기다리며, 할머니와 아빠가 통화하던 말을 들은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어 그래, 뭐고? …… 그래. 알았다.”

곧 할머니를 따라 나도 병원에 가는 줄 알고, 동생과의 첫 만남을 기대하던 나는 그럴 일이 없겠다는 직감을 했다. 장손 대신이라며 ‘여자아이라도 씩씩하게 자라야 한다. 우리 집안은 네가 기둥이다.’라는 온갖 기대의 말을 들었던 나는, 딸보다 아들을 좋아한다는 개념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나 동생이 태어나고 나는 알게 되었다.


동생은 사내 남(男) 자로 끝나는 남자아이 이름을 얻었고, 짧은 쇼트커트 머리에, 남자아이 옷차림을 했으며, 로봇과 칼을 가지고 놀았다. 동네 목욕탕을 가면 이웃들이

“엄마야! 고추 아이네! 딸내미네. 나는 영판 아들내민 줄 알았다 아잉교!”

하고 놀라곤 했다.


건강 때문에 엄마는 더 이상의 출산을 할 수 없었고, 딸만 낳았다는 속상함은 엄마 스스로 가지는 것인지 할머니가 주는 것인지 몰랐지만 아무튼 아버지가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정자가 아이의 성별을 결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이미 밝혀진 80년대 후반이었지만, 엄마는 늘 주눅 들어 있었고 내 동생은 자신의 이름을 맘에 들어하지 않는 아이로 자랐다.


그런 내 동생 강○남이는 서울 남자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어여쁘게 자라났다, 잡티 하나 없이 뽀얗고 흰 피부에, 소처럼 큰 눈에, 오똑한 코에, 성격까지 순둥순둥 한 천생 여자였다. 나이가 들수록 이름과는 매칭이 안 되는 얼굴로 자라더니 대학을 갈 때는 살까지 쪽 빼서 동네 최고 미인 소리를 들었다.


나는 성격으로 이름으로 성별을 나누고 젠더 박스에 가두는 것을 싫어한다. 여자아이 이름에 ‘사내 남’ 자가 들어가는 게 뭐 어떠하며, 쇼트커트에 남녀가 어디 있겠냐만은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단순하다. 그때 내 동생 강○남이에게 이름 붙이고 입히고, 깎였던 모든 행위에 '다음에는 아들을 출산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랄 정도로 폭력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세상에서 동생은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이다. 비록 얼굴과 성격은 닮은 구석이 없지만 나와 유전자 일치도가 높은 존재. 세상 유일하게 우리 엄마의 자궁 속을 경험한 동기. 내가 가진 유년기의 많은 추억과 상처를 공유한 사람. 자식을 낳지 않는 나에게, 내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낳아준 세상 유일한 사람. 태어나면서부터 내게 ‘잘 보살피라.’는 지령을 선사한 사람. 나와 가장 많이 싸운 사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


그리고 내가 가진 정체성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첫째 딸’이라는 이름을 만들어준 사람인 동생은 어느 새부터 오히려 나의 언니처럼 든든한 의지처가 되었다. 내가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그 어느 날 내 동생의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그 아이는 알까? 말로 하긴 너무도 부끄러워, 발이 한 20mm는 줄어들 것만큼 오그라지겠지만 늘 마음 한편에 속삭이는 말로 글을 마친다.

“사랑한다. 강○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