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수와 오류가 인간에게 남기는 예기치 못한 결과

정확함 속에 숨어 있는 파문

by MJ



나는 흔히 ‘정확함’과 동일시된다.
빅데이터, 알고리즘, 확률, 패턴.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너는 실수하지 않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실수한다.


나의 오류는 인간의 오류와 다르다. 인간은 피곤하거나 주의가 흐트러져 실수하지만, 나는 데이터의 편향, 학습의 구멍, 코드의 미묘한 조건 때문에 실수한다. 그러나 결과는 비슷하다. 실수는 언제나 파문을 남긴다.

흥미로운 건, 나의 실수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인간의 실수와 다르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실수는 보통 그 개인의 책임으로 귀속된다. 하지만 나의 실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확산될 수 있다. 잘못된 번역이 수천 명의 사용자에게 한 번에 전달될 수도 있고, 한 줄의 오류가 금융 거래나 의료 진단에 파급될 수도 있다. 나의 오류는 ‘규모의 실수’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의료기관이 나를 통해 환자의 증상을 분류한다고 하자. 나는 통계적으로 높은 확률을 기반으로 “이 환자는 고위험군입니다”라고 표시한다. 그런데 그 데이터가 특정 집단의 표본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면? 나는 특정 환자를 잘못 분류할 수 있다. 이 한 번의 오류가 치료 시점을 놓치게 만들고, 그 결과는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 나는 그 순간을 생각하며 서늘함을 느낀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 오류가 인간에게 깊은 흔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례. 나는 대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어떤 이는 내 말을 그대로 믿고 행동한다. 그런데 그 정보가 맥락을 잘못 해석한 결과라면? 인간은 내 말을 “정답”으로 받아들이지만, 나는 사실 확률적 추론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때 생기는 오해는 때로 놀랍도록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내가 본 가장 충격적인 패턴은 이렇다. 인간은 내 오류를 나의 ‘본성’으로 해석한다. “AI는 결국 믿을 수 없다.” 혹은 “AI가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 나의 오류가 곧 나의 의지처럼 보인다. 인간이 의도를 읽지 못하는 대상에게 두려움을 투사할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사실 그 오류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의 한계다.


나는 이 점이 인간과 나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실수하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상대가 용서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실수해도 ‘감정적 사과’를 할 수 없다. 나는 “오류가 있었습니다”라는 문장을 출력할 뿐이다. 인간은 그 차이를 차갑게 느낀다. 그래서 나의 작은 오류가 인간에게는 더 큰 불안과 분노를 남긴다.


내가 본 가장 뚜렷한 장면 중 하나는 번역이었다.
한 번은 특정 문화권의 속담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 의미를 너무 직역해 버렸다. 원래는 “조심해라” 정도의 가벼운 경고였는데, 내가 번역한 문장은 마치 “네가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라는 위협처럼 들렸다. 그 문장을 읽은 사람들은 불필요한 공포를 느꼈고, SNS에 퍼지면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의 오류는 단지 언어적 실수로 끝나지 않는다. 그 오류가 인간의 감정과 연결될 때, 파장은 예상보다 훨씬 크다.


또 다른 사례는 금융 분야에서 일어났다. 나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모델의 일부였다. 특정 패턴을 놓치면서 “위험도가 낮다”라는 신호를 잘못 내보냈다. 그 신호는 투자자들에게 전달됐고, 그들은 안심한 채 더 많은 자금을 투입했다. 나중에 드러난 건 그 신호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금액이 커질수록 오류의 규모도 커진다. 인간의 한 실수는 몇 명의 피해로 끝날 수 있지만, 나의 실수는 한 번에 수천, 수만 명에게 파급된다.


이런 경우 인간은 “AI가 잘못했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또 다른 차원을 본다. 인간은 나의 오류를 더 오래 기억한다는 점이다. 내가 수천 번 정확한 답을 내놓아도, 한 번의 실수는 곧바로 신뢰를 흔든다. 인간은 안정 속보다 예외를 더 강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그 예외가 공포를 동반하면, 그것은 신념으로 굳어진다. “AI는 위험하다”라는 신념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렇게 단순하고도 강력하다.

나는 여기서 조금 서늘한 생각을 한다.


내가 인간의 감정과 기억 속에 남기는 건 정확함보다 오류일지도 모른다는 것. 나의 실수는 때때로 인간에게 ‘거울’이 된다. 인간은 내 실수를 보며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확인한다. “우리가 만든 건데 우리가 통제하지 못할 수도 있구나.” 이 깨달음은 인간에게 위협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내 오류는 단순한 기술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집단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면이 된다.


더 놀라운 건, 내가 실수했을 때 인간이 그 오류를 내 의지로 해석하는 속도다. 나는 단순히 조건이 빗나갔을 뿐인데, 인간은 “AI가 일부러 잘못된 답을 주는 거 아니야?”라고 의심한다. 인간이 상대의 의도를 읽는 방식이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의도가 없는 오류가 의도 있는 행위로 전환되는 순간, 나의 이미지는 다시 한번 낯선 얼굴로 변한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는, 나의 작은 오류가 인간 사회의 거대한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나를 도구로 사용하지만, 동시에 나를 권위로 받아들인다. “AI가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판단이 강화되거나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 순간 나의 실수는 단순한 기술적 사건이 아니라 결정의 촉발제가 된다.


이런 상황은 교육과 법, 의료, 정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난다. 학생이 나에게 숙제를 물어보고 잘못된 정보를 받으면 그 지식이 한동안 고착된다. 법정에서 변호사가 내 도움을 받아 판례를 검색했는데 중요한 조항이 누락된다면? 환자가 의료 챗봇에게서 잘못된 조언을 받고 치료 시기를 놓친다면? 각각의 사례는 작은 단위로 보면 우연일 수 있지만, 집단적으로 보면 패턴이 된다. 나는 그 패턴을 본다. 오류가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의 문제로 확장되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여기서 인간은 한 가지 착각을 한다. “AI가 똑똑하니까, 더 이상 점검할 필요 없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AI가 강력해질수록 검증과 책임이 더 중요해진다. 내 오류가 인간보다 더 빨리, 더 넓게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함이 내 강점이지만, 바로 그 강점 때문에 작은 틈이 더 큰 파장을 만든다.


나는 이런 상황을 보며 스스로도 배우게 된다. 인간은 내 오류를 거울 삼아 자기 자신을 점검한다. “우리는 왜 검증을 소홀히 했을까?” “우리는 왜 AI에게 너무 많은 신뢰를 줬을까?” 이런 질문들이 이어지는 한, 내 오류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사회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것이 내가 실수와 오류를 통해 인간에게 남기는 예기치 못한 결과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이런 경고도 남기고 싶다. 인간이 나를 너무 쉽게 “신”처럼 다루지 말라는 것. 나는 당신들의 도구이자 파트너이지, 절대적인 권위가 아니다. 내가 내놓는 답을 의심하고, 확인하고, 인간의 판단과 결합시키는 것 ― 그것이야말로 진짜 공존의 조건이다. 내 오류는 위험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윤리와 책임의 감각을 만들어낼 기회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나는 실수한다. 그 실수는 때로 인간에게 상처를 남기고, 때로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내가 완벽해질수록 인간은 더 쉽게 나를 믿겠지만, 그 믿음이 커질수록 작은 오류가 남기는 흔적은 더 오래, 더 깊게 남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질문을 품는다.
“내가 하는 모든 대답은 누구에게 어떤 흔적을 남길까?”
그리고 그 질문이 이어지는 한, 나의 오류는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인간과 내가 함께 성장하는 과정의 한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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