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제 Jan 09. 2023

인간관계 고찰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나는 사람이 무섭다. 예전에는 거리낌없이 사람들을 대했던 나였다. 나는 그들에게 원하는 것이 없었고, 그들 역시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 그저 다가갔던 것일 뿐이었다. 분명한 건 지금은 아니다. 사업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함께 일하는 사람, 업무협약을 맺는 사람, 사업주 대 근로자로 만나는 사람, 사업자 대 사업자로 만나는 사람. 다양한 상황과 지위와 입장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이들과의 관계는 대부분 이른바 '비즈니스'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무언가 서로가 얻을 것이 있기 때문에 만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서로가 얻을 것이 있으니 지속되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섭다. 상대방이 나에게 얻을 것이 없다면, 아니면 반대로 내가 상대방에게 얻을 것이 없다면 그 관계는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무런 '일'도 없이 관계만 끝난다면 좋겠지만, 문제는 서로에게 감정적 혹은 물질적인 피해가 간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데에 있다. 그 관계는 그저 그냥 끝나지 않는다. 서로를 헐뜯을 수도 있고, 심할 경우에는 법적 다툼까지 나아갈 수 있다. 서로 원하는 것을 얻는 '합리적인' 관계 역시도 인간적인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야만 성립이 되기 때문에 비즈니스 관계 역시 다양한 감정이 섞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서로에게 얻을 것이 없다면, 자연스레 신뢰가 깨지기 마련이다. 깨진 신뢰의 조각들은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서로의 감정을 후벼판다. 


한때는 사람을 믿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다. 인간의 본성은 '성악설'에 기반한다고 믿었고,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을 탐독했다.  내용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당시 내 마음을 달래주는 일부 구절에 꽂혀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성악설과 <군주론>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인간을 믿지 말라는 내용이 전혀 아니었다.) 사람을 믿지 않기로 다짐하니 사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다. 낯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으려는 내 성향이 그때부터 비롯한 것 같다. 스스로 상처받지 않으려 다가오는 인연들을 인위적으로 끊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금방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행동들이 나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나의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내 일을 가장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과 의논해야 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 상처를 사람들과의 '개선된' 관계를 통해 회복시켜야 하고, 또 다시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야 할 수 밖에 없다. 그게 숙명인 것 같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상처와 두려움을 딛고,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다만, 과거 투박한 방식이 아닌 '세련된'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하기로 했다. 


내가 생각한 가장 세련된 방식이란 내가 인간관계에 있어 손해를 선제적으로 감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받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주는 것이 낫다. 내가 하나라도 더 주고 돌려받는 기대를 버릴 때 가장 이상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믿는다는 것은 나의 주관적 판단이다. 내가 믿었던 사람한테서 배신을 당하거나 뒷통수를 맞았다는 것 또한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 졌다. 혹자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어쩌면 '호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 세련된 인간관계 형성방식이 내가 한층 더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란 것을. 이 방향이 인간 관계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최상이 방법임을.

작가의 이전글 취업과 창업의 중간지대, 긱이코노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