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살게 해 줘서.
"난 아니야. 안될 것 같아."
"그래. 잘 지내."
말 한마디로 모든 게 끝이 났다.
준비하지 못했던 이별은 나를 깊은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결국 맞출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당시 나는 일하던 곳을 관두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사람은 그런 나를 두고 떠났다. 그런 모습은 싫다며.. 힘들어서 내민 내 손을 뿌리쳤다.
가장 화려했던 20대의 순간들이었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린 20대의 기억들. 함께 해서 더욱 소중했고, 아름다웠던 순간들. 이제 지워야 하는 기억이 되었고, 흘려보내야 할 추억이 되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현실이었다. 세상을 다 잃은 것만 같았다. 6년이라는 시간, 함께 미래를 약속했던 시간은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당시 나는 너무나 어렸고, 나약했다. 나의 마음은 한순간 무너져 내렸다.
이별이 힘들었던 건 사람을 떠나보내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힘든 시간은 한 번에 몰려왔다.
배신. 믿었던 사람이었는데, 한순간 변해버렸다. 지금까지 내게 보였던 모습들이 모두 거짓이었다. 그 사람으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금전적 손해까지 생겼다. 20대인 내가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였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더 이상 사람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난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힘든 시간을 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마저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극단적 선택은 항상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선택을 언제든 주저하지 않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더 편할 것 같았다.
믿음, 신뢰에 대해 완전한 상실감을 느낀 나는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힘이 되어 주었던 사람이 떠나고 믿었던 사람마저 나를 떠났다.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느꼈다.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테라스에 나가 난간에 발을 올렸다. 딱 한 발짝만 더 가면 되는데...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시체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포기할 용기도, 다시 열심히 살아갈 힘도 없었다.
4년이 지난 지금.
난 잘 버텨냈다. 그리고 성장했다.
결국 사람이었다. 나를 살게 하고, 성장시켜준 건 사람이었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들이 사람으로 조금씩 치유가 됐다.
4년 전, 그 당시
스승님은 내 상황을 어느 정도 눈치채셨나 보다. 어느 날 사무실로 조용히 불러서 말씀하셨다. '힘든 거 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며 스승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때 처음 알았다. 스승님도 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지금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는 것을.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힘든 시기가 온다는 것을.
다음날부터 스승님은 나에게 일을 엄청 시켰다. 근무시간만큼은 일에 집중 하라며 다른 생각 할 겨를 없을 정도로 일을 시켰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쉼 없이 일을 했다. 몸이 피곤해지니 집에 가서도 바로 잠을 잤다.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스승님을 믿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으니 속는 셈 치고 마지막으로 믿어보기로 했다.
그 시기가 내가 일적으로 가장 많이 성장한 시기였다. 하루 13시간, 많게는 17시간씩 매일 일했다. 쉬는 날도 나가서 일을 했고 2박 3일 잠을 안 자고 일을 하기도 했다. 일에 미쳐 있던 시절이었다. 일 말고는 다른 생각, 다른 생활은 하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연락도 만남도 없었다. 명절에도 집에 가지 않았다. 시간이 있고 할 일만 있으면 어디든 갔다. 정말 쉼 없이 일만 했다.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점차 마음에도 안정이 찾아왔다.
헤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깊은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봤고, 그 빛은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 빛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