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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Aug 15. 2024

묽은 피

개들을 피해 남자들이 벽에 몸을 바짝 붙였다. 남자들이 뒤로 몸을 피할수록 개들은 남자들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개를 피해 달아나기 위해 남자들은 힘을 합칠 생각 따윈 없이 서로를 향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 조금이라도 개와 멀어지면서 가장 안전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방법. 옆 사람을 방패 삼기 위해 서로를 밀어내고 거친 숨을 뱉어내고 사나운 말을 주고받았다. 결국 무리에서 가장 밀려난 남자가 개에게 물린다. 개에게 물린 남자가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개 짖는 소리에 겹친다. 사람을 한번 물어본 개는 더욱 사납게 다음 사냥감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개의 다음 사냥감이 되고 싶지 않은 남자들은 이전보다 더욱 사납게 곁에 선 남자를 앞으로 밀어낸다. 

개에 물린 남자는 비명을 내지르며 개에서 풀려나기 위해 몸을 비튼다. 몸을 비틀수록 개는 남자의 다리를 물고 있는 입에 힘을 주고 흔든다. 개의 입에 물린 남자의 다리에서 개의 침과 피가 섞인 묽은 색의 액체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개에 물린 남자를 돕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자들은 거칠게 서로를 밀어내다 발이 걸려 서로 몸이 뒤엉키고 개들은 그런 남자들을 향해 다가서며 사납게 멈추지 않고 이빨을 드러내며 큰 소리로 짖는다.  


눈앞에서 개와 사람이 뒤엉키는 장면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인섭은 더욱 소름 끼쳤다. 인섭에게 문을 열어주었던 남자는 평온한 표정으로 기계의 그래프를 쳐다볼 뿐이고, 그 옆 사람은 노트북에 뭔가를 입력하고 있고, 그 옆 사람은 남자와 개를 촬영할 뿐이었다. 일상적으로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이러다가 누가 죽는대도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 같은 그 일상적이 모습이 인섭은 두려웠다. 손에 땀을 쥐고 안절부절못하는 건 인섭뿐인데 이 상황을 통제할 힘이 가장 적은 사람도 인섭이었다. 인섭이 할 수 있는 건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질문조차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죽지는 않으니 그렇게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인섭에게 문을 열어준 남자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말했다. 죽지는 않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인섭은 그저 이 모든 것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죽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설마 죽기 직전까지 하는 건 아니겠지? 정해진 시간이 있을 텐데 그게 얼마나 남은 건지, 그걸 묻는다면 남자가 대답을 해줄지 몰라서 묻지도 못했다. 그저 남자의 눈이 향하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모니터의 숫자를 해석할 수 없으니 그저 암호 같기만 한 그래프를 그저 쳐다봤다. 귀에 박히는 비명 소리와 개 짖는 소리를 무시하려고 애쓰면서, 오늘 만큼은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게 코가 아니라 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곧 쏴 하는 소리가 들려서 모니터에서 고개를 돌려 보니 다시 한번 작은 입자의 액체가 남자들과 개를 향해 쏟아졌다. 보슬비처럼 내리는 액체를 맞으며 개들이 먼저 이어서 남자들이 픽픽 쓰러졌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하나씩 발을 걸어 넘어트리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픽픽. 쓰러진 사람과 개들 사이로 묽은 색의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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