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긴 했는데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힘들지 않았냐는 무철의 질문에 인섭이 어중간한 답을 한다. 말을 시작하면서 인섭은 무철의 눈을 마주 봤지만, 말을 마치면서 인섭의 시선은 자신이 앉아있는 책상 위를 향한다. 자리에 앉으면서부터 인섭은 먼지라곤 없어 보이는 깨끗한 책상 끝을 손가락으로 훑고 있다. 어색한 분위기를 없앨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이것이라도 해야지.
후각이 없다는 것이 인섭에겐 결핍이겠지만 무철은 후각이 없어서 인섭이 특별했다. 그 개성마저 없었다면 인섭은 사람들에게 쉽게 묻히는 존재였을 테다. 인섭을 회사에 입사시킨 것도 그런 이유였다. 언제가 될지, 어떻게 일지는 모르지만 후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무철이 하려는 일에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선견지명이라고까지 한다면 너무 거창하긴 하지만 그런 말로 간편하게 설명할 수는 있으리라. 이 부장과 옥상에서 있었던 일을 향미에게 전해 들었을 때 인섭의 쓸모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잡혔다. 인섭이 진짜 커피와 까나리액젓이 들어간 커피를 구분할 수 있는지를 두고 이 부장이 내기를 했다면 무철은 그보다 본격적인 실험을 해 볼 생각이었다. 이 부장처럼 섣부르게 하지는 않겠지만 아마 이 부장보다 잔인한 실험이 되겠지. 거기에 인섭이 참여하기만 한다면 일이 어렵지 않게 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제안을 별다른 질문 없이 선뜻 승낙했을 때 무철은 일이 생각보다 쉽게 진행된 것이 만족스러운 한편 인섭이 딱하기도 했다. 비밀스러운 일을 맡길 만큼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는 기분에 취한 그가.
[BREATH]의 다음 제품은 공포가 될 겁니다. 우린 지금 그걸 만드는 중이고요.
인섭이 조심스레 자신이 하고 있는 테스트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새롭게 출시할 [BREATH]의 시제품 테스트를 참관하고 있는 중이라고 무철이 답했다. 시제품이 나오기 전 향미가 몇 차례에 걸쳐 테스트를 했고, 시제품이 나온 후 출시에 앞서 진행하는 테스트를 참관하고 있다고. 지금까지 인섭은 세 번의 테스트를 진행했고, 이제 마지막 한 번을 남겨두고 있다.
[BREATH]의 다음 제품은 앞서 나온 감정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었다.
‘공포’
무철은 사람을 더 오래 그리고 끈질기게 움직이는 건 악함이나 절망 같은 부정의 감정이라 생각했다. 선함이나 희망 같은 긍정의 감정은 지속성이 떨어진다고. 그렇기 때문에 선함이나 희망 같은 것이 귀한 것이겠지. 그런 건 본래 인간성을 거스르는 것이니까. 무철의 설명을 인섭은 귀담아 들었다. 냄새로 사람들에게 감정을 갖게 한다는 것이 인섭에게는 실제로 경험할 수 없는 상상의 영역일 테니. 애초에 [BREATH]는 인섭의 경험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자신이 상상으로만 접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인섭은 열심히 듣는 수밖에 없는 거겠지.
무철이 인섭에게 하지 않은 말이 하나 있다. 인섭이 해야 할 일은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 지금 인섭은 테스트의 목격자이지만 곧 당사자가 될 터였다. 남자들과 개를 통한 [BREATH] 실험은 끝났다. 이제 냄새를 맡지 못하는 인섭을 통해 제품의 성능을 뒷받침할 것이다. 제품이 전혀 먹혀들지 않을 후각이 없는 사람을 통한 비교 테스트. 그걸 통해 [BREATH]는 제품의 성능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추출할 것이고 이어서 무철이 계획한 시장에 비밀스럽게 유통될 것이다. 이번만큼은 요란한 광고나 퍼주기식 협찬 없이 하지만 효과만큼은 확실하게. 인간은 본래 악하다는 것을 무철만큼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팔린 [BREATH]는 그들이 믿는 것을 눈앞에 펼쳐 보여줄 것이다. 그 광경이 누군가에게는 상상도 못 할 끔찍한 지옥도 같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정물화 같은 터다. 무철은 물론 이걸 정물화로 볼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