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 미국 3부작
필립 로스는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문학의 소멸을 예측했다. 누가 비관주의자 아니랄까 봐 아주 시니컬하한 말을 뱉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앞선 세대로서 후대가 누릴 예술을 우려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게 당연한 수순이라는 말로 들렸다. 뻔히 다 보인다는 식이었다. 소설이 지금 추세로 가다가는 영화나 텔레비전에 먹혀버릴 거라고 장담했다. 구체적으로 컴퓨터 스크린과 경쟁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다. (인스타그램과 넷플릭스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동갑내기 작가 코맥 매카시가 자신의 어린 아들이 맞이할 미래를 우려하는 마음에서 쓴 <더 로드>가 그려낸 디스토피아를 떠올려보면 아마 저물어가는 위대한 작가들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프랑스에서 은둔하시는 동시대 작가 밀란 쿤데라의 얘기도 들어보고 싶다.
2023년을 맞이하는 내 입장에서는 필립 로스의 어두컴컴한 말이 예언처럼 고스란히 실현되는 건 아닌가 불안해진다. 소설 읽기가 '컬트적' 행위가 될 거라며 손사래 치던 필립 로스가 다시 무덤에서 뛰쳐나오면 요즘 세태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써낼까. 모르긴 몰라도 한 성공한 남자가 책을 읽다가 누명이라도 쓸 판이다. 요즘따라 소설이 사라질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도 죽기 직전까지 문학에 매달렸던 필립 로스의 촘촘한 이야기가 그립다. 문학이 사라니는 꼴을 보지 않고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듯 부고 기사 하나 남기고 사라져 버린 그가 야속하다. 난 아침 출근길에 한 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그의 부고 기사를 읽었는데,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차선을 넘나들었다. 그가 날 흔들어댔다. 더는 그의 소설을 읽을 수 없다는 말이 귓가에 맴돌면서 속이 터졌다. 그러나 슬퍼할 건 없다. 그는 2018년 별세할 때까지 삼십여 편이 넘는 장편과 이십 편이 넘는 단편을 써서 남겼으니까. 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다 읽은 척하면 안 되지. 난 한참 멀었다. 필립 로스 옹은 계속 나랑 봐야 한다. 난 천천히 읽을 테니까. 그러니 어디 두고 보자고요. 문학이 사라지는지 아닌지.
필립 로스는 1960년 첫 소설 『안녕 콜럼버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래, 쉴 새 없이 썼다. 보통 작가들이 50세까지 대표작을 내놓고 말년으로 갈수록 창작력이 떨어지는 것과 반대로 향년 85세로 타계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썼다. 보통 필립 로스 하면 따라다니는 칭호가 미국 4대 작가다. 홍콩 4대 천왕, 한류 4대 천왕처럼 끈질기게 필립 로스를 수식하는 말이다. 어디서 따온 인용구인가 했더니,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필립 로스, 코맥 매카시,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를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4인방으로 꼽은 바 있다. 이런 명명은 생명력이 질겨서 세계 3대 미항이나 세계 3대 기타리스트처럼 시대가 흘러도 도무지 바뀌질 않는 법이다.(몇 년 전 가본 3대 미항 나폴리 항구는 정말 더러웠다.) 난 개인적으로 사대장 중에서 필립 로스를 가장 좋아한다.(토머스 핀천은 내겐 너무 먼 사람이다) 소설이 정말 재밌다. 심지어 야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대표작으로 불리는 미국 3부작은 작가 본인을 연상케 하는 유대인 화자 네이선 주커먼을 내세워서 미국 사회를 신랄하게 공격한다. 칼날이 느껴질 정도로 매섭다. 심지어 <쿵푸 팬더>에 나오는 그 직사각형 중국식 칼처럼 무시무시하다. 아마도 그는 미국이야말로 가장 먼저 문학이 사라질 나라로 여기지 않았을까. 어쩌면 미국에서 문학이 옅어지면 전 세계가 발맞춰 따라갈 거라고 생각한 걸까. 유대인의 눈으로 봤을 때 문학과 가장 거리가 먼 곳이 미국이라는 걸까. 오늘은 아메리칸드림의 환상에 젖은 미국 이민자의 눈을 통해 미국 사회의 폐단을 예리하게 짚어낸 필립 로스의 미국 3부작을 소개하는 글을 써봤다. 거장의 소설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미국의 목가(1997)
유대계 미국인 스위드 레보브는 뛰어난 외모와 온화한 성품, 거기에 뛰어난 운동 능력까지 남부러울 게 없는 남자다. 거기다가 그는 미국이 2차 대전 후에 누린 전례 없는 호황기를 죄다 누리면서 컸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며 성인이 된 그는 미스 뉴저지 출신의 미녀와 결혼까지 하며 화목한 가정을 일군다. 그는 명문 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장갑공장을 물려받음과 동시에 꿈에 그리던 전원풍 저택까지 마련하면서 전부 다 이룬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968년, 스위드의 화려한 시절은 맥없이 막을 내린다. 그의 딸 메리가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며 폭탄 테러를 일으킨 것이다. 그 착하던 딸이, 평생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던 그의 아름다운 아이가 별말도 없이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끝장낸 것이다.
반전운동의 일환으로 테러를 저지른 딸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삶을 살았던 스위드를 미궁 속으로 끌어들인다. 상수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모두 미지수로 바뀌자 그토록 탄탄했던 가업도, 가족과의 관계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내는 바람을 피우고, 친구는 뒤통수를 치며 그를 곤경에 빠뜨린다. 모든 이들의 찬사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던 그의 삶이 실은 시기와 질투로 이루어진 모래성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살아 있는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었던 스위드 레보브는 자신이 실패한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골몰하지만 광포한 삶의 아이러니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다.
1960년대 말 미국은 팍스아메리카나의 종식을 맞이한다. 베트남전은 패색이 짙어졌고 미국 내 반전주의자가 급증하며 더는 아메리칸드림을 신봉하지 않는다. 닉슨은 워터게이트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무엇보다 더는 영웅적인 선량함이 미덕이 될 수 없는 세상을 맞이한다. 필립 로스는 더는 미국이 세계의 프런티어가 될 수 없어진 어느 시점을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1998)
아이라 린골드는 험한 동네에서 거칠게 자랐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광부, 인부, 공장 노동자까지 가리지 않고 일하며 밑바닥을 전전했다. 하지만 탁월한 끈기와 진취적인 기질로 가는 곳마다 눈에 띄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노조 활동을 하며 접한 연기자의 삶에 푹 빠지면서 비로소 출세에 성공한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낭독하는 그의 위엄 어린 목소리는 군중의 가슴을 울렸고, 널리 입소문이 퍼지며 방송에까지 진출했다. 그의 재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해서 보는 이마다 그에게 흠뻑 빠져버린다. 그는 일명 '아이런 린'으로 불리며 강철 같은 눈빛을 지닌 영웅의 풍모를 몸에 익히고 대중 스타로서 승승장구한다.
아이라는 사생활이 시끄러운 연상의 여배우 이브 프레임과 사랑에 빠진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아이라는 우여곡절과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브에게서 연민과 모성애를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열혈 공산주의자였던 아이라는 자유분방하게 사는 이브와 사사건건 충돌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브가 아이라와 상의도 없이 어렵사리 가진 아이를 지워버리자 더는 견디지 못하고 폭발한다. 부부 사이의 긴장이 고조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이브는 그의 공산주의자 전력을 폭로하는 책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그 책 제목이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이다.
소설의 화자인 아이라 린골드는 사회적 성공을 위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은 물론 자신의 정치 이념까지 숨긴다. 결혼마저 자신의 이념을 안전하게 숨기기 위한 방편으로 삼은 아이라는 미국식 성공의 어두운 단면을 고스란히 흡수한 캐릭터다. 작품 배경이 1950년대는 매카시즘의 강풍이 몰아치고 레드 콤플렉스로 온 나라가 뒤숭숭할 때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빨갱이라는 말 하나로 사람 하나를 매장해 버릴 수 있는 광란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필립 로스는 공공연하게 배신과 폭로가 주류 가치관으로 자리 잡은 미국 사회에서 분투하는 한 인물을 통해 현대 사회의 정치와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개인들의 내밀한 꿈과 사랑을 무자비하게 짓밟는지 보여준다.
휴먼스테인(2000)
저명한 교수 콜먼은 누가 보더라도 성공한 사람이지만,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이면서 교수직에서 쫓겨나다시피 사직한다. 이 사건의 여파로 아내마저 심장마비로 잃자 그는 격분한다. 주류 밖으로 나가떨어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보다는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갖은 수를 다한다. 하지만 홀로 남겨진 콜먼은 자신이 근무했던 대학 청소부 포니아와 사랑에 빠지면서 다시금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하지만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여교수 델린 루는 콜먼을 나이가 어리고 저학력인 학교 청소부를 성적으로 유린하는 파렴치한으로 고발한다. 인종차별 논란에 성범죄 혐의까지 덧씌워진 콜먼은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에 빠진다.
소설의 배경은 1990년대 미국이다. 필립 로스는 『휴먼 스테인』 출간 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은 전후 미국인들의 삶에서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역사적 사건 중 하나이며, 그해 1998년은 미국인이 인내해야 했던 가장 곤혹스러운 시기이자 미국의 정신적 죽음을 알리는 시기였다”라고 말한 바 있다. 말 한마디로 하루아침에 한 사람을 끌어내리고, 알게 모르게 인종과 계급에 편견을 가지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위선을 떠는 꼴은 예나 지금이나 반지성주의의 전형과 같다. 필립 로스는 누명을 쓴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 사회가 가진 천박한 사회 인식을 도마 위에 올린다. 심지어 사회의 주도권을 가진 정치권과 학계가 더 나서서 대중을 호도하는 형세다. 클릭 장사를 위해서라면 사실을 날조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언론에 놀아나는 유권자는 어떠한가. 그들의 수법은 게으르고 전형적이지만, 누군가의 몰락을 구경하길 즐기는 호사가들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악의로 가득 차 있다. 필립 로스는 선지자와 같은 태도로 손쉬운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도시가 앓는 증상을 면밀하게 진단하며 마치 생태보고서처럼 문제의식을 촘촘하게 써 내려간다.
게시글 커버 사진은 필립 로스가 미국 보그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젊은 시절은 필립 로스는 괴짜에 소재주의자로 불렸다고 해요. 워낙 내용이 공격적이고 강렬해서 세상에 불을 지르려는 게 다 보일 정도였죠. 사진 속의 저 패기만만한 얼굴을 보세요. 하지만 그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작품의 결도 점차 더 예민하고 복잡다단해졌습니다. 이번 글은 필립 로스 문학의 후기를 다룬 글이지만, 그의 젊은 시절이 그립기도 하여 추모하는 마음으로 저런 사진을 골라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