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텔 두 채를 계약하면 버거울 거라던 지인의 우려가 곧 현실이 되었다. 내가 계약한 신축 오피스텔은 한 달에 200 가까이 나갔다. 당시 뭐 하나 낭비해서 쓴 게 없는데도 월말이면 허기가 졌다. 시내에서 운전을 하다가도 돈 나가는 알람이 울리면 섬뜩해졌다. 집주인이라는 이름으로 폰에 저장한 두 사람은 내 돈을 뭘 하며 살까 궁금해졌다. 투자 좀 한다는 지인은 내게 이런 방식으로 사업을 하다가는 망하기 십상이라고 경고했다. 투자로 꽤 돈을 벌었다던 그는 나를 일깨우려고 손가락질을 하며 일갈했다. 하지만 내 귀에는 더러운 물이 고여있어서 그의 말을 귀담아들을 수 없었다. 퇴직 이후 난 열패감과 초조함, 설렘과 고조감에 휩싸여서 어떤 말이든 부옇게 만들었다. 평소 미니멀리즘과 노매드의 삶을 에세이로 적던 내가 진창에 빠진 셈이다.
내가 굳이 월세가 비싼 오피스텔에 살게 된 것은 중심가에 위치하면서 작은 독서모임도 열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오피스와 호텔을 동시에 취할 수 있다니 뭔가 그럴싸했다. 상가 건물에 공간을 얻기가 부담스러웠던 내게 주거와 사무실을 동시에 취할 수 있다는 광고가 솔깃했다. 그러니까 난 월세 외에도 관리비가 30만 원 가까이 나온다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뾰족구두를 신은 공인중개사는 반바지에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분명히 일렀다. 여기 월세 못 내서 보증금 까먹고 나간 사람들이 수두룩해요. 아마도 난 15년의 회사 생활의 뒤의 첫 집은 그럴싸하게 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실패의 증거, 초라한 마음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럴싸한 계획은 없었지만, 오피스텔은 내 삶의 포장지로 그럴싸했다.
처음 오피스텔 계약을 하고 나는 크로스핏에서 만난 동년배 친구와 대화를 나눴다. 그때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난 심란함에 헬스클럽이나 독서클럽처럼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저기 제가 전역하고 첫 집을 얻었는데, 그게 저기 보이는 저 높은 건물 오피스텔이에요. 그는 내 손가락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축하해요. 이사하셨구나 좋겠어. 나는 빈말에 기분이 상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잘 마셨다고 인사한 뒤 카페를 나섰다. 내게는 변곡점에 가까운 오늘 하루가 그에게는 평형 상태의 일상이라는 게 야속했다. 네온사인이 가득한 대로와 달리 오피스텔 골목은 어두웠다. 초여름의 눅진함이 저녁 공기 속에 배어 불쾌했다. 빌라촌 특유의 부유하는 음식물 냄새가 자욱했다. 시내의 불빛들이 엷은 안갯속에서 반짝였다. 전형적인 오피스텔 풍경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려서부터 속된 도시를 좋아했다. 여행을 가도 휴양지는 싫었다. 런던과 파리가 좋았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많은 블라디보스토크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도시의 저녁 풍경을 찬찬히 걸으면서 그 냄새를 들이마시고, 팔뚝을 스치는 싸늘한 밤공기를 맛보길 즐겼다. 지금 내가 사는 도시도 시끄럽고 복잡했지만 편리하고 즉각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오피스텔은 그런 인스턴트 한 속성의 끝판왕이다. 오피스텔 엘리베이터를 타면 온갖 뜨내기들의 집합소임을 알 수 있다. 문신을 한 수상한 작자들도 많고 음식이 배달이 쉴 새 없이 들이닥친다. 난 내 방에 들어설 때마다 여기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난 9평방에 책상과 침대 그리고 맥북만 있으면 잘 살 수 있다고 했지만 정말 그것뿐이라서, 그게 다라서 서글펐다. 그래도 창밖은 화려하고 예뻤다.
월말 대량 출금 사태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피스텔에 살면서 미처 예상치 못했던 위안을 얻었다. 내가 사는 고층 오피스텔은 고층이라서 모기가 없었고 통창 옆에 작게 만든 서재에는 천장으로 높게 창문이 달려 있어서 낮에 부드러운 빛이 스며들었다. 흰색 벽지와 거울이 달린 벽은 세련된 풍요로움을 안고 은은히 빛났다. 화장실과 현관 앞에도 작은 책장을 몇 개 사서 좋아하는 책을 꽂아뒀다. 언젠가 좀 더 넓은 오피스텔로 옮기면 책에 에워싸인 서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좋다고 정평이 난 허먼 밀러 의자,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모션 데스크, 맥미니와 모니터까지 갖췄다. 도심 한복판 풀옵션 오피스텔은 그렇게 딱 내가 원하는 것만 소유할 수 있게 해 준다. 소유하지 않으면서 어딘가에 잠시 머물러야 하는 반쯤은 노매드의 삶으로서, 내 취향만 남기고 다 가져다 버릴 수 있는 편리함을 취해나간다.
어느새 내 삶이 오피스텔에 포개어졌다. 그제야 비로소 오래전부터 나도 모르게 마음속 어딘가에 이미지 하나가 묻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방을 쓱 둘러보면 샤오미 스탠드와 이케아 소파가 있고 저 구석에는 햇반이 쌓여있다. 생수병과 연필깎이 그리고 단백질프로틴과 캡슐 커피머신이 중구난방 섞여있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질서가 있어서 풍요롭고 순수한 질감을 보여준다. 난 언제부터 이런 공간을 갖고 싶었을까. 스무 살 넘어 장교로 살아온 이후 15년간 군 관사에서 조촐한 세간으로 살다 보니 온전한 공간을 갖는다는 것이 주는 기쁨을 모르고 살았다. 나는 오피스텔 방을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있는 것이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달았다. 월말이 되면 연장이 필요한 고작 30일짜리 방이지만 마치 평생이라도 살 것처럼 정성껏 가꾼다.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에 도달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있다.
집에 점차 세간을 늘려가면서 나는 서서히 내 모양을 다듬어갈 수 있었다. 내 퇴직 이후의 삶을 증명해 주는 방을 보면서 내가 내 삶에 부여한 질서도 느껴졌다. 난 이렇게 살고 싶었구나. 자전거에 올라타서 시내 중심가를 유유히 굴러가고 있으면 내 욕망이 대부분 실현되고 있음을 내 몸이 느낄 수 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방, 1년 정도만 쓰고 버릴 싸구려 세간, 이 정도가 내 40년 삶의 결과물인가 싶다. 아 가볍고도 가볍도다. 어떠한 의미도 없고 내일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가벼운 삶이라는 것이 내게 꼭 맞았다. 그와 더불어 날 지탱해 준 오랜 거처인 군을 나왔다는 걸 생각할 때마다 경이가 느껴졌다. 내가 그토록 커다란 위험이 따르는 독서모임 사업에 무모하게 나섰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으로 충분해서 더 이상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